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어회 먹겠다고 사표를…?

  • 2013.10.11(금) 08:31

'순갱노회(蓴羹鱸膾)'라는 고사성어를 아시는지?

4세기 무렵, 중국 진(晉)나라 사람 장한이 가을바람이 소슬하니 불어오자 고향의 순채국과 농어회가 생각난다며 벼슬을 버리고 홀연히 고향으로 돌아갔다는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라는 뜻, 인생은 자신의 마음에 맞는 대로 살아야 한다는 의미로 쓰이는데 미련없이 직책을 버리고 귀향한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와 함께 모든 샐러리맨의 로망을 담았다.

장한과 도연명, 둘 다 호기롭게 벼슬을 버리고 귀향을 한 것은 같지만 배경은 조금 다르다. 도연명은 월급 몇 푼 때문에 어린 상급자에게 굽실거릴 수 없다며 "이제야 바른 길 찾으며 어제가 그릇된 것임을 깨달았다(覺今是而昨非)"는 귀거래사를 남기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쉽게 말해 열 받고 그만 둔 것인데 다만 후회를 하지 않았을 뿐이다.

장한은 또 다르다. 낙향 전, 친구에게 "세상에 어지러워 재난은 끊이지 않는데 벼슬에서 물러나기는 쉽지 않다"며 "인생살이 마음에 맞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지 그까짓 벼슬에 연연해 살 수는 없다"며 답답한 심경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가을바람이 불어오자 고향의 농어회를 핑계로 벼슬을 버렸는데, 직후 조정에서 반란이 일어나 폭군이었던 임금이 죽임을 당했다. 사전에 반란을 예감한 장한은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고향의 농어회를 핑계로 낙향한 덕분에 재난을 면했던 것이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순갱노회의 주인공 장한이나, 귀거래사의 주역 도연명 모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 특별히 호연지기(浩然之氣)을 보여 준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농어회가 얼마나 맛있었기에 장한은 사직을 할 때 고향의 농어회를 핑계로 삼았을까?

중국 역사에서 생선회로는 송강의 농어회를 꼽는데, 바로 장한의 고향이 송강으로 지금의 장쑤성 쑤저우(蘇州) 부근이다. 송강 농어는 황하의 잉어, 양자강 시어, 흑룡강 연어와 함께 고대 중국의 4대 명품 어류로 꼽았는데 다른 곳의 농어와 달리 송강 농어로 회를 뜨면 육질이 눈처럼 하얗고, 입안에서 오래도록 향기가 돈다고 했다.

송강의 농어회 중에서도 맛있기로는 금제옥회(金韲玉膾)가 으뜸으로 수양제가 시찰에 나서자 현지 관리가 송강에서 농어를 잡아 회를 뜨고 양념장을 만들어 바쳤다. 맛일 본 수양제가 "이것이 바로 동남 지방에서 유명하다는 금제옥회로구나"라며 손에서 젓가락을 놓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금제옥회'라는 요리는 금처럼 빛나는 양념장(金韲)과 회로 뜬 농어의 살이 옥처럼 하얗다(玉膾)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생선회와 함께 먹는 양념장인 금제는 여덟 가지 맛이 조화를 이루는데 마늘, 생강, 소금, 좁쌀, 멥쌀, 소금에 절인 백매(白梅)를 귤껍질과 함께 장(醬)에 버무려 만든다.

금제라는 이름은 귤껍질이 황금색으로 빛나기 때문에 생긴 이름인데 옥회인 농어회와 겨자 장, 그리고 금제를 각각 다른 접시에 올려놓으면 각자의 기호에 맞춰서 회와 양념장을 섞어 먹었다. 금제옥회는 훗날 여러 형태로 변하는데 가늘게 썬 농어회와 감귤을 껍질 채 함께 짓이겨 버무리기도 했고 횟감도 농어가 없으면 쏘가리로 대신했다.

핑계도 그럴듯해야 받아줄 수 있는데 농어회는 수양제도 감탄해 젓가락을 내려놓지 못할 정도였다고 하니까 사직의 핑계로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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