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초 국내 모 백화점 임원들에게 자사주 매입이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사장부터 상무보까지 주요 임원들이 적게는 10주에서 많게는 300주 이상을 장내에서 사들였다. 당시 회사측은 "경영진이 책임경영과 실적개선의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로부터 10개월 뒤. 한때 30만원 고지를 밟았던 이 회사 주식은 20만원대 초반으로 주저 앉았다. 그룹 회장까지 나서 IR(Investor Relations·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홍보활동) 강화를 주문했지만 허사였다. 이 회사 IR임원은 결국 연말 임원인사에서 옷을 벗었다.
그 역시 월급쟁이였다. 올해 초 약 1200만원을 들여 자사주 50주를 사들인 이 임원은 퇴임통보를 받은 지난 24일 자신이 보유한 주식 전량을 내다팔았다. 주가를 띄워도 아쉬운 상황에서 IR임원의 주식 매도 사실은 증권가에 뒷말을 남겼다. 그는 "가족의 여행자금으로 쓰려고 판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룹 계열사를 통틀어 첫 IR임원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던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 IR임원으로 남을지 모른다. 이 회사는 공석이 된 IR임원 자리를 충원하지 않고 그대로 비워둘 방침으로 알려졌다.
그룹 회장은 이달 초 "IR을 통해 외부투자자와 고객에게 회사의 가치를 제대로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부에선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실적악화로 고생하고 있는데 돈을 벌어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주가를 끌어올린 것도 아닌 IR임원에게 책임을 묻는 게 당연하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 때문일까? 올 한해 거래가 끝나는 지난 30일 이 회사 주가는 하루종일 하락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1년 전에 비하면 15% 가까이 떨어졌다. 한 포털사이트 종목게시판에는 그룹 회장이 사재를 털어서라도 주가를 올려야 한다는 개미투자자의 글이 올라왔다.
경영자에게 IR은 일종의 보험과 같다. 평소에는 비용이 드는 분야일지 몰라도 길게 보면 우호주주를 확보하고 적대적 인수합병(M&A) 같은 외부의 위협을 줄이는 방패역할을 한다. 그런 방패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더구나 경영권 분쟁을 겪고 있는 이 그룹에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