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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회사워치]프롤로그-'10년 주기설'

  • 2018.01.03(수) 09:30

1987년 재벌정책으로 지주사 금지→외환위기로 허용
2007년 규제 대폭 낮춰 `봇물`→새정부 다시 규제 검토

 

요즘 핫한 영화의 배경이기도 한 1987년은 정치·사회적 의미뿐 아니라 경제정책면에서도 주목할 만한 변화가 나타났던 시기입니다. 법적으로 '재벌 정책'이란 개념이 처음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1970~80년대 산업 고도 성장기를 거치며 급속하게 몸집을 불려온 재벌들로 인해 경제력집중 문제가 심각해지자 당시 군사정권은 재벌규제 정책을 내놓습니다.


우선 `재벌`의 개념을 자산총액 4000억원 이상으로 정하고 이 기준에 따라 32개그룹, 509개 계열사를 재벌로 공식 지정합니다. 이 집단에 속한 계열사가 다른 회사에 출자할 수 있는 금액을 제한하고, 같은 집단내 회사들이 서로 주식을 교차 보유하는 것을 금지하는 정책도 시행했습니다. 재벌정책의 대명사로 한동안 자리매김했던 출자총액제한, 상호출자금지제도입니다.

 

특히 당시 정책에서 눈에 띄는 것은 지주회사를 만들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지금은 선진적인 지배구조로 인식하고 있는 지주회사가 30년전에는 법적으로 금지할만큼 차단된 지배구조였던 겁니다.


이렇게 법을 만든 이유는 지주회사가 상품을 만들거나 공급하는 활동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적은 자본으로 많은 회사를 지배하는 수단이라는 인식 때문이었습니다. 피라미드 조직의 꼭대기에 지주회사가 있다고 가정해보면 이해에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하지만 10년 후 외환위기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김대중정부는 구조조정과 경영 효율화에 도움된다는 명목으로 지주회사를 허용합니다. 이때 등장한 논리는 "지주회사체제에서는 특정 자회사의 경영위험이 다른 자회사로 전이되지 않아 분리매각이나 인수합병(M&A) 등 구조조정을 유연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꼬리자르기가 수월하다는 얘기입니다.

1987년 군사정부가 금지한 지주회사를 김대중정부가 허용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이지만 그만큼 지주회사란 제도가 갖고 있는 이중성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아무튼 지주회사가 허용되자 2001년 LG그룹이 처음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첫발을 내딛었습니다. 그러나 제도 초기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기업이 많지 않았습니다. 지주회사 조건을 까다롭게 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지주회사의 부채비율을 100% 제한했습니다. 가진 돈 이상으로 차입할 수 없도록 한 것이죠. 자회사 지분을 50% 이상 의무적으로 소유하도록 한 것도 당시의 핵심정책입니다. 자회사 지분율을 높여놔야 문어발 확장을 막을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있었던 것입니다.

엄격한 조건 탓에 2006년까지 지주회사는 31개에 그쳤고 대기업중에선 최초의 지주회사인 LG와 LG에서 분리된 GS 정도를 제외하면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지주회사 제도는 2007년 또 한번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노무현정부 말기 지주회사 부채비율 규제를 100%에서 200%로 완화하고 자회사 지분 하한선도 50%에서 40%(상장회사는 30%에서 20%)로 낮춰준 것입니다. 지주회사가 가진돈 이상으로 돈을 빌릴 수 있고 여윳돈으로 기존 자회사 지분을 매입하는 대신 다른회사를 인수해 자회사 개수를 더 늘릴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 결과 지주회사 전환이 봇물 터집니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규제완화 10년간 지주회사는 40개에서 193개로 급증했고, 대기업만 따져도 7개에서 23개로 급증했습니다.

 


이처럼 1987년부터 대략 10년 주기로 큰 변화를 반복해온 지주회사 정책은 또 한번 전환점에 섰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때 투명한 지배구조를 위해 지주회사의 부채비율과 자회사 최저 지분율 요건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판단에는 지주회사에 선물한 각종 혜택들이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효과보다는 총수일가의 지배권만 강화시켜주고 경제력 집중을 더 심화시키는 부작용으로 이어졌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집권 후 새 정부의 공정거래위원회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대기업집단의 경제력 남용을 억제하고 지배구조 개선에 힘쓸 것이며, 지주회사 수익구조 분석 등 실태파악을 통해 문제점을 찾아내고 개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정책방향의 끝을 정확히 예측할 순 없지만 국내에 지주회사가 탄생한 이후 지금까지 수십년 `규제완화`라는 한 방향으로 흘러온 지주회사 정책이 기로에 선 것만은 확실합니다.

지주회사 정책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할 2018년. 비즈니스워치가 새해 [지주회사워치]를 통해 국내 대기업 지주회사를 분석합니다.

우선 공정위가 지주회사 정책의 첫 단추로 꼽은 수익구조를 살펴봅니다. 지주회사(持株會社)란 말 그대로 다른 회사의 주식을 소유하고 지배하는 것이 주된 사업이어서 주식을 통한 수입(배당·매각차익 등)이 핵심이지만, 계열사로부터 받는 수수료(브랜드·경영자문 등)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수수료가 받는 쪽(지주회사)과 주는 쪽(계열사)의 주주 모두에서 중요 정보임에도 구체적인 산출 기준이나 세부내역 같은 핵심정보가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심지어 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위해 기업분할을 할 때도 상표권과 같은 자산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배분되는지 알려주지 않습니다. 이는 향후 공정위 실태조사 이후 어떤 식으로든 적정성 판단과 함께 제도개선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두번째로 지주회사 체제 밖에 있는 계열사들을 살펴봅니다. 지주회사로 전환했음에도 체제 밖에 계열사가 존재한다는 것은 총수일가가 주식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는 개인회사를 두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개인회사가 지주회사 체제 안에 있는 기업과 별개로 사업을 한다면 문제없지만 일감몰아주기를 통해 과도한 지원을 받고 있는지 여부는 향후 정책방향에서 중요한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세번째로 정부와 국회에서 검토중인 지주회사 관련법안의 영향을 분석했습니다. 자회사 최소지분율 상향, 지주회사 전환과정에서 자기주식을 이용해 지배력을 확대하는 사례를 금지하는 법안 등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외환위기 이후 지금까지 수십 년 `규제완화`라는 한 방향으로 일관되게 흘러온 지주회사 정책의 물꼬가 어떻게 방향을 잡느냐는 기존의 지주회사는 물론 향후 지주회사 전환을 검토중인 그룹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지주회사로 전환하지 않은 대기업집단을 살펴봅니다. 현재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의 대기업집단 57개 가운데 지주회사로 전환했거나 전환예정인 곳은 23개입니다. 지주회사로 전환하지 않은 34개에는 국내 대기업순위 1·2위인 삼성, 현대차를 비롯해 금융그룹 미래에셋 등이 있습니다.  이들 회사의 앞날에 재계 안팎의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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