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척과 냉장고 치마

  • 2013.08.06(화) 10:21

올 여름 우리는 두 편의 대통령 드라마를 보았다. 한 편은 무려 21㎏나 되는 강꼬치를 두 손으로 부여잡고 자랑스러워하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주연이었고, 다른 한 편의 주인공은 일명 ‘냉장고 치마’로 불리는 월남 치마 차림으로 바닷가에서 휴가를 즐기는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푸틴 대통령의 월척 영상은 공개와 동시에 진위 여부부터 월척의 무게까지 세계 도처의 네티즌들로부터 여러 가지 의혹이 제기되며 세간의 입방아에 올랐지만, 편안하게 묶은 머리에 헐렁한 긴 치마를 입은 채 저도의 해안가에서 소박한 휴가를 보내는 박근혜 대통령의 모습은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지구촌에 적지 않은 대통령들이 있는데 하필이면 박근혜 대통령의 휴가 사진이 푸틴 대통령의 그것과 비교가 된 걸까?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공교롭게도 며칠 사이를 두고 두 대통령의 휴가 사진이 공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평소 두 사람 다 고집 세고 강인한 이미지를 보여 준 공통점이 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휴가 분위기가 사뭇 상반된다는 점 또한 눈길을 끈 요인 일 것이다. 전달 채널 역시 많이 달랐다. 푸틴의 영상은 크렘린 궁을 통해 발표 된 반면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은 페이스 북에 올려졌다.

사실 한 나라의 운명을 결정하는 국가 최고 의사 결정자인 대통령의 휴가는 언제나 대중의 이목을 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예외 없이 유명한 휴양지를 돌거나 캠프 데이비드 같은 대통령 전용 휴양시설에서 충분히 휴가를 보낸다. 유럽 주요국의 지도자들은 주로 지중해 쪽 휴양지에서 가족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만끽한다. 그리고 이들 지도자들의 즐거운 휴가 모습은 수시로 매체에 보도된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단골 리조트의 지배인이 해고 된 해에 그의 집으로 직접 찾아 가서 만났다는 일화가 소개되었고, 영국의 캐머런 총리는 ‘올위치 테러 사건’ 이 터진 3일 후에 예정대로 휴가를 가서 부인과 느긋한 시간을 보내는 사진이 보도되었다.

이들 사진들이야말로 지도자의 진솔하고 인간적인 매력을 전하기도 하고 때로 위기 시에도 휴가를 즐길 수 있을 만큼 강력한 리더십을 구축했다는 자신감을 은연 중에 보여주는 대통령의 의미심장한 드라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드라마는 대부분 유별난 액션 극이다. 웃통을 벗어 젖힌 채 단단한 몸을 과시하며 말을 타고 사냥을 한다. 낚시를 하면 월척을 낚고, 스킨 스쿠버를 하면 고대 그리스 도자기까지 건져 낸다. 거의 수퍼맨 급이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 강한 남성미를 내세우며 그래서 위대한 지도자 임을 주장한다. 포장 된 스토리를 목청 높여 떠드는 그의 일방적인 소통은 인간적인 공감도, SNS로 하나 된 지구를 살아가는 시대감도 포기한 듯 하여 한 편으로 우습고 한 편으로 슬프고 씁쓸하다.

서민층 중년 여성이면 누구나 한 벌쯤 있음직한 ‘냉장고 치마’를 입고, 한적한 바닷가 모래밭에 무언가를 적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사진. 소박하고 친근하게 느껴지지만 쉽게 눈을 뗄 수 없는 건 아마도 그의 어깨에 얹힌 보이지 않는 묵직한 무게감이 전해져서 였으리라.


여하튼 많이 반가왔다. 휴가 기간에 마치 친구에게 소식 전하듯 올린 대통령의 페이스 북 사진들.  진솔한 소통을 원하는 대통령의 나즈막한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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