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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이라 행복합니다

  • 2018.05.14(월) 09:11

[페북 사람들]방보영 프리랜서 다큐감독


스승의 날이 다가오면
평소에는 잊고 지내던
선생님 한 분의 성함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5학년 담임이던 이춘호 선생님


자라면서 많은 스승을 만났지만
가장 먼저 이 선생님이 떠오르는 건
어린마음에도 존경심이 컸던 터다.


이 선생님은 항상 원칙과 책임감을
강조하면서 스스로 몸소 실천하셨다.

 

존경할 수 있는 선생님을 만난다는 건
인생에 있어 큰 선물 중 하나일 것이다.

 


지난달 27일 이화여대에서는
한 교수님의 퇴임식이 있었다.
전길자 명예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33년간 정들었던 교단을 떠나는 시간
제자들이 감사의 자리를 준비하려 했지만


전 교수는 오히려 이 자리까지 올 수 있도록
힘이 되어준 제자들의 응원에 감사한다면서
퇴임식에 온 분들의 식사를 자비로 대접했다.


비록 한 끼 식사였지만 그 안에는
제자들을 가르친 마음가짐이 담겨있었다.

 


30년 넘게 정든 교단을 떠나는 마음은 어떨까.


"시원합니다.
최선을 다해 교단에서 에너지를 쏟은 만큼
섭섭한 마음은 그렇게 크지 않아요.

퇴임 후 해야 할 일들도 많습니다.


교단을 떠나면서 남는 아쉬움이라면
교수의 역할이 교육(education)에만 매여
학생들을 만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교수와 학생 관계에서 한발 더 나아가
선생님으로서 가르침을 주고 싶어
제 전공이 화학인데도 강의 전에
시를 많이 읽어주곤 했습니다.


아무래도 교수보다는 선생님으로
다가서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지금 이 시간 가장 고마운 사람은 누구일까.


"남편인 변재일 의원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함께 전하고 싶어요.


제가 내조해야 할 일들이 참 많았는데
언제나 든든하게 제 길을 응원해줬죠.

말없이 곁에서 큰 힘이 되어줬어요.


이렇게 정년까지 일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남편의 내조 덕분입니다."

 


가정에서 전 교수는 어떤 스승이었을까.
이대병원 피부과 조교수로 일하고 있는
큰딸 변지연 씨는 이렇게 말한다.


"스승으로서 엄마요?
삶의 중요한 시기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신이 살아온 삶을 통해 가르침을 줬어요.


인생에 대한 태도와 지식에 대한 열정
가족과 일에 대한 헌신 등
엄마의 삶을 통해 많이 배웠습니다."

 


김앤장 변호사로 이날 퇴임식 사회를 맡은
작은딸 변영리 씨는 또 이렇게 말한다.


"스승으로서 엄마는 저 스스로
장점을 찾아 잠재력을 키울 수 있도록
가이드해주고 또 기다려주셨어요.


모르는 분야는 직접 공부하셔서
제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줬어요.


제 능력을 판단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갖고 그 옆을 지켜준 안내자였죠."

 


전 교수는 정작 제자인 만희 씨를
자신의 스승으로 꼽는다.
만희 씨는 현재 캄보디아에서
한글을 가르치면서 봉사하고 있다.


"선생님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을 일깨워주시는 분이세요.


다양한 주제와 영역으로
새로운 인식의 문을 열고자 노력하시고
주변 이들의 귀와 눈을 열어 평안을 살피고


어깨동무를 청하는 낮은 이들에겐 
기꺼이 마음과 지갑을 열어
그들 스스로 새로운 세상을 열 수 있도록
용기와 소망을 북돋아 주시는 분이셨어요."

 


전 교수의 퇴임 후 구상이 궁금했다.


"교육 환경이 열악한 지역을 찾아
이것저것 봉사하려고 합니다.


제가 그동안 제자들을 길러낼 수 있었던 건
한국전쟁 후 외국에서 온 선교사들이
100년을 내다보고 교육에 힘썼던 결과입니다.


그 사랑을 되돌려 주는 게 제 일이라고 봐요.

 


이대엔 아시아교육봉사회(VESA)가 있어요.
캄보디아 스렁이라는 낙후된 지역 땅을 구입해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지을 계획입니다.


현재 고등학교 건물까지 지어졌습니다.
건물만 보면 시골마을과 잘 어울리진 않지만
100년을 내다보고 학교를 건축하고 있어요."

 


"가난한 이 지역 아이들에게
학교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죠.


베사 회장님인 신승혜 명예교수님을 비롯해
이 일에 많은 분이 힘을 보태주셨습니다.


개인 대출까지 받아 기증해준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신 교수님은 많은 도전정신을 심어주셨어요.
인생의 가장 큰 보람은 나눔이라고 말씀하셨죠.


나눔보다 더 큰 즐거움은 없다.


제가 여행을 좋아해 많은 나라를 둘러봤지만
그 즐거움은 잠시 잠깐에 그쳤죠.


반면 나눔은 힘들긴 하지만 하면 할수록
변치 않는 행복을 준다는 말씀이 와 닿았어요."

 


"배움을 향한 학생들의

열정 어린 눈을 바라보면
밝은 미래를 꿈꾸게 됩니다.


이화스렁유치원에서 자란 아이들이
벌써 고등학생이 되었어요.


몇 년 뒤에는 대학생이 되고
또 그 몇 년 뒤에는 졸업생이 나올 겁니다.

그들이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겠죠.


그리고 백년 뒤

우리는 이 자리에 없겠지만
이곳에서 공부한 수많은 학생들이
캄보디아 곳곳에서 스승이 되어 있을 겁니다.


저는 지금 참 행복한 씨앗을 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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