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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탕과 정조 임금

  • 2014.06.06(금) 08:43

꽃게는 간장게장으로 담가 먹어도 별미지만 꽃게 찜도 맛있고 꽃게탕 역시 입맛을 유혹한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어떻게 먹어도 좋다고 할 수 있겠다.

조선시대 정조가 아꼈던 인재 중에 정민시(鄭民始)라는 사람이 있었다. 홍국영과 함께 발탁되어 권세가 막강했지만 홍국영과는 달리 분수를 지킬 줄 알았기에 정조의 사랑을 받았다.

정조 임금이 꽃게탕을 무척 좋아했던 모양이다. 정민시의 처갓집에서 꽃게탕을 맛있게 끓인다는 소문이 한양에 널리 퍼져 정조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정조가 정민시에게 처갓집에 부탁해 꽃게탕을 끓여 먹자고 했다. 임금의 명을 받은 정민시가 장모님에게 청해 꽃게탕을 끓이고 있는데 마침 외출했다 돌아 온 장인 이창중(李昌中)이 이 모습을 봤다. 사연을 들은 이창중이 "사사롭게 음식을 만들어 임금에게 바치는 것은 감히 신하가 해서는 안 될 일"이라며 끓이던 꽃게탕을 엎어 땅에 묻었다.

아무리 조선의 르네상스 시대를 연 정조라도 기분이 좋았을 리 없지만 그렇다고 이창중을 문책하지도 않았다. 다면 골려 줄 생각에 불러다 시험을 했는데 오히려 그 능력을 보고 크게 감탄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유원의 문집인 임하필기(林下筆記)에 실려 있는 이야기다.
 
꽃게탕을 얼마나 맛있게 끓였으면 임금이, 그것도 성군으로 유명한 정조가 한번 먹어보자며 청을 했는지도 궁금하지만, 신하가 임금에게 사사로이 음식을 바쳐서는 안 된다며 꽃게탕을 엎어 버린 이창중이나 이런 신하를 품었던 정조 임금이나 모두 대단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게를 좋아한 사람으로는 고려의 시인, 이규보를 빼놓을 수 없다. 당나라에 이태백이 있다면 고려에는 이규보가 있다고 할 정도로 당시 동아시아에서 이름을 떨쳤던 인물로 '찐 게를 먹으며'라는 시까지 썼을 만큼 게 맛에 빠졌다. 이규보는 게를 산해진미보다도  한 단계 더 맛있는 별미로 여겼는데 게를 먹으며 오른손을 다쳐도 왼손으로 먹을 수 있으니 좋고, 술에 취해 푹 잠이 들어 아픈 고통을 느끼지 못하니 게야말로 진정한 의사라고 예찬했다.

3세기 무렵, 중국 진나라에 필탁(畢卓)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부랑이라는 벼슬을 지냈는데 술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옆집에 술이 익은 것을 알고는 밤새 훔쳐 마시다가 그 집 머슴에게 덜미를 잡혀 포박을 당했다. 이튿날 필탁을 관가에 넘기려는데 가만히 보니 이부랑인 것을 알고는 그냥 풀어 주었다. 그러자 필탁은 아예 주인을 불러 아침부터 그 집 술독을 다 비운 후에 취해서 돌아갔다.
 
필탁이 평소에 하는 말이 "술 수백 섬을 배에 가득 싣고 사시사철 뱃머리에 앉아서 오른손으로 술잔을 잡고 왼손으로 게 집게다리를 쥐고 마시고 먹으며 지내면 일생이 그것으로 만족하다"고 했다.

진서(晉書) 열전에 나오는 이야기로 강호의 풍류를 즐기며 세상 욕심 버리고 산 인물로 유명하지만 필탁은 결국 술 때문에 관직에서 물러났다. 본인 뜻대로 인생을 만족하게 산 것인지 아니면 술로 인해 인생을 그르친 사람인지는 판단이 쉽지 않다. 맛있는 음식도 어떻게 먹는지에 따라 사람의 품격마저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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