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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느리면 좀 어때?' 끊어진 남북 만난다는데

  • 2018.05.04(금) 16:53

남북정상회담으로 경의선·동해선 연결하기로
북한 철도 인프라 낙후…남북·중국 철도폭 동일

 

“동해선과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하여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나가기로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7일 발표한 판문점선언에서 남북한 경제협력과 관련한 유일한 조항은 동해선과 경의선의 끊어진 구간을 연결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지난 4월27일 남북정상회담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문재인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도보다리 회동 장면(=한국공동사진기자단)


남북의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는 것은 앞선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서도 다뤘던 내용인데요.

 

2000년 6.15선언의 합의 내용을 실천하기 위해 경의선(문산-개성), 동해선(고성-온정리) 철도 연결공사를 마쳤고 시험운행까지 했습니다.

 

특히 2007년 10.4선언 이후에는 경기도 문산에서 북측 개성시 봉동리까지 경의선 열차를 하루에 한 번씩 총 222회 운행하기도 했었죠.

하지만 금강산관광객피격사건으로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열차는 멈췄고 철로도 막혔습니다.

그로부터 10년 후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남북정상회담에서 “북측을 통해 꼭 백두산에 가보고 싶다”고 하자 김정은 위원장은 이렇게 답했습니다.

“대통령께서 오시면 솔직히 걱정스러운 것이 우리 교통이 불비해서 불편하게 할 것 같다. 평창에 다녀온 사람들이 다 고속열차가 좋다던데 북에 오면 참 민망스러울 수 있겠다. 우리도 준비를 해서 대통령이 오시면 편히 모시도록 하겠다.”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불비(不備). 그래서 민망하다는 말. 북한 최고통치자의 입에서 좀처럼 나오기 힘든 단어가 지칭하는 북한의 철도 교통은 어느 수준일까요.

 


 

철도왕국 북한…그러나 98%는 단선

북한의 교통인프라를 얘기할 때 주철종도(主鐵從道)란 표현을 쓰는데요. 철도가 주력이고 도로는 보조적인 수단이라는 의미입니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에선 화물의 90%를 철도가 담당하고 사람을 실어 나르는 여객부문도 62%를 철도가 담당합니다. 종합해서 화물과 여객을 합치면 86%를 철도가 담당하고 12%는 도로, 2%를 해상운송 배가 담당합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국내여객기준으로 85%를 도로 15%를 철도가 담당하니까 북한의 철도 의존도가 월등히 높습니다.

북한의 철도 비중이 높은 것은 일제가 광물자원을 캐거나 만주로 군수물자 실어 나르기 위해 남겨놓은 철도시설이 많고, 북한정권 수립 이후에도 험준한 산악지형(=교과서에서 배웠던 낭림산맥, 함경산맥, 묘향산맥 등)이 많아서 도로보다는 철도 구축에 힘써왔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철도 노선 길이(총연장)는 5226km로 남한(3918km)보다 외형적으로는 1.3배 더 깁니다.

그러나 궤도 기준으로는 남한이 북한의 두 배에 달하는데요. 남북철도의 노선과 궤도 길이 차이가 다른 것은 북한 철도는 98%가 단선, 즉 하나의 철로만 있기 때문입니다. 남한은 오히려 단선 철도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이죠.

 



◇ 평양-신의주 핵심노선도 시속 45km

철로가 단선이면 맞은편에서 오는 기차가 지나갈 때까지 역에서 정차해야하니까 평균 속도는 대폭 느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울러 북한은 철로는 70% 이상이 일제 강점기에 건설됐고 지금까지 제대로 개보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입니다. 당연히 철도에서 가장 기본적인 레일은 물론 레일 밑에 받치는 나무(침목), 교량(다리)·터널 등 기차가 맘껏 달리기 위한 구조물들의 노후화도 심하다고 합니다. 기차가 속력을 제대로 내기 어려운 상황이죠.

 

자동차는 포장이 좀 덜 되도 드라이버의 실력에 따라 어느 정도까진 속력을 낼 수 있지만 철도는 정해진 궤도를 안전하게 달려야하기 때문에 궤도상태가 좋지 못하면 속력을 내기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북한의 화물열차는 평균 시속 30km 이하이고 여객열차도 40~50km 정도에 불과합니다. 지금은 사라진 비둘기호마저도 부러울 수준의 속력입니다.

북한에서 그나마 철도 기반이 잘 갖춰져 있다는 핵심노선 경의선 평양-신의주 구간(225㎞)도 평균시속 45km로 5시간 넘게 걸린다고 합니다.

경부선 서울과 부산(441km)은 KTX로 2시간 반이면 도착하니까 남북 철도의 속도는 어마어마한 차이입니다.

 


◇ 북한철도 현대화하려면 레일부터 다시 깔아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판문점선언에서는 남북 철도와 도로들을 단순히 연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현대화하여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을 언급했습니다. 이는 북한 철도의 대대적인 보수가 필요한 사항입니다.

다수의 철도전문가들은 남북철도를 연결하더라도 북한철도를 남한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신설에 가까운 보수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특히 철도에서 가장 기본적인 레일은 다시 깔아야할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당연히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현 시점에서 비용 추정은 무엇을 넣고 빼느냐에 따라 편차가 적지않기 때문에 지금으로선 예단하기 쉽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남한에서는 철로를 건설할 때 토지보상비가 많이 들지만 북한은 공식적으로 모든 토지가 국유화돼 있습니다. 따라서 보상비 추정이 쉽지 않습니다. 보상비 다음으로 많이 드는 인건비, 철로 건설에 필요한 각종 자재 조달을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에 따라 총비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칩니다.

남한보다 저렴한 북한의 노동력과 북한에서 생산하는 철강, 나무, 시멘트 등 각장 자재를 이용해 철로를 다시 깐다면 건설비를 크게 낮출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그렇다고 해도 북한 철도를 고속철도 수준도 아니고 적어도 무궁화호에 가까운 시속 100km 수준이라도 끌어올리려면 레일과 침목은 새로 깔아야하고, 교량과 터널도 전면보수가 불가피하다는게 철도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뿐만 아니라 신호체계와 전력 공급 시스템도 점검해야하는 등 전체 비용은 아무리 줄여도 만만치 않을 것입니다.

과거 남북의 철도단절구간을 연결할 때는 남북협력기금에서 재원을 충당했지만 북한 철도를 대대적으로 개보수하는 앞으로의 작업은 협력기금으로 충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도 필요해 보입니다.

 

 

◇ 남북 모두 '표준궤'…연결하면 달리는 건 문제 없어

다행스러운 것은 남북한은 철도 선로 폭(궤간)이 같다는 점입니다.  남북 철로가 호환되기 때문에 일단 연결만 하면 비록 속도는 느릴지라도 기차를 갈아타지 않고 쭉 달릴 수 있습니다.

철도 선로의 폭은 광궤, 표준궤, 협궤로 분류하는데요. 우리나라는 표준궤(1435mm)라는 일반적인 선로 간격을 사용합니다. 표준궤보다 넓으면 광궤 좁으면 협궤입니다.

북한은 일부 광산지역에서 협궤(1067mm)를 쓰긴 하지만 이번에 연결하는 경의선, 동해선 등 대부분 핵심노선에서는 우리와 같은 표준궤입니다. 중국도 표준궤를 씁니다.

한반도와 중국이 동일한 표준궤를 쓰는 것은 일제 강점기 영향이라고 합니다. 

 

제가 한반도에 철로를 건설할 때 각종 수탈과 군수물자 이동을 수월하게 하기위해 중국까지 그대로 달릴 수 있도록 표준궤로 설치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일본 본국에서는 협궤를 사용했습니다. 자신들의 방식을 버리면서까지 한반도에선 멈춤없는 수탈을 위해 중국과 동일한 표준궤로 선로를 깔았던 것이죠.

아무튼 철로의 궤간이 다르면 기차를 옮겨타거나 ‘궤간가변대차’라는 방법을 통해 열차바퀴가 선로의 폭에 자동적으로 맞추는 시스템을 사용해야합니다.

하지만 서울에서 평양을 거쳐 베이징까지 가는 열차는 일단 남북 단절구간을 연결만 한다면 갈아타는 번거로움 없이 달리는데 문제없습니다.(러시아는 광궤를 사용하기 때문에 열차를 갈아타야합니다.)

 


◇ 북한을 지나 중국·러시아·몽골로... "느림보기차면 좀 어때"

북한에는 남한에 없는 국제철도노선이 4개나 있습니다.

대표적인 노선은 개성에서 평양을 거쳐 신의주로 가는 411km의 경의선입니다. 서울의 옛 이름 경성과 의주에서 따온 노선이죠.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다시 연결하겠다고 한 그 노선이기도 합니다. 경의선을 타고가면 중국 단둥을 거쳐 베이징 등 중국본토로 이어집니다.

평양과 함경남도 고원을 연결하는 212km 길이의 평원선도 있습니다. 평원선은 함경북도 나진으로 이어지는 평라선의 일부입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 경의선과 함께 연결하겠다고 한 동해선을 타고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만나는 노선입니다. 함경북도 나진을 넘어가면 러시아국경 하산을 거쳐 시베리아횡단철도로 올라탑니다.

이밖에 자강도 만포시, 함경북도 남양에서도 하어빌, 몽골로 연결되는 국제 철도노선도 있습니다.

물론 북한 철로를 대대적으로 정비하기 전까진 북한 구간에서는 시속 30~40km '느림보기차'로 이동하겠지만요. 당장 속도가 좀 느린 게 뭐 그리 대수일까요. 

 

지금까지는 상상도 못했던 '기차타고 북한가는 길'. 그 자체만으로 남북 경제협력의 주춧돌이 되고 이산가족의 눈물을 닦아주고 평화통일의 밑거름이 될 수 있을테니까요.

 



독일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는 170여년전 ‘너무빠른 철도가 공간을 사멸시켰다’고 했다는데요.

열차 차창 밖으로 처음 바라볼 북한의 풍경. 처음부터 고속으로 너무 빨리 슥슥 지나가 버리는 것은 오히려 서운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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