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영화는 시한부 환타지 동화다.
세상의 끝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의 여유는 길지 못하고
그 곳에서의 치유도 카페인 효과만큼 선별적이고 짧다.
하얀 크레마(crema) 같은 파도가 밀려드는 해안 끝 마을.
세상의 끝에서 헤매는 싱글맘 에리코.
이변이 없는 한 그녀는 또 다른 양아치에게 맘을 뺏길 것이고,
방치된 아이들은 자라면서 독립심 보다는 컴플렉스와 삐딱함에
지배당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세상의 끝으로 피신온 미사키.
그녀는 창고를 개조한 카페 모서리에 높은 등을 달고
실종된 아버지를 기다린다.

이 영화를 커피맛으로 비유하면
밋밋하지만 사연 많을 거 같은 쿠바 커피 같다.
사실 쿠바 커피는 그다지 맛나지 않다.
에디오피아 예가체프처럼 자극적이지 않고
흐린 가을 날씨처럼 한적하고 밋밋하다.
실제 영화속에서 쿠바 커피는 나오지 않는다.
카페 주인장 미사키는 탄자니아 커피를 자주 볶는데,
탄자니아는 집중하고 먹어야 숨어있는 맛과 향이 발견된다.
드립을 내릴 때도 물줄기나 온도가 맞지 않으면
바로 맛이 틀어지곤 해서,
탄자니아는 종종 까탈스런 여성에 비유된다.

(필자 맘대로 커피 취향에 따라 성격 분석을 해보면)
누군가 탄자니아 커피가 맘에 든다면 까다로운 과정을 통해 골랐기 때문에,
그 사람은 맘의 문을 쉽게 열지 않고, 섬세하고 예민할 것 같다.
자극적이고 대중적인 에디오피아 예가체프는
드립의 기본 자세만 지키면
쉽게 향과 맛을 내주기 때문에 그만큼 인기가 많다.
예가체프는 뜨거운 아프리카 햇볕을 받고 자라
맛과 향을 보장하는, 소위 먹고 들어가는 타입이다.
그런 예가체프가 좋다면 무난한 성격에
사회생활에 잘 적응하는 스타일이 아닐까?
에디오피아 보다는 밋밋하지만
브라질 보다는 튀는 콜롬비아 커피가 좋다면
커피의 맛과 비슷하게 묵직한 성격의 소유자일 것 같다.
웬만해선 고유의 맛을 보여주지 않는
코스타리카, 온두라스, 멕시코 등이 좋다면
평범함을 즐기는 무난한 성격일 가능성이 크다.
드립커피의 갑으로 꼽히는 케냐가 땡긴다면,
산전수전 다 겪고 합리적인 결론을 내리는 적극적인 사람일 것 같다.
드립커피를 이것저것 열심히 먹다보면
그 종착역은 향미가 으뜸인 케냐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만델링을 자꾸 찾게 된다면,
초컬릿, 달콤한 쓴 맛을 찾으려는 유형이니
대중적이고 평범함 속에서도 차별화를 시키려고 노력하는
적극적인 사람이 아닐까 싶다.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하와이안 코나, 요즘 유행하는
게이샤 이름 붙은 고가의 차별화된 커피가 좋다면
바쁜 일상에서도 여행이나 여가를 즐기며
최대한 시간을 활용하는 긍정적인 캐릭터 같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커피는 비중이 적은 엑스트라다.
실제 카페주인 미사키는 커피종류나 맛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다.
그녀의 커피 로스팅은 요란스럽지 않다.
커피가 얼마나 볶아졌나, 확인봉을 자주 보지 않는다

드립도 야구 베트 잡는 법만 가르쳐 주는 것처럼
주전자를 드는 각도만 잡아준다.
커피를 내릴 때 물조절에 실패하면
기껏해야 쓰거나 맹탕일 뿐이다.
마사키는 커피도 인생도 그런 디테일이 중요하지 않은 걸 알고,
드립 고수가 되는 것 보다는
주전자 잡는 법을 알려주고
물 붓고 기다리며 웃어주는 여유를 택한다.
그녀는 아이들과 미혼모에게 카페문을 열어만 놓고
들어오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그냥 커피를 내리며 덤덤하게 말한다.
"커피 한 잔 할래요?"
풀어쓰면 이런 말 아닌가
"어쩌면 우리 친구나 연인이 되거나
맘이 맞을 수도 있으니
한 번 만나서 살짝 서로에 대해 알아보죠.
서로 아니라면 그냥 웃으며
쿨하게 빠이빠이 하면 되니 얼마나 좋아요"
실제 영화속에서 "커피 한 잔 할래요?" 이 말이
불편함과 갈등이 해결되는 전환점이 된다.
커피 한 잔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역할을 해낸 것이다.
그렇다고 커피 한 잔 했다고 모든 게 좋게 돌아가진 않을 것이다.
인생도 커피도 치유나 온기는 늘 짧으니까.
두 여자는, 두 아이는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

미사키의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고
미혼모의 남자 보는 눈도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아이들은 자랄 것이고 만만치 않은 삶이 기다린다.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는
누군가 나를 위해 내려준 커피다'
이 여유와 온기를 그들이 기억한다면
고단한 삶을 씩씩하게 헤쳐나가는 힘이 되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