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회사채의 ‘이유 있었던’ 랠리

  • 2013.06.09(일) 13:41

[안근모의 inside-out]

 

(위 그래프에서 빨간 점으로 표시된 부분이 사상 첫 4%대의 금리가 형성된 날이다)

 

 

지금으로부터 12년여 전인 지난 2001년 2월12일. 그날은 월요일이었다. 채권시장 거래가 거의 마무리돼 가던 오후 2시56분쯤, 당시 지표 채권이었던 국고채 3년물 2001-1호가 4.99%의 금리에 거래됐다. 우리나라 채권시장 역사상 처음으로 4%대의 금리가 기록된 순간이었다. 2년여 전에만 해도 금리가 두 자릿수에 달했었고, 불과 넉 달 전에만 해도 9%대에서 형성됐던 것을 감안하면 여간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수많은 시장 참여자들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이라고 혀를 찼지만, 정작 이 채권을 사들인 K은행의 H과장은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 금리가 두 자릿수일 때 사람들은 영원히 금리는 두 자리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누구도 두 자리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것처럼 채권시장의 패러다임은 바뀌었다. 미국 경제상황이나 국내 경기 등을 볼 때 4%대의 금리는 이상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패러다임의 변화'를 먼저 읽은 듯했던 H과장은 그러나 한동안 마음고생에 시달려야만 했다. 그날 뒤로 금리는 수직 상승했고, 채권 값은 급전직하했다. 4%대에 거래됐던 국채 금리가 두 달 뒤 거의 7%로까지 올라갔다. 당시 한국은행의 하루짜리 콜금리 목표치가 5.00%였음을 감안하면, 수많은 시장 참여자들의 생각처럼 4%대의 3년만기 금리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러나...H과장의 고난은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4%대의 역사적 금리가 형성된 지 다섯 달 뒤 한국은행이 길을 열어줬다. 콜금리 목표를 4.75%로 내렸다. 그리고 또 한 달 뒤 한국은행은 금리를 4.50%로 인하했다. H과장이 예견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통화정책에 반영되면서 시장 금리는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H과장이 이 틈을 타 이익을 실현했는지, 그 전에 손절매를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말이 안 되던' 금리가 떨어지고 더 떨어져 지금은 3%도 되지 않는다.


(미국 정크본드의 수익률이 지난달 초 역사적 저점을 찍은 뒤 반등하고 있다. 반등 폭이 가파르긴 하지만 워낙 낮은 수준에서 되오르는 것이라 역사적인 관점에서는 아직 미미하다)


지난달 8일, 뉴욕 회사채 시장에서 이른바 하이일드(high yield) 채권 평균 수익률(바클레이즈 인덱스 기준)이 사상 처음으로 5%선을 깨고 내려갔다. 이 채권은 신용등급이 투자적격 수준 아래인, 즉 투자부적격 고위험 채권들에 붙여진 그럴싸한 이름이었다. '쓰레기'란 의미로 정크(junk)라고도 불린다. 원래 이름이 어떠했든, 이제 하이일드 채권은 더 이상 높은 수익률을 주는 '하이일드'가 아닌 셈이 됐다. 이게 말이 되는 얘긴가. 혹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펼쳐진 만큼 수익률이 더 떨어질 수도 있을까.


(채권의 수익률은 크게 위험도(부도율, 신용등급)와 만기에 따라서 결정된다. 그리고 대개 그 순서는 '중앙은행 정책금리<국채<투자적격 회사채<정크 회사채' 등의 순서로 높아진다)


초단기 무위험 금리인 정책금리가 이론적으로 0% 밑으로 내려갈 수 없기 때문에 이보다 만기가 긴 국채 수익률과, 국채보다 위험한 투자적격 회사채와, 그보다 더 위험한 정크 회사채의 수익률 역시 내려가는 데에는 차례로 한계가 있다. 정책금리와 국채 사이에는 만기차이에 따르는 기간 프리미엄(term premium)이 존재하고, 국채와 회사채 그리고, 투자적격과 정크 회사채 사이에는 위험 프리미엄(credit premium)이 추가로 붙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 기준으로는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까지 좁혀진 이 프리미엄들이 더 좁혀질 것인지, 아니면 다시 벌어질 지 여부는 속단하기가 어렵다.

 

예를 들어, 현재의 '하이일드' 지표금리를 구성하는 정크 회사채들의 평균 잔존만기는 역사상 가장 짧은 3.5년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2000년대초에는 5년 가량 됐었다. 반면, 투자적격 회사채의 평균 만기는 7년으로 대폭 늘어났다. 2000년대 초에는 5.5년 수준이었다. 따라서 정크 회사채에는 10년만기 국채나 7년만기의 투자적격 회사채보다 낮은 기간 프리미엄이 적용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정크 기업들의 부도율이 기록적으로 떨어졌다. 지난 1990년 15.9%에 달했던 정크 기업들의 부도율은 최근 10년 사이 평균 1.6%로 대폭 낮아졌다. 이 수치에는 부도율이 7.4%에 달했던 2009년까지 포함돼 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정크 회사채의 평균 부도율이 급기야 0.5%로 추락했다. 중앙은행의 엄청난 화폐발행 덕이다. 하이일드가 더 이상 하이일드가 아니듯이, 정크가 이제는 더 이상 정크가 아닌 셈이 됐다. 하이일드 회사채 수익률이 기록적으로 떨어진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역사적인 로우일드(low yield)를 찍었던 하이일드 채권 수익률은 '그 날' 뒤로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이제는 6%대 위로까지 올라서 있다. 그만큼 값이 많이 떨어졌다는 의미다. 그리고 지난주 미국 하이일드 채권펀드에서는 사상 최대규모인 46억 달러의 자금이 빠져 나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가 양적완화를 줄일 듯한 신호를 보낸 것이 투자자들로 하여금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제 하이일드 채권은 기로에 서 있다. 문제는 이 채권의 가격이 계속 떨어져 수익률이 더 오르든, 아니면 다시 방향을 틀어 더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든 둘 다 곤혹스러운 상황이 된다는데 있다. 연준이 부양 축소를 강행하고, 이로 인해 하이일드 회사채 수익률이 치솟게 된다면, 수많은 투자자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될 것이다. 금융시장의 위험선호 심리가 크게 위축되면서 이곳 저곳에서 파열음이 터져나올 수도 있다.

 

반대로, 연준이 생각을 바꾸어 계속해서 '초과 부양'에 나선다면 하이일드 채권 수익률은 국채 금리와 함께 다시 더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세계 경제는 새로운 위험에 직면할 것이다. 정크 기업들이 사라지지 않고 기생하는 '좀비 경제'가 뿌리를 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무한정의 제로금리가 좀비 기업들을 연명케 하고, 이로 인한 경제의 효율성 악화로 다시 무한정의 제로금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일본의 경제가 그 위험을 역설하고 있다.

 

이 것이 만약 선택의 문제라면, 우리는 무엇을 골라야 할까. 결코 남의 일이 아닌 것이,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소기업 가운데 20.1%(2010년 기준)가 3년 연속해서 이자보상비율 1을 밑돌았다. 중소기업 다섯 개 중에서 하나 꼴로 이자 낼 돈 조차도 벌지 못하는 한계기업이라는 뜻이다.

 

▲ 필자 소개 : 안근모 글로벌모니터 편집장

20년간 국내외 거시경제, 거시 경제정책, 거시 금융시장을 집중적으로 취재, 보도해 왔다. 지난 2000년 이데일리 창간에 참여해 채권외환팀장, 뉴욕특파원팀장, 정책팀장, 시장부장, 경제부장, 편집국장 등을 지냈다. 2012년 국제경제 전문 미디어 및 독립 리서치를 지향하는 글로벌뉴스앤리서치㈜를 설립했다. 글로벌모니터는 그 첫 작업으로 창간됐다.

글로벌모니터는 국내 유일의 국제경제 전문 매체다. 미국, 유럽, 중국, 일본, 이머징마켓 등 주요국의 실물경제 동향, 통화정책 및 기타 경제금융정책, 주식/채권/외환/파생상품 등 금융시장을 진단 분석 전망하는데 특화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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