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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의 황제 경영과 이사회의 황제 권력

  • 2013.10.11(금) 08:24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박동창 전 부사장 징계
금융당국의 '질서를 어지럽히지 말라' 경고도
설국열차의 메이슨이 생각나는 이유는 뭘까?

“금융지주회사 제도를 도입한 지 12년이 넘었다. 그런데 지금의 지배구조는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 애초의 취지가 무색해졌다. 정말 통렬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의 지혜를 모을 때가 됐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지난 3월 22일 취임식에서 꺼낸 화두다. 다분히 KB금융지주를 의식한 발언이다. 당시 어윤대 회장과 이경재 이사회 의장을 비롯한 이사회는 큰 내분을 겪고 있었다. 우리금융지주도 예외는 아니었다. 고질적인 줄 대기 문화와 사외이사의 낙하산•거수기 논란으로 비난을 한몸에 받고 있었다.

주목할 것은 문제로 지목된 두 금융지주회사는 사실상 정부로부터 통제를 받는 지주회사라는 점이다. KB금융에는 정부 지분이 없지만, 차이가 없다. 신한금융이나 하나금융에서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하나금융의 김승유 전 회장이 계속 집권했다면 혹시 포함됐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신 위원장의 취임 화두는 정권교체와 맞물려 과거 정권 인사들의 퇴진을 압박한 것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0일 KB금융 내분 사태의 진원지인 어윤대 전 KB금융 회장과 박동창 전 전략담당 부사장을 징계했다. 중징계가 거론되던 어 전 회장은 '주의적 경고'라는 경징계을 받았다. 박 전 부사장은 내부정보 전달의 책임을 물어 '감봉'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금융감독당국은 열심히 업무를 수행하다가 실수한 경우는 배려할 수 있으나, 지배구조 변동은 정당한 절차를 거쳐야 하고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어 전 회장과 박 부사장이 미국 주총 안건 분석 전문회사인 ISS와 접촉해 내부정보를 전달한 것은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이사회와 벌인 권력 투쟁이라는 결론이다. 이 같은 결론에 큰 하자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어 전 회장과 박 부사장이 절차적 하자 문제를 해명할 방법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KB금융지주 이사회는 잘했고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CEO와 이사회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이사회가 정상적으로 잘 운영되고 있는 KB금융에선 왜 3번이나 연속으로 CEO가 금융감독당국의 징계를 받아야 했는가? (황영기 전 회장의 징계 건은 정식 재판에서 징계의 절차적 하자로 금융당국이 졌다.)

정권의 실세들이 CEO로 와서 이사회를 무시하는 황제 경영이 탄생했는가? 그 말은 결국 이사회가 제대로 일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닌가? 이사회가 정권의 눈치를 보며 정권의 실세들을 CEO로 추천하지 않았던가? 이사회는 진정으로 이런 과정의 책임에서 자유로운가?

이런 문제가 신한금융과 하나금융에선 왜 발생하지 않는가? 라응찬 전 회장과 김승유 전 회장은 10년 이상 장기 집권했다. '황제 경영'이라면 오히려 그들에게 더 어울리는 단어가 아닌가? 이들의 황제 경영은 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정부의 감시를 더 받는 지주회사에서 더 시끄러운가?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문제가 되는 지주회사에선 통상적인 이사회와 CEO의 관계를 찾아보기 힘들다. 상호 견제와 합리적인 협의와 토론을 통한 의사결정 기구가 아니라는 얘기다. 각자 딴 주머니를 찬 이해 집단에 불과하다. 그것이 신한금융, 하나금융 vs KB금융, 우리금융의 차이다. 그러니 임기 때마다 다툼은 불가피하다.

서로의 밥그릇을 건드리면 다툼은 더 격렬해진다. 이런 과정에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도 꼭 등장한다. 정권과 이사회 멤버들, 정부라는 세 주체의 각자 머릿속이 복잡하니, 최종적인 결론은 항상 ‘합리적’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먼 쪽으로 흐른다. (사실 이런 상황에선 그런 행태가 더 합리적인지도 모른다.)

이사회도 마찬가지다. 내 자리에 시비 걸지 않고 내가 개인적으로 벌여놓은 사업에 떡고물이라도 조금 떨어뜨려 줄 사람이라면 그게 누구든 상관없다. 그 사람이 내 편이다. CEO를 결정할 때도 회사를 잘 키워낼 혜안과 능력보다는 좀 모자라면서 이사회와 당국에 ‘네~네~’ 할 사람이 더 편하다. 인지상정이다.

정부도 매한가지다. 새로 출범한 정치권 실세들의 눈치를 잘 보며 우리 선배 공무원이 자리를 차지하면 다음엔 나한테도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꿈에 부푼다. 이렇게 3자의 오묘한 정무적 판단과 정치적 거래는 이뤄진다.
 

KB금융과 우리금융의 경영성과는 이런 기형적인 구조의 합작품이다. 과거 5년 동안 4대 금융지주회사 중에서 KB금융의 추락은 눈에 띈다. 2008년 대비 5년간의 연평균 순익 규모가 줄어든 곳은 KB가 유일하다. 부실은행이라고는 하지만, 거대 은행 간의 합병으로 탄생한 우리금융의 영업력(영업이익)은 경쟁 지주회사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신한금융은 사실상 1위 자리를 굳혀가는 분위기다. 지배구조의 일부 허점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순익, 영업력, 총자산, ROA, ROE 등 모든 지표에서 가장 안정적이며 탄탄한 모습을 확인시켜 준다. 하나금융도 규모의 약점을 외환은행을 통해 보완하면서 치고 올라가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지배구조 문제는 명확한 정답을 찾기가 쉽지는 않다. 다만, 이들 지주회사에서 황제 CEO가 문제라면 이를 추천하고 견제하지 못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이끌지 못한 이사회의 황제 권력도 문제가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CEO와 이사회는 공동 운명체다. 어 전 회장의 징계가 경징계로 낮춰진 내막이 어떤지는 더 봐야 하겠지만, 이로 인해 KB금융 이사회도 갈등을 파국으로 끌고간 무능과 책임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이들 회사의 자리를 놓고 밥숟가락 얹기에 신경을 더 쓰는 정부 고위 공무원들은 과연 이들의 지배구조를 논할 자격이 있을까?
 
"누구도 신발을 머리 위로 쓰진 않는다. 신발은 그러라고 만든 게 아니니까! 애초부터 자리는 정해져 있어. 나는 앞좌석, 당신네는 꼬리 칸. 당신들의 위치를 잘 알라고, 당신들 자리나 지켜!"
 
올해 개봉한 영화 설국열차에서 메이슨(틸다 스윈턴)의 대사다. 그는 영화에서 제복을 입은 공무원(총리)이다. 우리의 금융업계 사정과 크게 다를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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