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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상은 요리사였다

  • 2014.06.20(금) 08:43

 

옛날이나 지금이나 재상은 높은 벼슬이다. 조선시대에는 정2품 이상을 재상이라고 했고 지금도 국무총리, 장관쯤은 돼야  재상 소리 듣는다.

하지만 고대 사회에서 재상은 요리사, 주방장이었다. 재상이라는 한자를 보면 분명해 진다. 재상은 재상 재(宰)자에 서로 상(相)자를 쓰는데 재라는 글자는 집 면(宀)자 안에 매울 신(辛)자로 구성된 글자다.

 

라면 덕분에 신이라는 글자를 맵다는 뜻으로만 알고 있지만 그 외에도 큰 잘못을 저지른 죄인이라는 의미도 있다. 재상이라고 할 때의 재(宰)는 그러니까 집안에서 일하는 죄인이라는 뜻이다. 고대 귀족가문에서 집안일을 총괄하는 사람 혹은 주방 일을 도맡아 관리하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비롯된 단어다.

재상이 음식을 만들고 나누어 주는 사람에서 비롯된 단어라는 사실은 고대 예법을 적은 유교 경전인 주례(周禮)에서도 찾을 수 있다. 재상의 어원은 천관총재(天官冢宰)로 주나라 때 국정을 총괄하고 궁중 사무를 전반적으로 관장하는 벼슬이었다. 천관총재가 담당했다는 업무는 주로 어떤 것이었을까?

천관(天官)은 하늘에 제사 지내는 업무를 관장했던 사람이지만 총재(冢宰)는 제사 지낼 때 쓰는 음식을 맡았던 사람이다. 다시 말해 준비한 제사 음식을 제사가 끝난 후 참석자에게 음식을 골고루 나누어 주는 것이 총재의 업무다. 그렇다면 재상의 상(相)은 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서로 '상'자 이외에 접대하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다. 역시 주례에는 제사에 참석한 이들을 접대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나온다.

정리하자면 재상은 집안에서 살림을 맡아 음식을 장만해 제사를 지내고, 참석한 사람들을 접대하며 공평하게 분배하는 사람이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재상의 역할이 정말 하찮았다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고대 국가를 상상하면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씨족사회에서는 족장의 집이 곧 나라였고 집안 일이 바로 나랏일이었다. 군주는 바로 집안을 다스리는 가장, 혹은 가문을 이끄는 씨족장이었다.

씨족사회의 나랏일 중에는 하늘과 조상님께 지내는 제사가 가장 큰 행사였다. 음식을 장만해 원로를 모셔놓고 대접하는 것이 내분을 없애는 내치였고, 연회를 열어 다른 씨족과 협상하고 화합하는 것이 외교였다. 이렇게 집안일을 도맡아 음식을 준비하고 제사를 관장하며 음식을 공평하게 나누어주는 주방장의 역할이 제일 중요했기에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 주방장을 맡았다. 그것이 바로 주례에 보이는 천관총재이고 왕권강화 후 재상이 되었던 것이다.

재상이 주방장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백성을 고르게 잘 먹이는 것이 정치의 근본이니 음식을 잘 만들어 공평하게 배분해 주면 훌륭한 재상이 된다. 반대로 신분과 역할에 따라 공평하게 분배하지 못하면 불만이 생기니 정치 불안으로 이어진다. 그러니 재상의 임무가 막중하다. 죄인처럼 일해야 한다.

지금 나라에서 새로운 주방장들을 뽑으려 한다. 집안에서 죄인처럼 일할 사람을 뽑자는 것이지 죄인을 들이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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