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은 미국 국채를 탕감해줄 수 있을까

  • 2013.10.28(월) 10:10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지난 24일 현재 미국의 국가부채는 총 17조777억2930만9281 달러 하고도 56센트다. 이 가운데 정부 기관간의 채무를 제외한 진짜 대외부채 즉, 국채발행을 위주로 해서 민간에게 빌린 돈은 총 12조1221억 달러다. 이 '민간'에는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가 포함돼 있다.


미국 연준에 따르면, 지난 6월말 현재 미국 연방정부가 발행한 국채는 총 11조7071억 달러였다. 이 가운데 연준이 1조9366억 달러를 보유 중이다. 총 국채발행 잔액의 16.5%에 해당하는 규모다.

 

지난 6월말 현재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비율은 GDP의 71.5%에 달한다. 금융위기 이전에만 해도 부채비율은 35%에 불과할 정도로 미국 재정은 매우 건전했다. 그러나 5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에 부채비율이 두 배 이상 높아졌다.

 

만약 연준이 보유 국채를 모두 탕감해 준다면 미국 정부의 부채비율은 60%로 떨어지게 된다. 부채가 급증하고 있는 정부를 위해 중앙은행이 이 정도 선심을 써준다면 ‘재정’을 둘러싼 워싱턴의 멱살잡이도 없어지지 않을까? 연준은 정말 그렇게 해줄 수 있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렇게 해봐야 아무런 소용도 효과도 없다. 부작용만 있을 뿐이다.

 

연준의 부채탕감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지난 23일 현재 연준이 보유한 국채는 총 2조1012억 달러로 불어나 있다. 양적완화가 계속되고 있어서다. 이 채권을 모두 탕감해 주면 연준은 그 액수만큼을 손실 처리해야 한다. 이 손실은 곧바로 회계장부에 반영된다.


현재 연준의 자본은 총 274억5000만 달러다. 만약 연준이 국채를 전액 탕감해 준다면, 일반적인 회계기준을 적용할 경우 자본이 '마이너스 2조737억 달러'로 돌변한다. 국채탕감에 따른 손실을 완충하기에는 자본이 턱없이 부족하다. 일반적으로 중앙은행의 자본이 잠식되면 정부가 이를 메워줘야 한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는 예외다. 일반 회사와 달리 연준은 어떠한 경우에도 적자 결산을 기록하지 않는다. 지난 2011년 1월1일부터 시행되고 있는 새로운 내부 회계규정 덕분이다. 따라서 연준은 어떠한 경우에도 자본이 잠식되지 않는다. 따라서 미국 정부는 어떠한 경우에도 연준의 자본을 보충해줄 필요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연준의 국채 탕감은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연준이 나중에 보유국채를 팔아서 초과 유동성을 거둬 들일 경우 큰 손실을 입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많다. 채권을 매입할 당시에는 저금리(높은 채권가격)였는데, 팔 때는 고금리(낮은 채권가격)일 것이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연준이 파산할 수도 있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연준은 아무리 큰 손실을 입어도 적자결산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놀라운 회계의 마술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연준 대차대조표의 부채란을 보면 '기타 부채 및 미지급 배당금(Other liabilities and accrued dividends)'이란 항목이 있다. 지난 23일 현재 96억3400만 달러가 잡혀 있다. 이는 대부분 연준이 미국 정부에 진 빚을 의미한다.

 

연준이 정부에 빚을 졌다? 그렇다. 연준은 해마다 이익이 발생하면 자체 운영비용을 제외하고는 모두 정부에 납입한다. 지난해에는 884억 달러, 2011년에는 754억 달러를 정부에 넘겨줬다. 이렇게 이익금을 이전하기 이전에 회기 중에 발생한 이익은 '부채'로 잡아 둔다. 결산 뒤에는 줘야 할 돈이니까.


만약 연준이 회기 중에 쌓아둔 돈보다 많은 손실을 입은 경우에는 이 항목이 '마이너스'로 바뀐다. 예를 들어 이 항목에 100억 달러가 쌓인 상태에서 2조 달러의 미국 국채를 탕감해 손실이 발생하는 경우 '기타 부채 및 미지급 배당금' 항목은 -1조9900억 달러로 표시된다. 부채가 마이너스란 뜻이다.

 

마이너스의 마이너스는 플러스이듯이, '마이너스 부채'는 부채의 반대말인 '채권'을 의미한다. 즉, 연준이 미국 정부로부터 1조9900억 달러의 받을 돈이 새롭게 생겼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연준이 보유국채를 탕감해 주는 즉시 정부로부터 받을 돈이 즉시 발생한다. 미국 정부는 연준으로부터 국채 상환 채무를 탕감 받는 즉시 연준에 갚아야 할 새로운 채무를 안게 된다.

 

따라서 연준의 국채탕감은 아무런 소용도 효과도 없다.

 

그럼 새롭게 생긴 정부의 부채는 연준에 어떻게 상환될까. 만기는 없다. 매년 넘겨받던 연준 이익금으로 차츰 줄여나가야 한다. 연준이 그 해에 100억 달러의 이익이 생기면 해당 부채항목은 '마이너스 1조9800억 달러'로 줄어든다.

 

빚을 탕감 받을 때 좋은 것은 이자부담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초부터 미국 정부는 연준이 보유한 국채에 한해서는 이자부담을 지지 않는다. 정부가 연준에 지급한 이자가 매년 이익금 형태로 정부에 반환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준으로부터 국채를 탕감 받아야 할 이유도 애초부터 없다.

 

물론 국채 탕감을 받은 뒤에는 부채의 '만기'가 사라지는 이점이 있긴 하다. 그러나 연준이 탕감해 주기 이전에도 그 국채만큼은 만기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만기가 돼서도 연준이 똑 같은 양의 미국 국채를 새로 사들이면 자동으로 원금상환이 연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론을 다시 말하자면, 연준이 미국 국채를 탕감해 줘봐야 아무런 소용도 효과도 없다. 괜히 중앙은행이 정부의 빚을 탕감해줬다는 오해만 불러 일으켜 중앙은행과 달러화에 대한 신뢰만 허공으로 날릴 뿐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왜 자꾸 '연준의 국채 탕감'이라는 아이디어들이 떠오를까. 그만큼 미국 정부의 빚이 걱정된다는 뜻이리라.

 

연준이 사 준 미국 국채는 모두 '이자가 없는 채권'이나 마찬가지다. 연준이 그 국채에서 받은 이자를 정부에 다 돌려주기 때문이다. 즉, 미국 정부는 연준을 경유해 화폐를 발행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즉, 미국 중앙은행은 정부가 화폐를 발행할 수 있도록 이름을 빌려주고 있는 셈이다.

 

이런 것 하지 말라고 중앙은행을 정부로부터 독립시키지 않았던가?

 

따라서 연준이 설사 국채를 탕감해 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독립성이 '상실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연준은 잃어버릴 독립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나라는? 약간 다를 뿐 크게는 같다(大同小異). 그게 '독립적인'이라는 모순되고 기만적인 수식어를 가진 중앙은행이라는 제도의 공통된 특성이다. '독립적인 중앙은행'이란 말의 조립구조는 '둥근 네모'와 같다. 즉, 언제 어디서나 중앙은행은 그 자체로 정부기관이다. 따라서 미국 연준은 국채를 탕감해 줘야 할 이유가 없다.

 

안근모 글로벌모니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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