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발견, 내 주변을 돌아 보세요

  • 2015.11.06(금) 09:20

[인사이드 아웃] 조정화 J코칭연구소 대표

올 초 한 벌의 원피스가 전 세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다. 이른바 '파검 드레스 논쟁'이다. 드레스 사진을 본 네티즌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이 옷이 '흰색-금색'이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파란색-검정색'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로 나뉘었기 때문이다. 아예 다른 색으로 보인다는 사람도 있었다. 똑같은 사진이 다른 누구에게는 전혀 다른 색으로 보인다는 사실에 많은 네티즌들이 신기해하며 사진을 퍼 날랐다.

 

▲ 파검 드레스 논쟁을 불러 일으킨 SNS 사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신'에는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할 당시의 인디언 이야기가 짧게 등장한다. 콜럼버스의 배들이 수평선에 나타났을 때 인디언들은 바다를 보면서도 배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지구 끝이라 믿은 수평선에서 무언가 다가오는 상황을 원주민들이 경험해 본적이 없고, 커다란 범선에 대해서도 아무 지식과 정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렁이는 파도를 주의 깊게 관찰하던 주술사가 먼저 배를 발견하고 사람들에게 설명을 해준 뒤에야 인디언들은 눈 앞에 다가온 범선을 볼 수 있었다.

 

16년 전 하버드대 심리학과는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여자 6명이 농구를 하는 영상을 보여주고, 흰 옷을 입은 사람끼리 패스한 횟수를 세는 실험이었다. 참가자들이 흰 옷과 공의 움직임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동안, 영상에서는 고릴라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 가슴을 쿵쾅 치고 농구하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간다. 이것이 바로 심리학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실험으로 손꼽히는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이다. 고릴라가 천천히 걸어 들어와 유유히 사라지는데도 사람들의 절반은 고릴라를 보지 못한다.

 

파검 드레스 사례가 시각이 잠시 왜곡되는 착시 현상이라면 다음 소개된 두 사례는 어떤 대상을 보지 못하는 맹시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눈으로 시각 정보가 들어오는데도 뇌로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을 무한한 능력을 가진 지적인 존재라고 생각하는데 정말 그럴까? 일반적으로 사람은 1초에 4000억 비트의 정보에 노출되는데,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은 2000 비트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 중 무언가는 당신에게서 계속 배제되고 있다.
 
일상이 반복되다 보면 모든 일에 익숙해져서 자기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나는 잘 알고 있다', '더 알게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가족의 사는 모양, 매일 출근해서 하는 일, 새로울 것 없는 인간관계와 뉴스에 나오는 그렇고 그런 일들, 그 어떤 것에서도 뻔하지 않은 게 없이 느껴진다. 세상의 풍경과 외부 세계에 대해서도 다른 사람 역시 나와 같은 것을 보고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위의 여러 사례들에서 보듯이 그것은 인간의 착각이다. 색이나 모양처럼 눈에 들어오는 비주얼 뿐만 아니라 사람을 보는 관점,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자기 앞에 펼쳐지는 현실은 사람마다 완전히 다른 그림이 된다. 많은 철학자들이 말했듯 세상에 절대적으로 불변하는 객관적인 실체란 없다. 모든 게 익숙한 어느 거리에서 맥 없이 있다가 노점 상인들이 떡볶이를 뒤섞고 열심히 그날의 노동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면 나는 정신이 번쩍 든다. '빨리 좀 커라' 내심 닦달하면서 아이를 보다가 문득 아이의 얼굴에서 미래의 어른이 설핏 비치면, 서운함과 놀라움에 혼자 심쿵하고 만다.

 

계절은 변하고 바람도, 잎사귀도, 앞을 지나는 차들도, 사람도 이미 어제의 그것이 아니다. 우리가 정말 정확하게 아는 것이 무엇일까. 모든 게 어제랑 똑같다고 자신할 근거는 무엇인가. 우리는 내일 일은 커녕 지금 자기 뒤통수에서 벌어지는 일 조차 100% 알지 못한다. 소크라테스의 명언 '너 자신을 알라'는 '자신이 얼마나 모르고 있는 지를 알라'는 말일 것이다. 삶의 변화는 새로움의 추구보다 모르던 것을 하나씩 발견해가는 것, 못 보던 것을 조금씩 보게 되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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