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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삼과 조선시대 서해의 중국 황당선

  • 2014.05.23(금) 08:31

해삼은 바다에서 나오는 인삼이라서 해삼(海蔘)이다. 그만큼 몸에 좋다는 뜻으로, 전설적으로 전해지는 옛날 산해진미에도 해삼이 포함돼 있다. 해삼은 옛날부터 우리나라에서 잡히는 것이 품질이 좋았던 모양이다.

 

특히 해삼을 좋아하는 중국에서는 조선 해삼이 인기가 높아 중국으로 길 떠나는 사신이 반드시 챙겨야 했던 필수품목 중의 하나였다. 현지에서 선물하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뿐만 아니라 선호도가 높다보니 사신 일행이 경비를 마련하는데 더 이상 좋은 물품이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국으로 가는 일행이 너도나도 말린 해삼을 가져가다 보니 여러 가지 폐단과 함께 당시에도 지금과 같은 국제 무역 분쟁까지 생겼다. 다신 정약용이 경세유표(經世遺表)에서 그 폐단을 지적했다.

"동지에 중국으로 떠나는 사신이 항상 있는 것은 아니다. 앞서 떠난 사신이 4월에 돌아오는데 새로 가는 사신은 6월에 출발하니 그 사이가 겨우 한두 달에 지나지 않는다. 동지사 이외에도 별도의 사신이 가끔씩 출발한다. (중략) 사신으로 임명된 자들은 외부에다 편지를 내어 동물 가죽과 해삼, 가위 따위 등의 자질구레한 물품을 요구하지 않은 적이 없고 이것을 팔아서 여행경비로 충당한다. 국경을 나서는 사신이 물건을 팔아 경비를 조달하는 짓을 하면서도 부끄러워 할 줄도 모른다"

당시 중국으로 가는 사신들은 경비를 자체 조달했는데 그중 가장 인기 있었던 품목이 바로 해삼이었다. 중국에서 조선 해삼이 그만큼 수요가 많아 값어치가 높았기 때문이다. 너도나도 해삼을 장만해 떠났으니 물량이 넘쳐 때로는 요즘처럼 무역 규제를 받기도 했다. 영조실록에 당시 중국 세관의 움직임을 보고한 기록이 실려 있다.

"청나라 예부에서 이르기를 산해관으로 들어오는 해삼이 봉성에서 검사 도장을 찍은 것보다 숫자가 더 많은데 금년에는 비록 면세로 들여 보내주지만 앞으로는 세금을 거두겠다고 한다"

봉성은 조선을 떠나 중국으로 들어가는 첫 번째 길목이고 산해관은 베이징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마지막 관문이다. 최초 세관 신고 때보다 더 많은 물량이 적발됐다는 것인데 하지만 조선 해삼의 인기가 워낙 높다보니 이렇게 사신 일행이 가져가는 것만으로도 모자랐다.

때문에 중국 어선이 서해로 몰려와 마구잡이로 해삼을 잡아갔다. 정조 무렵에도 중국 어선이 백령도 주변에서 해삼을 무더기로 잡아가 문제가 됐다. 당시의 실학자 이덕무가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 "4월에 바람이 잔잔해지고 날씨가 화창해지면 황당선(荒唐船)이 몰려와서 육지에서는 한약재를 캐고 바다에서는 해삼을 따다가 8월에 바람이 거세지면 돌아간다. 8~10척의 배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는데 한 척당 수십 명이 와서 초도, 백령도 사이에 출몰한다"고 기록해 놓았다.

게다가 남의 바다로 넘어와서 부리는 행패가 상당히 심했던 모양이다. 육지에서 도끼를 메고 걸어 다니며 호박이건 참외건 제멋대로 따먹고 뿌리까지 망쳐버린다고도 적었다.

영조실록에도 "중국 배들이 해삼을 채취하려고 계절이 바뀔 때면 서해안에 몇 백 척이 출몰해 지방 수령들이 쫓아내려고 해도 저들은 수효가 많고 우리는 숫자가 적다"고 개탄하는 모습도 보인다. 요즘 세월호 참사로 경계가 소홀한 틈을 타 중국 어선의 불법조업이 기승을 부린다. 어종만 달라졌을 뿐 중국 어선이 마구잡이 불법으로 서해안을 넘어온 역사가 꽤나 뿌리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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