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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비 논란, 정부는 없었다

  • 2014.06.27(금) 16:32

아이들은 늘 싸우면서 큰다. 하루라도 싸우지 않는 날이 없다. 싸움의 원인은 대부분 장난감이다. 같은 장난감을 두고 서로 소유권을 주장하다 급기야 한쪽이 울컥한다. 그러다 싸움판이 커진다. 몸싸움은 예사다. 
 
씩씩거리는 아이들을 불러 놓고 왜 싸웠는지를 묻는다. 아이들이지만 나름의 논리가 있다. "제가 먼저 가지고 놀고 있는데 얘가 빼앗았어요" "이건 제건데 형아가 허락도 안받고 갖고 놀잖아요"
 
지난 26일 자동차 연비 재측정 결과 발표를 보며 지난 주말 우리집 풍경이 떠올랐다. 국토교통부와 산업통상자원부의 다툼이 꼭 이와 닮았다. 서로 자기만이 옳다며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는 모습은 어린아이들의 장난감 다툼과 다르지 않았다.
 
 
1년여를 기다렸던 결과다. 업계와 소비자들은 지난 1년동안 정부가 합리적인 결과를 내놓을 것이라 기대하며 기다렸다. 국토부와 산업부가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같은 방법으로 재측정을 했으니 뭐가 달라도 다를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국토부와 산업부는 자신들의 입장만 고집했다. 업계와 소비자들이 느끼는 배신감은 크다. 정부라는 한 지붕 아래 두 부처가 자신들의 이익에만 집착하는 모습에 할말을 잃는다.
 
일각에서는 국토부와 산업부의 충돌 이유를 다른 곳에서 찾는다. 그동안 자동차 업계를 관장해온 곳은 산업부다. 국토부는 늘 이게 못마땅했다. 자신들이 산업부 뒤치다꺼리나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꺼내든 회심의 반격 카드가 '연비'라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토부는 늘 자동차 업계를 장악하고 싶어했다"며 "리콜 등 사후처리 뿐 아니라 좀 더 적극적으로 업계를 장악해 자신들의 휘하에 두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대표 산업인 자동차 업계를 장악하기 위해 국토부가 '연비'를 걸고 넘어졌다는 이야기다.
 
국토부의 전략은 일단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정부는 향후 자동차 연비 측정 창구를 국토부로 일원화하기로 했다. 연비 기준도 국토부의 기준이 채택됐다. 자동차 업계에 국토부 시대가 오게 됐다. 밥그릇 싸움에서 국토부가 이긴 셈이다. 이제 밥그릇은 국토부 차지다.
 
하지만 국토부도 산업부도 밥그릇 싸움에만 치중했을 뿐 정작 중요한 것은 챙기지 못했다. 바로 업계와 소비자의 신뢰다. 정부 부처는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 모든 것을 잃는다. 신뢰를 받지 못하는 부처의 정책을 따를 국민은 없다.
 
그들은 밥그릇 빼앗을 생각만 했지 그 안에 담아야 할 것들을 간과했다. 밥그릇을 밀고 당기는 와중에 그 속에 담겨있던 소중한 것들은 그릇 밖으로 쏟아지고 말았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 사실을 그들만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업계는 더 이상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 시키는대로 했는데 상은 커녕 벌을 주는 정부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소비자들도 마찬가지다. 자기들 밥그릇 싸움에 소비자 이익이라는 명분으로 들러리를 세운 꼴이니 믿음이 가겠는가.
 
업계와 소비자들의 관심은 누가 밥그릇 주인이 되느냐가 아니다. 합리적이고 명확한 기준이다. 신뢰할만한 잣대다. 빈 밥그릇에 다시 신뢰가 채워질지 더 많은 불신이 쌓일지는 이제 그들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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