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몰아주기 방지법… 정말 후퇴한 걸까

  • 2013.06.26(수) 21:11

'일감몰아주기 방지법' 등 경제민주화 입법에 속도가 붙고 있다. 여야가 국가정보원 선거 개입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 실시에 합의한 후 민생·일자리·경제민주화 관련 법안 처리에 합의하면서 행보가 빨라지는 모양새다.

대기업 오너 일가가 부당한 내부거래에 관여할 경우 제재를 강화하는 내용의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이른바 '일감몰아주기 방지법'이 26일 국회 정무위원회를 통과했다. 이는 대표적인 경제민주화 법안중 하나로 꼽힌다. 재계의 관심도 그만큼 컸다.

대선 공약이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국정과제에 비해서는 후퇴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있지만 일감몰아주기 방지법이 조만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재계는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 일감 몰아주기, 폭넓게 규제


국회 정무위는 이날 전체회의에서 표결을 실시해 재석의원 16명중 찬성 13명, 반대 1명, 기권 2명으로 일감몰아주기 방지법을 가결시켰다.
 
개정안의 골자는 재벌 총수일가에 경제적 이익을 제공하기 위해 이뤄지는 대기업 계열사간 내부거래를 일감 몰아주기로 규정하고, '경쟁성 제한'이 입증되지 않더라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우선 부당지원행위를 구체화하고 대상과 범위를 종전보다 넓게 잡았다. 부당 지원행위의 판단 요건을 '현저히 유리한 조건'에서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바꿔 특수관계인이나 다른 계열사에 대한 부당한 일감몰아주기를 보다 포괄적으로 규정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그동안 일감몰아주기 사례를 적발하고도 '현저히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해 특수관계인 또는 다른 회사를 지원하는 행위'라는 요건을 입증하지 못해 대기업들이 제기한 불복 소송에서 패소한 경우가 적잖았다. 공정위가 과징금을 매긴 내부거래에 대해 법원이 '현저히 유리한 거래'인지 의문을 표시하며 기업측 손을 들어준 경우가 왕왕 있었다.

개정안은 부당 내부거래로 규제하는 대상으로 ▲정상적 거래보다 상당히 유리한 조건의 거래외에 ▲통상적 거래상대방 선정 과정이나 합리적 경영판단을 거치지 않은 상당한 규모의 거래(거래기회 제공) ▲회사가 직접 또는 자신이 지배하고 있는 회사를 통해 수행할 경우 회사에 이익이 될 사업기회를 제공하는 행위(사업기회 유용) 등 3가지를 명시했다.

부당지원을 하는 기업뿐만 아니라 수혜 기업도 처벌대상에 포함, 지원객체에 대해서도 관련 매출액의 5%까지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도 개정안에 포함됐다.
 
또 오너 일가가 부당한 일감몰아주기를 지시하거나 관여했을 경우 징역 3년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해 개인에 대한 처벌이 가능해진다. 이와 함께 제품 생산이나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별다른 기여를 하지 않고 거래 중간 과정에 끼어있다는 이유만으로 계열사들로부터 중간 마진을 챙기는 '통행세' 관행에도 제동이 걸리게 된다.

이번에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공정위는 부당내부거래 입증책임 부담을 종전보다 덜게 되고, 취약한 것으로 평가받던 일감몰아주기 제재의 법적 근거를 보완하게 된다.

◇ 그런데도 후퇴했다? 어떤 부분이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사익편취는 재벌과 오너들의 경제력 집중을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비판 받아왔다. 재벌들이 물류나 광고, 시스템통합(SI) 등과 관련된 비상장 계열사를 신설하고, 오너 2·3세들이 회사를 소유하는 지배구조를 만든뒤 그룹 기존 계열사들 일감을 몰아줌으로써 부당하고 편법한 부의 승계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내놓은 국정과제에서는 '대기업 총수 일가의 불법 사익편취행위 규제를 위해 공정거래법 제3장에 규정을 신설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공정거래법 3장은 기업의 경제력 집중과 관련된 조항들이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에서 추가·보완된 부분은 제5장 불공정행위 금지와 관련한 내용들이다.

경제력 집중을 막는다는 차원에서 대기업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별도의 규제를 만든 것이 아니고 기존의 부당내부거래 규제를 보완·추가하는 방향으로 타협했다는 것이 후퇴론의 골자다.
 
총수일가의 사익편취가 경제력 집중의 주요 원인이라는 점을 입법에 반영하지 않고 형식만 갖췄다는 얘기다. 개정안은 '불공정행위 금지 조항'이었던 5장의 명칭을 '불공정행위 금지 및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금지'로 바꿔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에 대한 처벌 조항을 추가했다.

재계는 그동안 3장에 계열사간 거래 규제가 신설될 경우 대기업만을 별도로 규제하게 돼 과도한 차별 규제가 된다며 반발해 왔다. 이번 개정안이 재계의 입장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총수일가 지분이 30% 이상이면 기업 총수가 지시했다는 증거가 없어도 일감 몰아주기로 간주해 처벌하겠다는 이른바 '총수지분 30%룰'은 개정안에서 빠졌다. 총수 일가 지분을 가지고 있는 계열사끼리의 내부거래라고 하더라도 수직계열화 등 경영상 효율성 증진과 관련되거나 영업상 기밀 보안과 관련됐다는 점이 입증될 경우 처벌하지 않는 예외조항은 포함됐다.

경제개혁연대는 "사익편취 규제를 공정거래법 제3장이 아닌 제5장에서 규율하도록 함으로써 경제력 집중 억제라는 명분도 놓쳤고, 경쟁제한성 요건의 배제 여부에 대한 법 해석상의 불확실성만 남겼다"라고 비판했다.

◇ 재계는 불안하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일반적인 불공정행위에 대한 규제와 달리 총수일가가 특정 지분율 이상 주식을 소유한 계열사 간 내부거래에 대해서는 '경쟁성 제한' 이 입증되지 않더라도 처벌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재계는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공정위가 경쟁제한성 입증 없이 자의적으로 기업에 대규모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우선 부담이다. 일감 몰아주기에 규제 범위가 넓어지고 제재가 강화됨에 따라 규제당국이 정당한 내부거래까지 일감 몰아주기로 손보려고 무리하게 나서면 불필요한 비용이 가중되고 기업할 의욕이 꺾이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재벌들은 계열사들끼리 원료 공급, 부품소재 납품, 완제품 생산 등으로 수직 계열화를 이루고 '규모의 경제'를 통해 효율성과 경쟁력을 키워왔다.
 
이같은 상황에서 계열사간 일감몰아주기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 성장 의지와 동력이 떨어져 산업과 나라경제 전체로는 부정적 효과가 커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를 줄이고 대·중소기업간 상생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자칫 일감몰아주기 방지 과잉입법으로 초가삼간 태워먹을 수도 있다는 게 재계의 반박 논리다.

재계는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과잉입법의 폐해를 우려하면서 향후 시행령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규제 조항을 보다 분명히 해서 법 집행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진짜 걱정인지, 엄살인지는 모르지만 새 법안이 일감몰아주기를 차단하는 효과는 재계의 우려와 비례할 것이다. 형식상 타협의 모양새를 갖추긴 했어도 재계의 일감몰아주기 관행에 어느 정도 제동이 걸릴 것이란 점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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