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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저금리' 약속을 둘러싼 불신

  • 2014.03.17(월) 10:35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의 총재로 일하고 있는 마크 카니(사진)는 한동안 중앙은행 세계의 락스타(rock star)로 통했다.

 

그는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로 있던 지난 2009년 4월 기준금리를 0.25%로까지 인하했다. 더 이상 금리를 내릴 수 없게 된 그는 중앙은행들 중에서 처음으로 '포워드 가이던스'라는 비전통적 통화정책 수단을 도입했다. "현행 초저금리를 2010년 2분기까지 계속 유지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앞으로 적어도 일년 동안에는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고 약속함에 따라 금융시장에는 추가적인 완화기조가 제공됐다.

 

2012년말, 카니 총재는 당시를 자랑스럽게 회고하면서 "포워드 가이던스는 중앙은행이 스스로 자신의 손을 묶는 정책"이라고 설명했다. 카니 총재는 당시 포워드 가이던스가 성공했던 배경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1) 당시 중앙은행의 약속은 이례적이었으며, 매우 명료했다.

 

2) 그 기간 동안 중앙은행은 300억 달러의 예외적인 유동성을 공급해 말한 대로 행동했다.

 

3) 전문가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직접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내용이 단순했다.

 

그러나 카니 총재의 캐나다 중앙은행은 약속한 기간이 끝나자마자 금리를 인상해 버렸다. G7 중앙은행 중에서 가장 먼저 '정상화'에 돌입한 것이다. 2010년 6월부터 9월까지 세 차례의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커지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처럼 유연한 정책태도는 더욱 큰 칭찬을 받았다. '포워드 가이던스'라는 기발한 정책수단을 최초로 도입해 경기를 성공적으로 띄운 데 이어, 인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해 신속하게 부양회수에 돌입함으로써 중앙은행의 신뢰를 높였다는 것이다. 이는 영국이 캐나다 국적의 카니를 귀화시켜 중앙은행 총재로 스카우트하게 된 핵심 배경이었다.

 

그러나 최근 캐나다 한 주요 은행은 카니 총재의 평판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카니 총재의 정책이 캐나다 경제를 오히려 망쳤다는 것이다. <캐나다제국상업은행(CIBC)>의 투자은행인 <CIBC 월드마켓>은 얼마 전 보고서에서 "카니 총재의 캐나다 중앙은행이 2010년 금리인상 이후에도 계속 추가인상 신호를 금융시장에 전달함에 따라 캐나다 달러가 과도하게 절상되고 말았으며, 이 때문에 많은 공장들이 문을 닫게 됐다. 반면 이 과정에서 유입된 해외 자금으로 인해 부동산시장이 뜨거워졌으며, 캐나다 경제는 결국 제조업보다는 주택경기에 의존하는 구조를 갖게 됐다"고 지적했다.

 

당시 캐나다 중앙은행은 '추가 금리인상' 신호를 계속 전달하면서도 기준금리는 1.0%의 매우 낮은 수준을 유지했는데, 이것이 캐나다달러 절상과 부동산시장 붐을 동시에 유발했던 것이다.

 

캐나다 중앙은행은 새 총재 취임 뒤인 지난해 10월 들어 금리인상 신호를 폐기했는데, 이를 기점으로 캐나다달러는 본격적인 약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CIBC의 리포트는 "때는 늦었다"고 지적했다. 많은 공장들이 이미 문을 닫은 뒤라는 것이다.
 


카니 총재의 이런 기민하고 유연한 이력(履歷)은 이제 영란은행에 부메랑으로 되돌아 왔다. "앞으로 금리를 올리더라도 더디게, 조금만 인상하고 말 것"이라는 내용의 새로운 포워드 가이던스를 발표했지만, 금융시장은 이를 매파적으로 인식해 영국 파운드화의 절상에 베팅하고 있는 것이다.


영란은행이 지난달 공표한 새 포워드 가이던스는 미국과 유로존 중앙은행에게도 지침이 될 만한 완전히 새로운 개념을 담고 있는 것이었다. 종전과 달리 특정한 경제지표에 연계시킨 명료한 가이던스가 아닌, 애매모호한 경제개념(유휴자원)에 결부시킨 '정성적(qualitative)' 요소를 골간으로 하고 있다. 이는 카니 총재가 자랑스럽게 말했던 포워드 가이던스의 요체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카니 총재의 전력(前歷)과 더불어 시장이 영란은행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또 하나의 배경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부의장으로 지명된 스탠리 피셔(사진)는 중앙은행 세계의 대부(代父)로 통하는 인물이다. 그가 MIT대 교수로 있을 때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과,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머빈 킹 전 영란은행 총재, 로렌스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 올리비에 블랑샤르 IMF 수석 이코노미스트가 그에게서 경제학을 배웠다.


실물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hyper active)하는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중앙은행들의 기조는 피셔의 정책철학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문제(?)는, 그의 '적극적 통화정책' 스타일이 양방향으로 다 개방돼 있다는 데 있다. 또한 피셔는 중앙은행의 포워드 가이던스 정책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인 자세를 보여왔는데, 이러한 사실들은 포워드 가이던스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향후 연준의 부양정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개연성을 갖고 있다.

 


피셔는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로 있던 지난 2008년 4.25%이던 기준금리를 0.5%로까지 인하했다.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단 일년 사이에 금리를 3.75%포인트나 낮춘 것이다. 그는 양적완화 정책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더 이상 금리를 인하할 여지가 없어졌다고 판단한 피셔 총재는 2009년 3월부터 8월까지 이스라엘 국채를 시장에서 매입함으로써 추가적인 부양기조를 제공했다.

 

그러나 2009년 9월이 되자 그는 양적완화를 종료했을 뿐 아니라 기준금리까지 0.75%로 인상했다. 주요국 중앙은행 가운데 가장 앞장서서 금리를 올린 결정이었다. 금리인상은 일회성으로 그치지 않았다. 인상 사이클은 2011년 6월까지 1년 9개월간 이어졌으며, 인상폭은 2.75%포인트에 달했다.

피셔 총재의 유연성과 기민성은 그 뒤에도 다시 과시됐다. 금리인상 사이클을 종료한 지 불과 넉 달 만인 2011년 11월, 이스라엘 중앙은행은 금리인하 사이클에 돌입했다. 이후 이달까지 기준금리는 2.5%포인트나 낮춰졌다. 이제 이스라엘의 기준금리(0.75%)는 2009년 저점 부근으로까지 낮아져 있다. 뜨거운 물과 찬물, 다시 뜨거운 물을 번갈아 틀어 젖히는 '샤워실의 바보'를 연상케 한다.

 

피셔 총재는 지난해 9월 한 콘퍼런스에서 "포워드 가이던스 같은 발표는 믿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중앙은행조차도 앞으로 일년 뒤에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 알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포워드 가이던스는 미래에 환경이 바뀌었을 때 중앙은행의 정책을 제약하게 되며, 따라서 너무 많은 포워드 가이던스를 제공하면 정책의 유연성이 제거된다"고 그는 지적했다. 샤워꼭지를 좌우로 마음껏 돌리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이번 주 글로벌 금융시장은 오는 18~19일 예정된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 이목을 모으고 있다. 이 회의에서 연준은 포워드 가이던스를 개편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본 골격은 영란은행의 그것을 따를 것으로 보인다.

 

스탠리 피셔의 관점에 따르면, 보다 정성적이고 모호하게 바뀌게 될 포워드 가이던스는 연준의 유연성과 재량을 대폭 높여주는 특성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연준에게 새로운 도전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중앙은행이 그랬던 것처럼 금리는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인상될 수도 있음을 시장이 의심할 것이기 때문이다. 연준은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 애를 쓸 것이고 실제로 '더 낮은 금리를 더 오래(lower for longer)' 제공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러한 예상이 과거처럼 확고한 신뢰로 금융가격에 형성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안근모 글로벌모니터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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