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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이라도, 떠나요 제주도~

  • 2020.03.27(금) 09:55

[페북사람들] 방보영 프리랜서 다큐감독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면서

이곳저곳 화려한 꽃이 피기 시작한다.

예년 같으면 추운 겨울 내내

움츠린 마음들이 기지개를 펴면서

봄나들이에 한창일 텐데

올해는 코로나19의 여파로

가지각색 봄 축제는 사라지고

시름시름 봄앓이를 하고 있다.

김자빈 카페루나 대표는

다음 달이면 제주살이 만 5년이 된다.

"24살에 부산시청 공제회에 입사해

16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다 퇴사하고

2016년 4월 제주도로 이사했어요.

직장은 쳇바퀴 돌듯 하잖아요.

뭔가 제 삶의 터닝 포인트가

필요한 시점이었던 것 같아요.

마침 언니네 가족이 교육문제로

제주도에 정착한다면서

카페를 함께 운영하자고 제안했고

덕분에 제주로 내려오게 되었어요."

"지금은 카페가 사계리로 옮겼는데

처음엔 화순리 높은 언덕에 있었죠.

형부가 직접 설계하고 지은 건물

한 층을 빌려 카페를 시작했어요.

눈앞의 욕심을 채우는 삶보다

어울려 사는 삶을 꿈꿔 왔는데

여기선 이웃사촌이란 말이 실감나요.

사람들 간 따뜻한 정이 가득해요.

아침에 출근해 산방산과 송악산

형제섬과 마라도를 한눈에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누리다 보면

새로운 일이라 몸은 고되고 힘들지만

이유 없이 아팠던 곳이 다 사라지고

이젠 건강도 되찾았어요."

"사계리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에요.

특히 산방산에서 송악산 입구로 이어지는

사계리 해안도로는 한 폭의 그림 같아요.

제가 여기로 온 이유 중 하나입니다.

언젠가 제주로 여행을 오신다면

꼭 한번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어요."

"사계리로 카페를 이전하기 위해

1년 전 공사를 시작해 최근 끝냈는데

코로나19가 덮치며 마음고생이 커요.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으로

국내외 관광객들이 확연히 줄었어요.

다만 제주로 오면서

제 삶에 변화가 하나 생겼어요.

그전엔 불안이 스트레스로 이어졌는데

지금은 급한 일이 많이 생겨도

서두르지 않게 되고 조바심도 사라졌죠.

마음에 공간이 생겨나 여유가 생겼어요."

"공사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카페 오픈이 계속 늦어지고

코로나19로 매출도 확 줄었지만

부정적인 생각보단 어떻게든 되겠지

그런 긍정적인 마음이 생겨요.(웃음)

이곳 특징 중 하나가 느림의 미학이죠.

여기엔 배달서비스가 없어요.

뭐든 필요하면 직접 사러 가야 해요.

쇼핑은 생각도 못해요.

처음엔 스트레스가 좀 있었는데

지금은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대리 만족을 느끼고 있어요."

김 대표는 '다같이 먹자, 제주 한바퀴!'란

맛집 칼럼도 쓰고 있다.

"가장 추천해 드리고 싶은 메뉴는

서귀포 대정읍 신평리에 있는

수제황칠돈가스입니다.

먹자마자 와우! 이런 느낌은 아닙니다.

인삼보다 귀하다는 황칠나무와 잎을

우려내 보리 섞은 밥을 짓고

소스를 얹어 돈가스가 돋보이도록 했죠.

평범한 로컬 재료로 심플하게 만든

예스러운 맛과 알찬 10가지 반찬의

밸런스가 기가 막힙니다."

"제주하면 흑돼지가 유명한데

구잇집은 많지만 맛집은 찾기 어려워요.

사계리 돗통도 즐겨 찾는 집입니다.

보통 냉동 삼겹살을 드시잖아요.

가끔 두툼한 근고기의 씹히는 맛이

생각날 때 찾아가 먹습니다.

텃밭에서 키운 유기농 야채와

밑반찬으로 한상 가득 채워집니다.

채소 꽃다발에 노릇하게 잘 익힌

고기를 멜젓에 듬뿍 찍어 올리고

구운 고사리까지 입안 가득 넣으면

흑돼지의 고소함과 쫄깃한 고사리의

식감이 정말 잘 어울립니다."

"고기가 몇 점이 남았을 때

돗통 냉국수를 주문합니다.

사장님이 추천해 준 메뉴인데요.

보기만 해도 시원함이 느껴지죠.

김치채와 오이채가 가득 올려지고

고소한 참깨와 김가루가 맛을 더해요.

국물은 고기 먹은 후라 더 개운하고

면은 소면이라 부담 없이 먹기 좋아요.

제주에 놀러 오면 꼭 맛보세요."

"카페를 이전하며 낯선 동네에서

다시 정착하고 있는 와중인데

보통 현지 주민분들이

마음 문을 빨리 열진 않아요.

타지에 온 사람들이 제주에 와서

계속 살 것처럼 해서 말해

마음의 정을 나눠주곤 했는데

어느 날 말도 없이 떠난 탓에

그 허전함이 오래 이어지다 보니

처음엔 그렇게 하신다고 해요.

전 나이 들어 병들기 전까지는

이곳을 떠날 수 없을 듯해요.

제주에 오는 많은 분들이 제각각

좋아하는 제주의 매력이 있겠지만

저는 제주도의 하늘이 가장 좋아요.

끝없이 펼쳐지는 제주의 하늘은

어디를 가도 볼 수 있어요."

"봄이 되면 몸도 마음도

싱숭생숭해지곤 하는데

코로나19로 더한 듯해요.

얼음 가득 채운 사이다 한 병을

벌컥벌컥 다 마신 것처럼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은

청명하고 투명한 하늘 아래

붉게 핀 동백꽃에다

마치 눈꽃이 피어난 풍경처럼

하얗게 펼쳐진 우아한 매화꽃

또 노랗게 물든 유채꽃

진초록 찻잎들을 뚫고

연둣빛으로 피어나는 여린 찻잎들

추사 김정희가 예찬했던 수선화와

지천에 아름답게 핀 야생화들까지

모두 사랑합니다."

"코로나19로 제가 살고 사랑하는

제주의 봄을 많은 분들과

나눌 수 없어 아쉬움이 크지만

제주의 따뜻한 봄바람만은

멀리멀리 날려 드리겠습니다."

김 대표의 말처럼

따뜻한 남쪽에서 산을 오르고

강과 바다를 거쳐 불어오는

제주의 봄 내음을 맡으며

마음만이라도 여행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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