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에 '감정'은 배제해야

  • 2013.08.12(월) 18:17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녀 할머니가 광복절을 나흘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향년 87세, 꽃다운 나이에 겪은 일본군 만행의 '한'을 70년 동안 풀지 못하고 가셨다.

 

하지만 요즘 일본의 아베 정권은 자숙하기는 커녕 노골적으로 우경화의 길을 걷고 있다. 아소 다로 일본 부총리가 "독일 나치식 개헌 수법을 배우자"고 말한 데 이어, 그와 친한 한 정치인은 우리 국회의장을 만나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정신 나간 말을 했다.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교묘한 말장난까지 곁들이면서 실제 군사적인 움직임까지 보였다. 일본은 사실상의 항공모함 진수식을 갖는가 하면, 아베 총리는 일제 관동군의 생체실험 부대인 '731부대'를 연상시키는 자위대 훈련기 '731호'에 탑승하기도 했다.

 

아베가 이끄는 자민당은 지난해 12월 중의원(하원) 선거에 이어 지난 7월 참의원(상원) 선거에서도 대승를 거뒀다.(왼쪽 사진) '우경화' 선전전이 영향을 미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경제가 다시 활력을 찾게 된 게 가장 큰 이유다.

 

8월…한국, 중국, 일본 모두 과거 식민지배-침략의 기억에 더더욱 민감해지는 시기다. 그렇지만 동북아시아 3국 간에는 정치와 외교,안보 뿐 아니라 경제 역시 생존과 번영에 있어 필요충분 조건이다.

 

◇ '정반대' 리커노믹스와 아베노믹스

 

이런 차원에서 요즘 중국과 일본은 확실한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중국 경제는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책임지고 있다. 그래서 나온 말이 '리커노믹스'다. 중국을 중진국이라고 표현하며 선진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경제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20여년에 걸친 '급성장기'의 발걸음을 다소 천천히 가져가더라도 기업 구조조정, 금융시스템 개혁 같은 경제의 근본 틀을 제대로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중국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7.8%로 13년 만에 최저치를 보였다. 올해 2분기 7.5%로 더 낮아졌고 6월 수출은 3.1%나 감소했지만 중국 지도부는 성장세가 주춤하는 통계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의 경착륙을 걱정하고 있다. 중국이 휘청하면 유럽의 위기는 저리가라 할 만큼 핵폭탄급 위기가 글로벌경제에 닥칠 거라는 경고다.

 

일본은 어떤가. '아베노믹스'라는 신조어는 돈을 많이 찍어내 경제를 다시 일으킨다는 아베 총리의 경제 정책을 말한다. 돈을 마구 푸니까 자연스레 엔화 가치는 떨어졌다. 수출은 크게 늘고 주가는 많이 올랐다. 해외전문가들은 아베노믹스의 팽창주의를 우려하지만, 일본 내부적으로는 소비가 느는 등 경제회생 분위기가 역력하다고 한다.

 

◇ 가까운 중국, 머나먼 일본

 

한국 경제의 고민은 '리커노믹스'와 '아베노믹스' 그 길이 너무나 다르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우리 경제의 흐름을 보면 중국에 동조화되는 경향이 크다. 상대적으로 일본과는 더 멀어지는 경향이 짙다.

 

국채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을 보자. 지난 6월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양적완화 축소 검토 등을 시사했을 때 한·중·일의 CDS 프리미엄은 동시에 급상승했다. 기업이나 국가의 부도위험이 상승했다는 뜻이다. 7월 들어 버냉키가 말을 바꿔 양적완화 정책을 유지하겠다고하자 3국의 CDS 프리미엄은 함께 떨어졌다. 이처럼 3국의 동조화는 강했지만 지난 7월 22일 중국 인민은행이 대출금리 하한선을 폐지하는 금리 자유화 정책을 발표하면서 달라졌다.

 

일본의 CDS 프리미엄은 8월들어 6.0%로 하락한 반면 중국의 CDS 프리미엄은 18.9%나 상승했다. 우리나라는 11.8%로 중국과 동반상승했다.한국과 중국은 동조화를 이어간 반면, 일본은 안정세를 보이는 미국·영국 등 선진국과 같은 추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통화 스와프 협정에서도 우리가 취한 스탠스는 중국과는 확대, 연장이었고 일본을 상대로는 축소였다. 일본을 외면하고 중국과의 통화 외교를 더 강화한 것이다.지난 6월 한중정상회담에서 합의한 양국간  통화스와프 만기연장 및 규모확대는 우리측이 애걸복걸하다시피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 한-중 정상회담을 위해 중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 경제를 이끌고 있는 리커창 총리와 만나 악수를 나누고 있다.]


한중 정상은 2011년 10월 체결한 통화스와프 3600억위안(64조원)을 2014년 10월 만기가 돌아오는 대로 3개월 다시 연장하기로 했다. 또 글로벌 금융시장 상황을 봐가면서 필요할 경우 통화스와프 규모를 확대하기로 하고 실무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

 

당시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지금과 같이 국제금융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서 한중 통화스와프를 연장하기로 한 것은 양국 간 굳건한 경제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일본과는 정반대였다. 조원동 수석의 말 처럼 '국제금융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일본과의 통화 스와프를 연장하지 않았다.

한국과 일본은 2011년 통화스와프 규모는 700억 달러에 달했지만, 지난해 8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한일관계가 급랭하자 그해 10월 570억 달러의 통화스와프를 종료했다. 박근혜 대통령 들어서도 7월 종료되는 30억 달러 규모 계약도 연장하지 않았다. 100억 달러 남은 것도 2015년 2월 만기가 돌아온다.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 등은 이런 결정에 경제적인 요소만을 고려했다고 선을 그었지만, 결국 국민 정서를 고려한 정치적인 결정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 두 강대국 사이 어정쩡한 '근혜노믹스' 

 

우리나라는 현재 중국 처럼 긴축을 전제로 한 구조조정(리커노믹스)도, 일본과 같은 본격적인 양적 확대(아베노믹스)도 하지 않는 어정쩡한 상태다.

 

우리 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 가까이 될 정도로 큰 것은 분명하다. 그만큼 중국이 중요하다. 아베 정부의 우경화로 감정의 골이 깊어진 상황에서 우리 국민들의 대일감정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그렇지만 지금은 미국이 언제 무제한 달러풀기를 그만둘 지, 중국 경제가 경착륙, 연착륙할 지 모른다. 한일 통화 스와프 규모가 크지 않지만 앞으로 어떤 위기가 닥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에서 한국은 항상 중국과 일본 중간에 낀 나라다. 역사적으로 봐도 중간에서 '중립'은 어렵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생존의 길을 찾아야한다.

 

경제외교에서는 독도, 위안부 문제처럼 우리가 확실한 답을 가질 수 없다. 정치외교적 갈등이 경제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 특히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것는 프로답지 못하다. 경제에 감정을 가져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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