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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보는 애널리스트..땅에 떨어진 가치

  • 2014.01.08(수) 14:01

“이것 때문에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하고 있어요.”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의 볼멘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렸다. 빡빡한 일정으로 꽉 채워진 애널리스트의 일과에 브레이크를 건 것은 ‘CJ CGV가 영화 관람료를 1000원 인상한다’는 기사였다. 이 애널리스트가 이날 오전 관람료 인상 내용이 담긴 CGV에 관한 보고서를 냈고, 그 내용이 기사화되면서 문제가 생겼다. CGV 측에서 “가격인상은 사실무근”이라고 발끈하며 나섰다.

가격 인상은 민감한 문제다. 회사들은 가격을 인상하기 전에 정부의 '눈치'를 본다. 영화 관람료 인상안이 확정되기도 전에 애널리스트 보고서를 통해 ‘내부 정보’가 샜고, 기사를 통해 공론화되면서 회사가 화들짝 놀란 것이다.

결국 이날 이 애널리스트는 두 번이나 보고서를 수정했다. 처음엔 “요금인상은 1) 일괄 1000원 인상(38개 사이트) 2) 가격 다변화 (33개 사이트) 형태로 진행될 것”이란 문구를 삭제했고, 두 번째는 아예 가격 인상에 관한 내용을 다 덜어냈다. 이 보고서를 기반으로 작성된 기사도 몇 번 수정됐다.

 

회사의 압박에 굴복한 것인지, 처음부터 팩트 자체가 틀렸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기업 눈치를 보는 애널리스트의 단면을 본 것 같아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며칠 뒤 삼성전자가 4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4분기 영업이익은 8조3000억원으로 전분기보다 18.31% 감소했다. ‘어닝 쇼크’였다. 삼성전자 주가는 3000원(0.24%) 내리며, 덤덤하게 반응했다. 시장보다 더 충격을 받은 쪽은 애널리스트였다. 정확히 얘기하면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다.

실적 발표 전인 새해 초 국내 대부분의 증권사는 삼성전자 4분기 영업이익을 9조원대로 전망했다. 한 증권사는 10조500억원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외국계 증권사는 비관적이었다. BNP파리바와 크레디트스위스 등이 전망한 삼성전자 영업이익은 8조원 중후반대였다. 국내 애널리스트의 완벽한 패배였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6월에도 국내파와 해외파는 삼성전자 2분기 실적을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그 당시 승자도 삼성전자 실적을 비관적으로 본 외국계 애널리스트였다.

단순한 실력 차일까?

한 외국계 증권사 임원은 이 현상을 이렇게 분석했다.

“애널리스트 입장에서 보면, 삼성전자 외에 대안이 딱히 없다. 삼성전자를 포트폴리오에서 빼면 하이닉스, LG전자, LG디스플레이 정도가 대안인데 좀 약하다. 그러니 삼성전자가 안 좋은 것 알면서도 포트폴리오에서 뺄 수 없다. 요즘 국내 애널리스트들이 삼성전자 주가 내렸다고 IR에서 눈치 보는 일은 솔직히 별로 없다.”

하지만 국내 증권가에서 눈치 보고 사는 애널리스트에 대해 쉽게 부정할 수는 없는게 현실이다.

‘증권가의 꽃’으로 불리는 애널리스트는 펀드매니저와 기관투자자 앞에서 ‘을’이다. ‘갑’은 주식 매매 주문을 내는 펀드매니저와 기관투자자다. ‘갑’의 눈치를 보는 것은 ‘을’의 숙명이다. 지난해 2만5000개가 넘는 보고서 중 ‘매도’ 보고서는 단 2개에 불과했다. 

 

 

지난해 말 한 애널리스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겼다. 이 애널리스트는 자동차 분야 베스트 애널리스트다.

"애널리스트 '무용론'이 여의도에 팽배해있다. 리서치 공급과잉, 마케팅 지향 분석의 가벼움, 정량위주의 세미나 카운팅 등 많은 이유로 리서치에 대한 밸류(Value)는 이미 땅에 떨어진 듯하다. 가끔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낯이 뜨거울 때도있다. '내가 왜 지금 여기서 동기가 결여된 이들 앞에서 이렇게도 불편한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을까...', '이미 마음이 다른 곳을 향해있는 이들 앞에 내 세미나는 무슨 가치와 설렘이 있단 말인가...'

90년대 말부터 증권사 리서치에만 몸담아왔던 내게 이런 변화는 낯설면서도 참 쓰리고 아프다. 00년 초엔 리서치 애널리스트에 대한 관심과 호응이 정말 폭발적이었다. 세미나와 발행 보고서가 곧 수익이었고, 돈이었다. 새로 생겨난 자문사 대표님들은 대우증권 리서치에 일일이 인사를 다니며 세미나와 탐방으로 자주 볼 수 있겠냐는 어필(?)을 하고 다니실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뭘 잘못해온걸까, 왜 이런 급한 변화의 시기에 적응하지 못했던걸까, 분석의 밸류를 다시 되찾고 존경을 얻기 위해선 어떤 노력과 변화가 선행되어야 할까...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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