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정책 十年大計]④원점에 선 박근혜 정부

  • 2013.06.11(화) 11:33

세수확보 비상에 지하경제 양성화 '올인'
증세 없이 조세감면 축소..금융과세 강화 추진

전 정권들의 조세개혁 실패를 지켜본 박근혜 정부는 과거보다 한결 단호한 의지를 다지고 있다. 깎아주는 세금부터 대대적으로 정비하고, 조세개혁 추진위원회를 통해 8월께 중장기 조세정책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할 방침이다.

 

최근 국내외 경기 불황의 여파로 세수확보에 비상이 걸리면서 미래의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움직임도 분주하다. 대선에서 내건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은 135조원에 달한다. 새 정부는 그 해법을 지하경제 양성화에서 찾고 있다.

 

과세당국은 은밀히 자행되는 탈세 관행을 뿌리뽑기 위해 전방위로 압박에 나섰다. 조세피난처를 통한 자산가들의 역외탈세를 비롯해 재벌가의 비자금 조성, 일감 몰아주기 등 서민들을 힘 빠지게 만드는 분야부터 과감하게 메스를 들이댔다. 세율 인상이나 세목 신설과 같은 '증세(增稅) 없이도 충분히 재원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내비쳤다.

 

◇ 지하경제에서 세금 27조 뽑는다

 

새 정부는 공약이행 재원 135조원 가운데 36%인 48조원을 국세 수입으로 조달하고, 나머지는 세출 절감을 통해 예산을 덜 쓰는 방식으로 해결한다는 계획이다. 지하경제 양성화로 27조원, 비과세·감면 정비로 18조원을 마련하고, 금융소득 과세 강화로 3조원을 더 걷기로 했다.

 

정부는 세율을 인상하거나 새로운 세목을 신설하는 방식의 직접적 증세를 지양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런 방식의 증세가 근로와 투자 의욕을 떨어뜨리고, 소비를 위축시켜 경기 회복을 더디게 만든다는 설명이다. 특히 지하경제 양성화나 비과세·감면 정비는 과세 형평성을 높여주기 때문에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실효성 높은 세제개편으로 꼽힌다.

 

지하경제 양성화는 지난 3월 새 정부가 출범한 직후 과세당국의 첫 일감이었다. 국세청은 대기업과 대재산가, 고소득 자영업자 등 탈세 규모가 큰 분야를 중심으로 강도 높은 세무조사에 나섰고, 관세청도 국제 거래를 통한 지능적 탈세와 불법 통관, 밀수 등 관세 탈루를 집중 단속했다.

 

최근에는 조세피난처를 활용한 역외탈세와 은닉재산에 대한 추적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비밀 계좌를 만든 것으로 드러난 재벌가와 금융인, 전직 대통령 장남까지 조사 대상에 올라 있다. 과세당국과 사정당국이 탈세 엄단을 위해 전방위로 압박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세원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구축하고 있다. 현금영수증과 전자세금계산서를 의무발급하는 범위를 넓히고, 해외금융계좌 신고와 성실신고확인서 제출을 강화해 성실하게 신고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관련 법령을 이달 정기국회에서 빠르게 통과시키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 비과세·감면 10%만 줄여도 15조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는 예외 조항을 정비하는 것도 세수 확보의 필수 사항이다. 각종 비과세와 감면을 통해 한해 깎아주는 세금 규모는 30조원에 이른다. 이 가운데 10%만 줄여도 5년간 15조원의 세금을 더 걷을 수 있다.


정부는 일몰이 도래하는 비과세·감면 제도를 원칙적으로 종료하고, 일자리 창출이나 경제활력 회복을 위해 꼭 필요한 제도만 연장하기로 했다. 이를 통해 임기 중 조달할 재원은 18조원으로 늘려 잡았다.

 

정부가 아무리 비과세·감면을 정비하겠다고 외쳐도 국회의 도움이 없으면 법안 자체를 통과시킬 수 없다. 국회가 기존에 운영하던 비과세·감면의 실효성을 면밀하게 점검하고, 선심성으로 새로운 특례 제도를 신설하지 않도록 자제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세금의 특례와 예외를 없애는 것은 단지 세수 유실을 막는 차원이 아니라 조세 제도의 효율성과 형평성을 높이기 위한 작업이다. 정부가 8월까지 마련할 중장기 비과세·감면 정비 방안은 국회의 협조에 따라 성패를 좌우할 전망이다.

 

◇ 금융상품·주식에 과세 초점

 

2000년대 들어 번번이 여론에 밀려 접어야만 했던 금융소득 과세 강화 카드를 다시 꺼내 들었다. 정부는 주식 양도차익 과세 대상을 확대하고, 그동안 세금 우대를 받아온 금융상품에도 세금을 매기기로 했다.

 

금융 업계에서는 시장을 위축시킨다며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이제는 금융 시장이 성숙했기 때문에 과세 범위를 넓혀도 문제가 없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향후 5년간 2조8500억원의 세금을 더 걷는다고 밝힌 만큼, 정부안은 이미 윤곽이 잡혀 있다는 분석이다.

 

법안의 통과까지는 험난한 산을 넘어야 한다. 지난해 정부가 내놓은 파생상품 거래세 과세 방안은 아직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계류중이다. 자본시장에서 나타날 조세 저항을 무마할 수 있는 리더십과 끈기가 없다면 예전처럼 좌초될 가능성도 있다. 금융소득 과세 강화를 두고 정부와 국회, 금융업계가 어떤 합의점을 이끌어낼지 이목이 집중된다.

 

◇ 성패는 국회에 달렸다

 

비과세·감면 정비를 비롯해 금융소득 과세 강화 등 정부가 추진하는 세수확보 방안은 모두 법안 통과가 필요하다. 국회가 도와주지 않으면 어떤 방안도 빛을 볼 수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월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서 "지하경제 양성화와 금융정보 활용을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해 조기 입법을 추진해달라"고 당부했다. 6월 국회에서는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한 금융정보분석원(FIU)법안을 비롯해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논의될 예정이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도 지난 5일 경제장관회의에서 "주요 정책 패키지가 성과를 나타나기 위해선 관련 법안의 입법화가 빠른 시일 내에 마무리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국회의 역할과 정부의 굳은 의지가 세수 확보의 키를 쥐고 있다고 조언한다. 김학수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비과세·감면 제도를 제대로 정비하려면 정부만의 노력이 아니라 입법부의 협조가 필요하다"며 "서민층 지원 등 정책 목적을 고려하면 전면 폐지는 어렵고, 고용취약계층 지원과 같은 제도 도입 가능성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는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서는 금융거래정보와 국세청 과세 정보를 신속하게 결합해 활용도를 높이는 법 개정이 필수적이다"며 "가시적인 효과를 위한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지속적으로 굽히지 않는 정부의 의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 十年大計 Point☞ '지하경제와의 전쟁'

 

지하경제 양성화는 최근 세계적인 트렌드로 자리매김했다. 지하경제 규모가 큰 남유럽 국가들은 재정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탈세 방지에 공을 들이는 중이다. 미국이나 일본, 영국 등 지하경제 규모가 낮은 국가도 역외탈세와 공격적 조세회피를 막기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리스는 자영업자의 탈세를 막기 위해 영수증 발행 의무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미국은 해외 금융기관과 개인의 역외 금융계좌에 대한 신고 의무를 강화했다. 우리나라의 현금영수증과 해외금융계좌 신고 제도와 유사하다.

 

스페인은 지난해 현금거래 한도를 제한하고, 과세당국의 탈세감시활동을 강화하는 등 지하경제 양성화 노력으로 전년보다 10%의 세수를 더 거뒀다. 지하경제를 향한 각국의 총성 없는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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