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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을 닮고 싶다

  • 2013.03.25(월) 17:11

지난 주말 남산에 다녀왔다. 작년 이맘때 벚꽃이 꽃망울을 맺기 시작할 때 부터였으니 1년쯤 돼 간다. 한달에 두어번 정도 꾸준히 다녔다. 산길을 걷는 자체가 좋고, 덤으로 얻고 배우는 게 많아서다. 대도시에 남산같은 공간이 있다는 건 서울시민의 복(福)인 것 같다. 왜 복인지 걸어본 사람은 안다.

 

우선 남산은 활기가 넘친다. 쉼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토요일 아침, 남산도서관 입구에서 N서울타워로 오르다 보면 반대편에서 신나게 달려오는 라이딩족(族)들과 마주친다. 북쪽 둘레길을 힘겹게 올라와 남측 순환로 내리막 길을 씽씽 내달린다. 환하게 웃음지으며 라이딩을 즐기는 얼굴에선 성취감이 묻어난다. 웃음, 활력 같은 긍정적 자극은 전염성이 강하다. 
 

순환로 곳곳에 마련된 체력단련장. 할아버지가 역기를 번쩍 들어올린다. 나보다 20년 정도는 더 살았을 것 같은 노인들이 알통에 가슴까지 짱짱하다. 불룩나온 내 뱃살이 초라하고 부끄러워진다. 일전에 친구 왈 "영감들이 애인이라도 생긴 게지"라며 피식 웃는다. 사실이라면 그마저 부럽다. 타워에는 사진찍으며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외국관광객들이 넘쳐난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누구에게나 그런 충전이 필요하리라. 일상에 찌들고 지친 이들에게 남산은 걷고 보기만 해도 활력을 안겨준다.
 
두번째 미덕은 위안이다. 사시사철 변하는 자연과 호흡하는 자체가 힐링일 테다. 꽃 피고 잎이 푸르러지고, 단풍이 들고, 다시 봄을 맞기 위해 모든 것을 떨궈내는 인내의 과정들. 우리 삶의 궤적은 자연의 변화와 맞닿아 있다. 혼자든 친구와 함께든 남산을 걸으며 마음속 얘기를 풀어놔보라. 번민들은 정리되고, 약간 떨어져서 문제를 바라보는 여유를 갖게 될 것이다. 둘레길의 전망좋은 포인트에 서면 우리가 매일 복닥거리고 아웅대며 살아가는 서울이 발아래 죽 펼쳐진다. 저 조그만 곳에서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그렇게 팍팍하게 살까. 내려다 보는 것만으로도 답답한 가슴이 탁 트인다. 
 
마지막은 배려로 남산만이 지니는 미덕이다. 둘레길을 따라 내려가면 차가 다니지 않는 북측 순환로에 닿는다. 길 중간에는 노란색으로 요철 구간이 설치돼 있다. 시각장애인들은 이 점자 유도블록을 지팡이로 짚어가며 산책을 즐긴다. 그렇게 다닐 수 있는 길이 3km쯤 된다. 마라톤 하는 장애인도 있다. 앞이 안보이는데 어떻게 뛰냐고? 자원봉사 마라톤 회원들이 러닝메이트를 자임한다. 1m 남짓한 끈으로 시각장애인들과 팔뚝을 묶고 함께 달린다. 자연이 사람을 배려하고, 일반인이 장애우와 함께 보조를 맞춰 뛸 수 있는 공간이 남산이다.
 
남산은 기본적으로 베풀거리가 많은 산이다. 서울 한복판에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고 자연친화적인 경험은 물론 역사·문화적으로 배울 게 많다. 지난주에는 야외식물원쪽 개울가에 지천으로 널린 도롱뇽 알을 발견했다. 근처엔 반딧불이 서식지라는 표시도 돼 있다. 남산의 자연환경이 이 정도까지 좋아졌어? 알고 보니 서울시에서 지난해 도롱뇽과 반딧불이를 남산에 대규모로 방사했단다. 도롱뇽은 다행히 잘 적응한 모양이다. 젤리 똥같은 알주머니를 이렇게나 많이 까놨으니…올 여름에 남산에서 반딧불이를 볼 거라는 기대를 살짝 가져도 될 듯 하다. 역사와 문화가 서린 장소들은 남산을 걷다보면 아는 만큼 보인다. 
 
남산은 늘 그 자리에 있지만 다르게 다가온다. 계절이 변하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바뀌고, 날씨나 분위기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그렇지만 베풀어 주는 건 똑같다. 활력이나 위안만은 아니다. 자연·문화에 대한 경험일 수도 있고 친구와의 소통일 수도 있다.
 
바야흐로 봄이다. 마침 이번달을 기점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됐다. 옛 직장에서 동고동락했던 동료·선후배 기자들이 모여 '비즈니스워치(Businesswatch)'를 발족시켰다. 새로운 미디어, 자긍심을 가질 만한 매체로 만들어 나가야겠다는 바람이 강하다. 비즈니스워치가 남산을 닮아갔으면 좋겠다. 내부적으로는 활기 넘치고, 위아래가 서로를 배려했으면 한다. 차별화된 컨텐츠로 독자들과 소통하고 이들과의 유대를 통해 지속발전이 가능한 미디어를 일궈내려고 한다. 부족한 점이 많겠지만 의지를 갖고 한 방향으로 나간다면 족적을 남길 수 있을 것이다. 새 미디어가 남산같은 든든한 기반이 되길 나는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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