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카오스토리
  • 검색

미국의 불장난, 우리는 왜 침묵하나

  • 2013.10.15(화) 10:33

미국의 정치권이 국가부도를 볼모로 한 불장난을 계속하고 있다. 이틀 뒤인 오는 17일이면 연방정부는 의회가 정한 부채한도에 도달해 더 이상 빚을 낼 수 없다. 그리고 이르면 열흘쯤 뒤면 미국 정부는 이자를 갚을 돈까지 다 떨어지게 된다. 디폴트(default) 즉, 국가부도다.


빚 갚을 돈을 빌려줄 사람이 사라져서 발생하는 전형적인 국가부도와는 달리, 미국의 국가부도 위험은 스스로 발목을 잡은 결과다. 일종의 자살행위다. 그 충격이 어떠한 양상일 지, 얼마나 클 지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계 최대의 기축통화 국가가 무너지는, 세계 최대의 금융시장이 붕괴되는 초유의 사태이기 때문이다. 단지 전문가들은 '재앙'이라는데 의견이 일치할 뿐이다.

물론 너무나도 엄청난 일이기 때문에 실제로 미국 의회가 그런 일을 저지를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국 재정의 안정성, 미국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에 대한 의구심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번 일 하나만으로 대단한 변화가 생기긴 어렵겠지만, 반복되는 재정정책 갈등으로 인해 미국의 신뢰는 뿌리에서부터 침식돼 가고 있다.

미국은 전세계를 상대로 헐값에 돈을 빌려 소비하는 만성 적자경제다. 50년 전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미국의 터무니 없는 특권"을 바로 잡겠다며 미국 국채를 반납하면서 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에게 금을 요구할 수도 없게 됐다. 드골 대통령의 달러화 공격 몇 년 뒤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달러와 금의 연결고리를 끊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40년 가까이 발행된 미국의 '무담보' 채권은 이제 그들의 정치적 불장난감으로까지 전락했다.

미국이 부도를 내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미국 재무부는 최근 보고서에서 "금리가 폭등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국채가격이 폭락할 것이란 얘기다.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게 된다. 그럼 미국 국채는 누가 보유하고 있을까. 미국이 부도를 내면 누가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될까.

미국 연방준비제도에 따르면, 지난 6월말 현재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주체는 해외 공공기관들이다. 우리나라의 한국은행과 같은 해외 중앙은행들이 '외환보유액'의 형태로 미국 국채를 주로 갖고 있다. 이들이 보유한 미국 국채 규모는 총 4조92억 달러에 달한다. 미국 국채 발행 잔액의 34.2%에 달하는 돈이다. 해외 민간 투자자들도 미국 국채를 1조9370억 달러를 갖고 있다. 이와 별도로 해외 은행 미국 지점들도 669억 달러의 미국 국채를 보유 중이다. 미국 정부가 진 빚 가운데 절반이 '외채'인 셈이다. 따라서 미국정부 부도에 따른 손실의 절반은 해외로 떠넘겨지게 된다.
 


지난 7월말 현재 미국 정부에 돈을 가장 많이 빌려준 나라는 중국이다. 1조2773억 달러의 국채를 보유 중이다. 외국인 보유분 가운데 23%나 차지한다. 일본이 보유한 국채 역시 1조1354억 달러를 미국 정부에 빌려준 상태다. 우리나라는 514억 달러를 갖고 있다. 동북아 3국이 미국 국채의 4분의 1가량을 집중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만약 미국이 부도를 내면 수 십 년 동안 무역으로 쌓아 올린 국부를 상당부분 날려버리게 된다. 따라서 미국 정치권의 불장난에 대해 이들 국가 정부는 목소리를 내야 한다. 대외적으로는 그러 자격이 있고 대내적으로는 그럴 의무가 있다. 우리는 무슨 목소리를 냈던가?
 


미국 국내 경제주체 중에는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미국 정부에 가장 많은 돈을 빌려줬다. 국채 보유량이 1조9366억 달러에 달한다. 양적완화 정책 덕분(?)이다. 미국 정부가 부도를 내면 미국 중앙은행의 자산은 상당부분 허공으로 사라지게 된다.

금융위기 이후 연준은 2조8000억 달러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돈을 시중에 풀어놨다. 나중에 혹시라도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경우 연준은 보유 국채를 시장에 팔아 돈을 거둬 들여야 한다. 그런데 만약 국채의 가치가 폭락한 상황이라면 풀린 돈을 다 거둬들이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미국 국채가격의 폭락은 따라서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폭발시킬 수 있다. 그러면 달러화 가치는 폭락할 것이며 미국 국채를 포함한 달러화 표시 자산을 보유중인 해외 중앙은행과 민간투자자들과 금융기관들은 추가적인 손실을 입게 된다. 
 


미국의 개인투자자(가계)들도 국채를 1조 달러 이상 갖고 있다. 뮤추얼펀드나 MMF 형태로 보유중인 국채도 상당하며, 연기금을 통해 간접적으로 투자한 돈도 막대하다. 은행 등 금융기관들 역시 대규모의 국채를 갖고 있다. 부도가 난다면 미국의 개인과 기업의 저축 상당액은 증발하게 된다. 대규모의 손실을 입은 은행들은 여신 중개기능을 상실할 위험에 처하며, 보험회사들은 지급능력을 잃게 된다.

물론 이런 시나리오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미국의 정치인들이 불장난을 그만 두고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려 놓으면 - 지금 시장은 모두들 그렇게 예상하고 있다 - 위험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런 불장난 와중에 혹은 그 결과로 국채 발행시장으로의 자금 유입이 끊어진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번 사태를 통해 드러났듯이 미국 정부는 빚을 더 내지 못하면 단 하루도 굴러갈 수 없다. 국채 발행시장이 망가져 금리가 급등하면, 이로 인해 불안감이 심화돼 발행 목표액을 채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아마겟돈' 시나리오는 현실화될 수 있다. 미국 정치인들이 남의 재산을 가지고 앞으로도 계속 불장난을 치면 그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지난 1971년, 미국의 일방적인 금 상환 거부에 초조해 하던 유럽의 재무장관들에게 당시 미국 재무장관 존 코낼리는 이렇게 말했다. "달러는 우리의 통화다. 그러나 문제는 당신들의 것이다." 이제는 우리도 그들에게 뭔가 얘기해야 한다.

 

안근모 글로벌모니터 편집장

SNS 로그인
naver
facebook
goog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