土建族이라 비난 받는 이유

  • 2013.08.16(금) 14:50

기자로 일하다보니 드라마나 영화 속 기자를 보면 반갑고 관심이 가면서도 일면 불편하고 어색하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보는 동류의식과 현실과 극(劇) 사이의 간극이 주는 묘한 엇갈림이랄까.

 

얼굴이 화끈거릴 때도 있다. 극 속 기자들이 거물 정치인이나 재벌 총수, 스타 연예인을 무턱대고 쫓아다니는 파리떼 같은 모습으로 그려지거나 취재라고 보기 어려운 뻔한 질문과 대답을 주고 받는 모습을 볼 때 특히 그렇다. 주는 것만 받아쓰는 건, '밥 먹으면 배부르다' 같은 뻔한 말은 기사가 아니라고 배웠다.
 

물론 권력과 불의에 맞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자존심을 굽히지 않고 물불을 가리지 않으며 특종을 캐려는 기자를 극 속에서 만나면 새삼 부끄러우면서도 응원을 보낸다. 그런 기자가 없진 않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경제 관련 내용을 취재분야로 삼는 기자로서 주변에서 이런 동료를 보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얼마 전, 드라마 속 기자가 된듯한 낯뜨거운 장면 속에 놓이게 됐다. 건설 관련 단체장들이 모여 '1000만 건설 관련 종사자 및 가족 일동'이라는 명의로 '주택·건설경기 회복을 위한 호소문'을 발표하던 기자회견 자리에서였다.

 

주택·건설경기가 최악인 상황에 맞게 분양가 상한제, 양도소득세 중과 등 관련 규제를 풀어주고 취득세율을 낮춰 주택거래를 살리고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늘려 중장기적으로 1000만명에 육박하는 건설 관련 종사자의 생계가 위협받지 않도록 해달라는 주장이었다.

 

드라마처럼 어색한 분위기가 회견장에서 느껴지기 시작한 건 이어진 질의응답부터였다. 자연스러워야할 질의와 응답이 판에 박혀 돌아갔다. 주요 중앙 일간지 2곳, 경제지 3곳, 통신사 1곳의 기자들이 각각 사회자의 호명에 따라 정해진 순서대로 주최 측과 미리 조율한 질문을 던졌다.
 
응답자도 정해진 순서대로였다. 인삿말로 연단에 섰던 최삼규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장(대한건설협회 회장) 외에 박창민 한국주택협회장, 표재석 대한전문건설협회장, 김충재 대한주택건설협회장, 이해광 한국공인중개사협회장 등이 각각 준비해 놓은 답변을 내놨다.

 

기자회견을 하면 진행을 위해 더러는 사전에 질문을 조율하지만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준비된 얘기만 오간 경우는 없었다. 그나마 마지막 질문을 던진 기자가 조율한 질문 외에 건설업계의 구조조정 필요성을 추가로 물었고, 갓 일선에 복귀한 한 일간지 기자가 주거환경 악화의 원인에 대해 질문했지만 형식적 답변에 그치고 진행 시간에 가로막혔다.

 

배포한 보도자료 외에 더 들을 것도 없는 회견이었다. 고위 각료가 나서는 정부 부처 회견에서도, 심지어 정부의 언론 통제 수위가 높은 중국에서도 보지 못한 광경이었다. 드라마 속 노욕이 가득한 얼굴의 회장이 "기자들 한번 불러 모아서 이거 좀 풀지"라고 말하는 장면이 오버랩됐다.

 

사실 그날 기자회견은 내달 정기국회에 앞서 여론을 돌려 야당을 압박하는 게 목적이었다. 회견 주최 측 한 관계자는 "통과되어야 할 (규제 완화) 법안이 촛불 때문에 뒷전이 됐으니 우린 이런 자리라도 만들어야하지 않았겠냐"고 했다. 여론을 돌려 건설업계에 호의적인 정부·여당 측에 힘을 실어주려고 기획한 미디어 이벤트라는 얘기였다.

 

건설 단체들의 주장 자체가 터무니없다는 것은 아니다. 요즘같은 주택·건설 경기 침체기에 규제 장벽은 허물고 투자로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한다. 하지만 건설업계가 스스로의 주장에 진정성을 담고, 또 여론의 반향을 얻으려했다면 방식을 달리해야 하지 않았을까.

 

건설업계가 가진 오명 중 하나가 '토건족(土建族)'이라는 호칭이다. 지난 MB정부 5년이 4대강 논란으로 얼룩지면서 건설업계에 대한 여론은 더 삐딱해졌다. 담합과 비리로 관련 기업과 개인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산업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더욱 굳어졌다.

 

흔한 표현이지만 위기를 기회로 삼아 건설업계가 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싶다. 지원을 호소하기에 앞서 산업을 투명하게 만들고 경쟁력을 키우는 게 우선이다. 건설산업 이익단체인 협회들, 그리고 그 수장들이 '기획성' 기자회견 따위로 초지일관 건설업계에 대한 지원만을 끌어내려 행태는 '역시 토건족'이라는 비난만 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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