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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족발과 술 한 잔

  • 2013.06.14(금) 11:44

산해진미란 무엇일까? 비싸고 맛있다고 다 산해진미가 아니라 아무나 먹지 못하는 귀한 음식이어야 한다. 이를테면 상어 지느러미, 제비집 요리, 사슴꼬리, 곰발바닥 같은 팔진미가 산해진미다.

팔진미 중에서도 진짜 맛있기로는 곰발바닥을 꼽는데 점잖은 맹자님도 입맛을 다셨을 정도다. "물고기도 먹고 싶고 곰발바닥도 먹고 싶지만 둘 다 먹을 수 없다면 곰발바닥을 먹겠다"

 

맹자가 식도락을 즐겨서 한 말은 아니겠고, 다음 구절에 핵심이 있다. "사는 것도 중요하고 의로운 것도 중요하니 모두 할 수 없다면 목숨을 버리고 의로움을 택하겠다" 

곰발바닥을 '의(義)'의 상징으로 삼았으니, 도대체 곰발바닥이 무엇이기에 유교의 핵심가치인 의로움의 상징으로 여겼고, 얼마나 맛있었기에 고대의 팔진미 중 하나로 꼽았던 것일까?

 

곰발바닥은 지금 먹을 수 없지만 그 맛을 기억하는 옛날 사람들은 하나같이 "돼지족발 맛이 웅장과 비슷하다"고 했다. 산해진미에 가까운 맛 때문인지 족발은 이슬람 등 일부를 제외한 세계인이 즐겨 먹는 음식이다. 우리와 중국은 물론이고 독일에도 바삭하게 구운 돼지족발 학세와 맥주에 삶은 아이스바인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달콤한 돼지족발 조림, 피에 드 코숑을 이탈리아인 잠포네를 먹는다.

 

그것도 대부분 특별한 의미를 담았는데 이탈리아에서는 새해 잠포네를 먹으면 일 년 내내 지갑에 돈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믿는다. 당나라 때는 우리 수험생이 합격 엿을 먹는 것처럼 과거 보러 가는 선비들이 돼지족발을 먹으며 장원급제를 빌었다. 우리도 산후 조리로 족발을 먹었으니 산모가 젖 잘 나오라는 의미와 함께 산후기혈을 채운다는 뜻이 있다.

 

족발에다 왜 이렇게 거창한 의미를 담은 것일까? 네발로 걷는 동물은 정기가 발바닥에 몰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돼지 역시 짧은 다리로 육중한 몸을 버티고 서 있으니 족발이 그만큼 튼튼하고 강해서 맛도 좋고 몸에도 좋을 것이라고 여겼다.

 

옛날에는 좋은 음식이 있으면 하늘과 조상님께 먼저 바치고 다음에 자신이 먹었으니 족발도 마찬가지다. 춘추전국시대에 초나라 대군이 제나라 국경을 넘었다. 놀란 제왕이 조나라에 원병을 요청하며 황금 100근과 마차 10대를 예물로 준비했다. 재상 순우곤이 이 모습을 보고 웃다가 갓끈이 다 끊어졌는데 제왕이 이유를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아침에 올 때 한 백성이 돼지족발 하나와 술 한 잔을 제단에 올리며 하늘에 소원을 비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풍년을 기원하고 자녀의 출세와 부부 백년해로를 빌던데, 제물로 달랑 돼지족발 하나를 놓고 원하는 것은 너무 많았던 것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습니다"

 

제왕이 황급히 예물을 늘려 황금 1,000근과 마차 100대를 보내 원군을 요청하니 조나라에서 정병 10만과 전차 1000대를 파견했다. 소식을 들은 초나라 군사들이 놀라 밤새 도망갔다. 초라한 음식이라는 뜻의 '돼지족발과 한 잔 술(豚蹄盂酒)'에 관한 이야기로 『사기』「골계열전」에 나온다.

 

이름 모를 백성은 왜 겨우 돼지족발 하나를 놓고 소원을 빌다가 세상의 비웃음을 샀을까? 혹시 자기 딴에는 동물의 정기가 깃든 족발이고, 산해진미에 버금가는 음식이니 비록 양은 적어도 하늘이 감동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아무리 좋아도 찔끔찔끔 내놓으면 베풀고도 욕먹을 때가 있다. 상대방이, 시장이 감동하려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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