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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20년의 교훈]⑤ 내수경제 '중심축'이 변했다

  • 2015.09.04(금) 10:39

소비시장 무게 중심, 노인으로 이동
인구 증가로 정치적 힘도 커져
국가채무 증가, 유령 주택 등 부작용 여전

"멸치 한 번 먹어보고 가. 칼슘이 많아서 건강에 좋다잖아. 멸치 무침 만들어 놓은 게 있어."
"음, 멸치 맛있네. 이 무침은 어떻게 만드는 거야?"

지난달 26일 오후 '노인들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일본 도쿄의 스가모 시장. 이곳에서 10년째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는 사카타(62세) 씨는 손님들에게 '반말'을 건네며 식품을 팔고 있었다. 손님들은 처음엔 듣기만 하다가 곧장 사카타 씨와 친구처럼 대화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친근한 대화 소리가 들리니 다른 손님도 발길을 멈추고 다가와 가게가 금방 북적였다.

 

사카타 씨는 "지금 노인들은 어렸을 때 시장에서 대화를 나누면서 물건을 사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라며 "그런데 요새 백화점에서는 예의 바르게 존댓말을 하니 노인들의 눈높이에는 잘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나처럼 좋은 상품을 노인의 눈높이에 맞춰서 잘 설명해주니, 상대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 사카타 씨가 도쿄 스가모 시장에서 손님들에게 건어물을 팔고 있다.



◇ '노인에 최적화한' 스가모 시장

한국에서 일본 고령화의 상징으로 종종 소개되는 스가모 시장은 현지에선 '노인들의 하라주쿠'로 불린다. 하라주쿠는 도쿄 내에서 젊은이들의 패션 거리로 유명한 지역이다.

스가모 역에 도착하면, 노인의 거리답게 큼지막한 글씨가 새겨진 안내판이 먼저 눈에 띈다. 역에서 10분 거리의 지조도리 상점가(스가모 시장)에는 큰 글씨의 가격표와 잠시 쉴 수 있도록 거리 곳곳에 배치한 의자들이 눈길을 끈다. 노인이 좋아하는 전통 과자(센베이)와 건강식품, 내복 등을 비싸지 않은 가격에 팔고 있다. 물건을 파는 사람들도 사카타 씨처럼 노인이 대다수다.

스가모 시장은 노인의 쇼핑에 최적화한 환경으로 조성돼 인기가 많다. 한국으로 치자면 종로의 탑골공원과 종묘공원 일대와 비슷한 분위기가 난다. 하지만 이곳은 탑골공원 일대와는 다르게 연간 900만 명이 방문할 정도로 유명세를 치르는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했다.

도쿄에 관광을 왔다는 60대 할머니 일행은 "재미있는 거리라기에 잠깐 들렀는데, 먹을 것도 많고 여러 종류의 가게가 모여 있어서 흥미롭다"고 했다. 이들의 손에는 노인들에게 기를 불어넣어 준다는 빨간 팬티가 담긴 봉투가 쥐어져 있었다. 빨간 팬티는 이 시장의 명물로 꼽힌다.

 

▲ 도쿄 스가모 시장에서 한 손님이 이곳의 명물인 '빨간 속옷'을 고르고 있다.


◇ 소비시장 중심, 실버 세대로


스가모 시장은 고령화한 일본 사회의 축소판이다. 한국보다 앞서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에서는 소비 시장의 무게중심이 노인 고객으로 옮겨가고 있다. 일본의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은 지난해 기준으로 26%에 달한다. 2030년에는 전체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할 전망이다. 특히 일본의 실버 세대는 다른 세대에 비해 경제적 여유가 있어 소비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 기업들은 스가모 시장 상인들처럼 노인의 소비 패턴을 연구해 눈높이에 맞는 상품을 만들려 애쓰고 있다.

 

화장품 시장이 대표적이다. 화장품 업체들은 제품 포장에 글씨를 크게 새기고 화장품 거울에 돋보기를 부착하는 등 편의성을 높이고 있다. 또 노년층의 피부를 밝게 보이게 해주는 제품을 내놓는 등의 대응을 하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KOTRA)에 따르면 일본 최대 화장품 기업 시세이도의 조사 결과, 2013년 4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50세 이상의 화장품 소비 규모는 약 1조 6500억 엔으로 전체 화장품 시장의 46.7%를 차지했다.

 

 

개호(노인 간병·수발 등) 시장도 급성장하고 있다. 코트라는 특히 노인 이동과 식사, 배설, 수면, 목욕 등과 관련한 분야의 시장 성장을 예상했다. 여기에 노인의 감성을 자극하는 '치유 로봇', 노인의 편리한 영양분 섭취를 위한 '간호식' 등이 떠오르는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 국가채무 사상 최대, 고령화 과제 여전

 

이처럼 일본 사회는 분주하게 고령화에 적응해가고 있지만,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는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먼저 노인을 위한 사회복지 비용이 증가하면서 국가 재정상황이 크게 취약해지고 있다.

 

일본 재무성이 최근 발표한 국가 채무는 올 6월 말 현재 1057조 2235억 엔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국가 채무 증가는 노인을 위한 사회보장비가 지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일본 정부의 내년 예산액 역시 사상 최대 규모가 될 전망이다.

 

문제는 노인들의 사회복지 비용을 앞으로도 줄이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노인 인구가 급격하게 확대하면서, 이들의 결집된 목소리가 정치적 파워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와 정치인들은 노인들의 복지를 축소하거나 일부를 젊은층에 쓰는 등의 정책에 대해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호리 도시히로 국립대 교수는 "일본의 국가 사회보장 관련 재정 가운데 고령자에게 쓰이는 게 가장 많다"며 "이를 줄여서 젊은 사람들에게 쓰자는 의견이 나오긴 하지만, 워낙 고령자가 많다 보니 정치적으로 움직이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고령화 현상에 더해 저출산, 부동산 시장 침체 문제가 겹치면서 이른바 '유령 주택'도 사회적 문제로 거론된다. 뉴욕타임스가 최근 일본 정부의 통계를 인용해 내놓은 보도에 따르면 일본의 빈집은 전국적으로 800만 채에 달한다. 인구가 줄면서 빈집이 늘고 있는데, 팔리지도 않고 임대도 안 돼 방치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도쿄 내에서 '부자 동네'로 유명한 미나토구 롯폰기 지역에서도 빈집과 집을 허문 공터가 종종 눈에 띄었다. 노인이 살다가 자녀가 집을 물려받은 뒤에, 철거하고 싶어도 소득이 없다 보니 수천만 원에 달하는 철거비를 마련하지 못해 헐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 '일본의 경험에서 배우자' 국제경제세미나 개최

 

비즈니스워치가 주최하고, 산업통상자원부·코트라(KOTRA)가 후원하는 국제경제 세미나 '위기의 한국경제, 일본의 경험에서 배우자'가 내달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다. '아베노믹스'를 통해 부활하고 있는 일본 경제와 산업계의 현실을 살펴보고, 급속한 고령화와 저성장 등으로 일본의 전철을 밟으려는 한국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으로부터 무엇을 배워야 할 지를 점검하는 자리다.

 

세미나 세션1에서는 나오유키 요시노 ADB연구소장이 '아베노믹스와 일본경제 전망'을 주제로 발표를 하고, 도시히로 이호리(Toshihiro Ihori) 일본 국립 정책연구대학원(GRIPS) 교수는 '고령화가 일본 경제에 미친 충격'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다. 세션2에서는 정혁 KOTRA 일본지역본부장이 '일본 기업의 위기극복 사례와 전략'에 대해,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이 '일본의 시사점과 한국 산업계 대응전략'에 대해 각각 주제발표를 한다. 패널 토론에서는 박재하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모더레이터)이 주제 발표자들과 함께 토론과 질의응답을 진행한다.

 

세미나는 11일 오후 2시~6시 여의도 63빌딩 컨벤션에서 개최되며 참가비는 무료다. 사전 참가신청은 비즈니스워치 홈페이지(http://www.bizwatch.co.kr)나 세미나 사무국(02-783-3311)으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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