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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갈비에 담긴 조조의 속뜻

  • 2015.01.09(금) 08:15


닭갈비는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 인기 메뉴지만 닭갈비 자체는 먹을 것이 별로 없다. 몸집이 작은 닭의 폐와 심장을 보호하는 모두 일곱 개의 뼈 사이에 붙어 있는 근육이 닭갈비이니 실제로 버리기에는 아깝지만 진짜 먹을 것은 없는 부위다. 때문에 삼국지의 계륵(鷄肋) 이야기까지 생겼는데 조조의 닭갈비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은 과연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삼국지에서 조조는 유비와 전략적 요충지인 한중 땅을 놓고 싸움을 벌인다. 세력이 불리한 상황에서 더 이상 싸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후퇴하기도 어려운 난감한 심정을 조조는 계륵, 즉 닭갈비라고 표현했다.

 

먹자니 먹을 것이 없고 그렇다고 버리기에는 아깝다는 뜻인데 ‘계륵’이라는 말에서 조조의 고민을 눈치 챈 행군주부 양수(楊修)가 후퇴 명령이 내려지기도 전에 서둘러서 짐을 꾸려 철수를 준비한다. 그러자 다른 장수들도 모두 양수를 따라 짐을 꾸리며 철수 준비했다. 이 모습을 본 조조가 군대의 사기를 떨어뜨렸다는 죄목으로 양수의 목을 베어 처형한다. 조조는 왜 양수를 죽였을까?

 

삼국지를 읽어보면 양수는 자신의 재주를 지나치게 과시했고 조조는 그런 양수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삼국지의 작가인 나관중은 닭갈비 이야기를 통해서 조조의 난폭함과 간교함을 강조했다.

 

그런데 조조가 그렇게 난폭하게 부하를 죽였을 정도로 형편없는 인물이고 속 좁은 사람이었다면 어떻게 수많은 장수를 거느리며 궁극적으로는 유비와 손권을 물리치고 천하를 통일하는 초석을 다질 수 있었을까?

 

역사적으로 닭갈비, 계륵이라는 말에서 양수가 공격할 수도 없고 철수하기에는 아까운 조조의 심중을 남보다 먼저 알아차린 것은 소설적 창작이 아닌 사실이다.

 

소설이 아닌 진수(陳壽)가 쓴 역사책 삼국지의 주석에도 “왕이 계륵이라는 암호를 내리자 관속들이 그 뜻을 몰랐는데 주부인 양수만이 스스로 장비를 꾸렸다. 이유를 묻자 양수가 ‘무릇 닭갈비라는 것이 버리기에는 아깝지만 먹기에도 별 소득이 없으니 한중에 비유한 것이다. 왕의 뜻이 돌아가려는 것이다’라고 했다. 5월에 군사를 이끌고 장안으로 돌아갔다”고 나온다.  

 

하지만 조조가 양수를 죽인 이유는 소설과 달리 역사책에서는 다르게 나온다. 양수를 처형한 것은 후계구도를 굳건하게 다지기 위한 포석이었다. 양수를 처형할 무렵 조조는 첫째 아들인 조비를 태자로 책봉한 상태였다. 그런데 셋째 아들인 조식이 형의 자리를 넘보고 있었다. 이런 조식에게 여러 차례 지혜를 빌려 준 사람이 머리가 비상하다고 소문난 양수였다.

 

조조는 후계자인 장남 조비의 권력기반을 확실하게 굳히기 위해 셋째 아들인 조식을 죽일 수는 없고 대신 양수를 반드시 처형해야 했다. 양수는 재주가 비상했을 뿐만 아니라 집안이 원술 가문과 맞먹는 명문가였고 게다가 원술 가문과는 혈연으로도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니 양수가 조식을 도와 조비에게 반기를 들 경우 나라에 큰 화근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조가 양수를 처형한 이유는 소설 삼국지의 묘사처럼 닭갈비, 계륵을 통해 자신의 속마음을 들켰기 때문이 아니라 조조의 아들 조비와 조식의 권력투쟁의 희생양으로 삼았던 것이다. 후세에 조조가 간웅(奸雄)일지언정 영웅으로 불리는 이유다. 나라를 통치하는 정치인이 됐건 기업을 경영하는 총수가 됐건 참고할 만한 용인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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