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재는 싫다. 빵을 달라!"

  • 2013.08.02(금) 15:21

"더 이상 바다가재는 싫다. 빵을 달라"

미국 농장에서 일어났던 노사분규의 쟁점이다. 노동자들의 요구조건은 식사 때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바다가재를 제공하지 말라는 것이다. 꿈속 이야기 같지만 실제 있었던 일이다.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1620년 청교도들이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 플리머스항구에 도착했다. 뒤이어 이민자들이 신대륙으로 몰려왔고 이들은 주로 먼저 온 정착민들이 만든 농장에서 일했다.

갓 도착한 이민자들을 모아놓고 초대 플리머스 총독이며 농장주였던 윌리엄 프래드포드가 이렇게 연설했다. "여러분들에게는 앞으로 식사 때 따뜻한 물 한잔과 바다가재가 제공될 것입니다"

도착하자마자 아메리칸 드림이 실현된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세상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고생문이 열렸다는 신호탄이었으니 미국 개척 초기 바다가재는 가난의 상징으로 하인, 노동자, 죄수들이 먹었던 음식이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바다가재가 구박을 당했을까? 이유는 너무 흔했기 때문이다. 플리머스 총독 브래드포드가 쓴 『플리머스 농장에 관하여』라는 책에는 '인디언들이 바다가재를 주워 바닥에 돌처럼 쌓아 놓았다'는 구절이 보인다.

초창기 미국 이민 기록으로 메이플라워호에 탔던 청교도 지도자 에드워드 윈슬로우가 남긴 편지에도 여름이면 해변에 바다가재가 넘친다는 기록이 있다. 바다가재가 어느 정도로 많았기에 이렇게 기록했을까? 너무 흔해서 농사지을 때 퇴비로 썼을 정도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기록이 있으니 미국 역시 사실일 것이다.

조선 후기인 순조 때 『연원직지』라는 책에 '바닷가에서는 게가 너무 흔해 큰 게로 거름을 하는데 이것이 한양까지 올라오면 가격이 비싸진다'면서 산지와 시장의 가격 차이를 지적하는 대목이 있다.

미국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땅이 좁고 인구 밀도가 높은 우리나라에서도 게로 거름을 했을 정도였으니 개척 초기 미국에서 바다가재로 거름을 했다는 말이 실감나게 느껴진다.

미국에서 바다가재는 주로 북동부의 메인 주에서 잡힌다. 그런데 마차로 살아있는 바다가재를 멀리 운송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산지에서는 공급이 넘치지만 조금만 떨어진 곳에는 아예 공급조차 되지 않았다. 극심한 수급불균형 현상이 일어나면서 19세기 초반까지 바다가재는 미국 산지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했다.

바다가재의 신세가 바뀐 것은 철도 덕분이다. 1842년, 최초로 미국 동북부의 메인 주에서 잡은 살아있는 바다가재를 철도편으로 중부의 중심도시 시카고로 운송하는데 성공했다.

메인 주에서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했던 바다가재가 시카고에서는 그 희소성 때문에 부자들이 먹는 고급 요리로 둔갑했다. 그리고 1869년, 미국 대륙횡단철도가 완성되면서 바다가재의 수요는 미국 전역으로 넓어졌고 수요가 공급을 훨씬 초과하면서 바다가재 몸값도 마구 뛰기 시작했다.

바다가재가 가난의 상징에서 부의 아이콘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리고 때맞춰 미국 메인 주의 바다가재 어부와 수산업자들은 바다가재를 활어로 운송하고 보관하는 기술을 개발해 바다가재 어업을 대형 비즈니스로 육성했다.

환경이 바뀌면 가치이동(Value Shift)이 일어난다. 세상이 급변하면서 19세기, 바다가재 주변에 일어났던 현상이 지금 곳곳에서 재현되는 듯하다. 혹시 내 주변에는 황금알로 바뀌어 줄 천덕꾸러기 바다가재가 어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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