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냉장고 외부에 달린 꼭지를 통해 물을 내려 마실 수 있는 제품은 이미 10년에 등장했다. 월풀 등 일부 업체에선 이러한 '디스펜서'에다 정수 기능까지 혼합한 제품을 내놓기도 했다. LG 제품은 엄밀히 말해 전에 없던 새로운 개념이 아니라 정수 기능을 강화한 개선형이라 볼 수 있다. 이날 제품 출시 기자간담회에선 이 대목에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LG전자측은 "기존 디스펜서 냉장고와 전혀 다르다"고 주장했으나 그 근거로 내세운 것은 사후 관리와 필터 갯수의 차이 정도였다. 정수기와 냉장고를 하나로 융합한 정도를 놓고 혁신·신개념이란 거창한 표현을 쓰는 것은 억지다.
신개념 논란보다 씁쓸한 것이 있다. 이러한 융합형 제품이 나온 배경이 수상해서다. LG전자는 이 제품을 통해 정수기 사업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국내 정수기 시장은 코웨이를 비롯한 중견·중소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다. 코웨이는 전체 시장에서 약 50%의 점유율로 1위를 기록하고 있고, 청호나이스와 교원이 뒤를 잇고 있다. LG전자는 이 시장에 뒤늦게 뛰어들었으며, 현재 점유율은 10% 초반대다. 중견·중소기업들이 강세인 이 시장에서 아직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LG전자의 주력인 냉장고에 정수기를 끌어 들인다면 말이 달라질 수 있다. 삼성전자와 함께 가전 양대산맥인 LG전자는 국내 냉장고 시장에서 50% 이상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국내 시장에선 삼성전자를 제치고 1위다.
LG전자의 이번 제품은 정수기 시장을 겨냥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정수기 시장은 제품을 한번에 구입하기 보다는 월 2만~4만원 가량 렌탈비를 내고 빌려쓰는 방식이 대세다. 정수필터 교환비 등이 포함된 렌탈비를 내면 관리사가 찾아와 사후 관리를 해주는 형태다. LG전자가 내놓은 제품도 한달에 추가로 1만8900원씩 내면 헬스케어 매니저가 방문해 정수기를 관리해준다. LG전자로서는 냉장고를 팔면서 덤으로 정수기 사업도 확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기존 업체들과 전면전이 예상된다.
LG전자가 중견·중소업체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시장을 기어이 먹어 들어가려는 것은 대기업 답지 못하다. 동반성장을 하겠다는 대기업이 경쟁 상대를 잘못 정한 것으로 보인다. '시장 선도'를 내건 LG전자가 신개념으로 포장한 제품으로 무리수를 두는 것 아닌지 걱정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