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어 국에 담긴 조선 치욕사

  • 2014.08.29(금) 08:11

 

일본 사람들 복어 좋아한다. 당연히 요리도 발달했다. 그러니 옛날부터 복요리가 유명했을 것 같지만 일본인들 무려 300년 동안 마음 놓고 복어를 먹지 못했다. 허락 없이 먹으면 처벌을 받았다. 어쩌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을까? 

“죽고 싶으면 조선 가서 죽어라”

임진왜란 직전, 전쟁 원흉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불같이 화를 냈다. 전쟁을 시작도 하기 전에 죽는 사무라이와 병졸이 속출했기 때문이다. 복어 때문이었다.

1592년 히데요시는 조선 침략을 위해 일본 전국에서 16만 명의 병력을 동원했다. 일본 열도 구석구석에서 출발지인 시모노세키 항구로 몰려왔는데 그중 상당수가 바다를 처음 본 산골 출신이었다.

시모노세키는 예나 지금이나 복어가 많이 잡히는 지역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복어에 치명적인 독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산골출신의 병졸들은 값싸고 맛있는 복어를 먹으며 독이 있는 내장까지도 멋모르고 끓여 먹었다.

적지 않은 병사들이 복어를 잘못 먹고 죽었다. 자칫 조선 출병에 차질이 빚어질 정도였다. 화가 난 히데요시가 결국 복어 금식령을 내렸다.

글자를 모르는 병사를 위해 복어 먹으면 엄벌한다는 그림을 그린 말뚝을 곳곳에 박았다. 이후 복어 먹고 죽는 사무라이는 크게 줄었지만 덕분에 일본인들은 무려 300년 동안 마음 놓고 복어를 먹을 수 없었다.

복어 금식령이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도 지속됐기 때문이다. 전쟁이 잦은 일본에서 자칫 복어를 먹다 사무라이가 사망하면 전력에 차질이 빚어지기 때문에 계속 복어를 먹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일본 정부가 근대 초기인 1882년에도 “복어를 먹으면 구류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는 법령까지 만든 것을 보면 나라에서 아무리 복어를 먹지 못하게 했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복어를 먹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병력손실을 이유로,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국민의 안전을 이유로 복어를 먹지 못하게 했지만 맛있는 음식을 찾는 인간의 원천적 욕구는 이기지 못했던 것이다.

일본에서 복어 금식령이 풀린 것은 복어를 못 먹게 한 지 꼭 300년 후인 1892년이다. 한일합병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해제했다. 초대 총리가 된 히로부미가 시모노세키를 방문해 춘범루(春帆樓)라는 여관에 머물렀다. 때마침 거센 폭풍우가 불어 배들이 출항을 못해 싱싱한 생선이 떨어졌다.

여관 주인이 할 수 없이 금지 생선인 복어를 요리해 히로부미에게 대접했고 복어 맛에 감탄한 히로부미가 현 지사에게 요청해 춘범루에서는 특별히 복어요리를 팔 수 있도록 조치했다. 복어 금식령이 해제된 계기다.

참고로 춘범루는 우리 역사와도 관계가 있다. 조선 지배권을 놓고 싸운 청일전쟁의 결과로 시모노세키 조약이 체결된다.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와 청나라 리홍장(李鴻章)이 조약을 체결한 장소가 바로 춘범루다. 이 조약에서 청나라는 요동반도와 타이완, 펑후섬을 일본에 양도하고 조선이 완전한 자주 독립국임을 확인했다. 일본이 한반도를 마음대로 병합해도 청나라가 간섭하지 못하도록 근거를 만든 것이다.

복어 국 한 그릇에도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게 당했던 치욕의 역사가 담겨있다. 오늘(29일)이 마침 우리가 일본에 강제로 병합된 경술국치일이다. 지우고 싶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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