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5월의 고달픔을 씻어내는 편지 한 통

  • 2013.05.14(화) 10:17

 

5월은 푸르다. 아이들은 마냥 즐겁지만, 부모들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날 풀리면서 운동회와 소풍, 어린이날, 스승의 날 등 이런저런 행사가 참 많다. 여간 신경 쓰이는 달이 아닐 수 없는 이유다. 이런 고달픔을 조금이라도 씻어보라고 어버이날이 같은 달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5월 행사 중 제일 신경 쓰이는 것은 역시 스승의 날이다. 빠르게, 빠르게만 변해가는 세상의 흐름에서 가장 판단하기 어려운 날이다. 아이는 학교에서 뭘 하는지 도통 알 수 없고, 공부는 학원에서 하는 것이라는 말이 이젠 너무나 자연스러워진 지금, 스승의 날은 어떠한 감동도 없이 그저 부담스러운 날이다.


이날뿐이 아니다. 아이들이 운동회를 해도, 소풍을 가도 그렇다. 이것이 아이와 학교의 교육이고 행사인지 모를 지경이다. 옛날에 비하면 대충 시늉만 내는 연례행사에 학부모들은 자의 반 타의 반 도우미로 나서기 일쑤다. 그 옛날 60~70명이 한 반이던 것이 지금은 30명 안팎으로 줄었다는 데도 말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팍팍하지만은 않은가 보다. 초등학교 한 젊은 교사가 선생이 아닌 스승이 되고픈 마음을 전한 길지 않은 한편의 편지글은 잔잔한 감동을 주기엔 충분하다. 말 많아진 요즘 학교 분위기에서 학부모들의 극성을 염려한 사전적 조치라 하더라도, 이런 편지 한 통 받아보는 기쁨을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


0학년 0반 학부모님들께


안녕하십니까? 변덕스러운 날씨에 건강하게 지내고 계신지요?

 
5월은 참 아름다운 달입니다. 감사와 사랑의 달입니다. 학부모님께서도 어린이날에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해 주셨을 것이고, 우리 아이들도 학부모님께 어버이날을 맞아 감사의 마음을 전해 드렸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아름다운 달에는 스승의 날도 있습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가르침으로 감동을 주신 스승께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표하는 것 또한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승은 시작과 끝의 시간을 함께 하며 온전하게 성장의 과정을 함께 거친 사람에게 주어지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0학년 0반은 아직 그 과정의 가운데에 있습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될 수 있어도 스승이라고 불릴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우리 아이들과 온전히 한 해의 시간을 다 마무리한 후에야 제게 비로소 스승이라고 불릴 수 있는 일말의 여지가 생길 것 같습니다. 저를 스승으로 만드는 것은 제게서 졸업하여 한 뼘 더 성장한 아이들에서 받는 감동입니다.

 
그러하기에 스승의 날에 저는 0학년 0반 아이들과 학부모님께 어떠한 선물도 받을 수 없음을 부디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비단 스승의 날뿐만 아니라, 저는 0학년 0반에서 한 해를 보내는 동안에는 어떠한 선물도 받을 명분이 없습니다.

 
제가 스승으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학부모님께,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 역시 감사의 마음밖에는 드릴 것이 없습니다. 제가 더 드릴 것이 없음을 부끄럽지 않도록 학부모님께서 조금 더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가정에 건강과 평화가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2012년 5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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