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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스튜어드십코드]⑩그들은 왜 그랬을까

  • 2018.08.07(화) 07:38

취재 후기- 반성과 다짐으로 시작한 英·日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무엇을 위한 것인가

[런던·도쿄=박수익 김보라 이돈섭 기자] # 영국 옥스퍼드사전에 한 가족이 소유·관리하는 대기업집단(a large business conglomerate, usually owned and controlled by one family)을 뜻하는 단어로 등재돼 있는 '재벌(Chaebol)'. 런던에서 만난 인터뷰이들은 굳이 부연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이 단어의 뜻을 잘 알고 있었다.

# 일본에서는 '물 끼얹는 공주'이라는 의미의 '미즈카케히메(水かけ姫)'란 단어가 올해 주요 신문·방송에 소개됐다. 몇 년 전 '넛츠히메(땅콩공주·ナッツ姫)란 단어로 현지 언론에 등장한 언니도 있었다. 당연히 현지 취재원들은 이를 알고 있었다.


이번 기획취재의 출발점은 '물컵 갑질'과 '방관자'였다.

 

대한항공 주식을 단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오너일가라는 이유로 막강한 권력에 취해있는 동안 그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내부시스템은 없었다.

 

내부시스템이 없다면 합리적인 외부감시자의 견제가 필요한데 대한항공의 2대주주 국민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들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수수방관했다. 기업 스스로의 환골탈태도 중요하지만 변화를 채찍질할 기관투자자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했다.

 

# 스튜어드가 왜 그럴까

 

방관자였던 기관투자자에게 이제는 태도를 좀 고치라고, 더 정확히는 수탁자라는 본연의 임무를 잊지 말라고 주문하는 것이 스튜어드십코드이다.

불만이 있어도 아무 말 하지 않다가 
훌쩍 떠나버리는 내성적인 성격(월스트리트룰)과는 이제 이별을 고하고, 잘못된 것은 지적하고 자신의 의견도 제시하면서 길게 보고 함께 가자는 것이다. 


때마침 취재준비를 시작하던 6월초 TV에서는 '김비서는 왜 그럴까'란 드라마를 시작했다.

 

스튜어드십코드의 '스튜어드'(Steward)는 집안의 재산을 관리하고 책임지는 관리인을 뜻하기도 하고 여객기 승무원을 지칭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일본에선 청지기로 번역한다. 어쨌든 타인을 또는 타인의 것을 대신 관리하고 보살피는 역할이다.

김비서의 직업과 스튜어드의 역할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김비서의 도움(?)으로 취재의 방향을 정했다. 그들은 왜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했을까.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스튜어드십코드는 최근 국민연금의 도입을 계기로 핫한 경제용어가 됐지만 정작 이 제도를 앞서 도입한 나라들에 대한 분석은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다.

 

 

# 스튜어드십코드 종가

첫 인터뷰 대상 후보군은 고민의 여지없이 정해져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먼저 스튜어드십코드를 만든 그리고 지금도 가장 앞서 코드를 적극 관리하고 점검하는 기관, 영국 재무보고위원회(FRC)였다.

 

스튜어드십코드의 종가(宗家)나 다름없다. 주한 영국대사관의 도움으로 인터뷰 섭외는 예상보다 순조로웠다.

영국은 축구에서는 이름만 종주국일 뿐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지만, 
스튜어드십코드 분야에서는 종주국 지위를 탄탄하게 지키고 있었다. 2010년 스튜어드십코드를 처음 선보인 FRC는 2016년 스튜어드십코드 이행점검 시스템을 또한번 내놓았다. 

 

기관투자자들이 스튜어드십코드에 가입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이행하는지를 점검하고, 그 결과를 공개해 시장의 평판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올해 초 산업은행 자금 위탁운용사 선정에 가점을 받기 위해 일부 기관투자자들이 스튜어드십코드를 악용한 사례도 적발된 터라 영국 FRC의 이러한 시도는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스튜어드십코드는 도입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잘 지켜야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 두번의 반전…UN PRI

UN PRI(유엔 책임투자원칙). UN 산하기관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러나 다시 취재해보니 실제로 책임투자의 영역에서 UN과 다름없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처럼 두 번이나 반전을 안겨준 UN PRI라는 기관도 만났다. 정식 개념은 '
UN이 지원을 하는 책임투자원칙'(UN-supported PRI)이다. 

이 기관이 만든 책임투자의 원칙을 지키겠다고 서명한 기관들이 전세계에 2000개가 넘고, 그들의 운용자산을 더하면 한국 돈으로 가늠하기 어려운 80조달러에 이른다. 수백조원의 자금을 굴리는 내로라하는 각국의 연기금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서명한 기관투자자들이 운용자산 전부를 책임투자 분야에 집행하지는 않는다. UN PRI에 서명한 국민연금도 운용자산의 1%만 책임투자에 집행한다. 그러나 책임투자를 하겠다고 나선 기관이 앞으로 투자금액을 더 늘릴 순 있어도 거꾸로 줄이긴 어렵다. UN PRI가 전 세계 투자흐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인터뷰 대상자였던 피오나 레이놀즈 PRI CEO가 예정된 인터뷰 날짜를 사흘 앞두고 가족상을 당하면서 불가피하게 취재 대상이 변경되기도 했지만 PRI라는 생소했던 기관을 알게됐고 앞으로도 취재를 이어갈 네트워크를 가지게 된 건 행운이었다.


 

 


# 일본 연기금의 목표

 

일본 취재의 섭외 1순위는 세계최대 연기금 GPIF이었다. GPIF의 운용자산은 1570조원으로 국민연금의 3배에 이른다.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치열했던 시기라 당연한 선택이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기자 출신이자 한국 여행을 좋아하는 혼다 나오리 공보담당관은 "GPIF와 스튜어드십코드의 목표가 같다"고 강조했다. 이번 취재 과정에서 가장 인상적인 답변 중 하나였다.

 

GPIF는 향후 100년간 지속할 연금재정을 목표로 하고 있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중장기적인 기업가치 향상을 추구하는 스튜어드십코드에 찬성하게 됐다는 부연 설명도 덧붙였다.

고령화 사회를 걱정하면서도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와 관련해선 '연기금사회주의' 논란이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한국 사회는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 착한투자도 돈이 된다

파격적이고 신선한 인터뷰 대상자도 있었다. 가마쿠라투자신탁을 이끄는 가마타 야스유키 사장이다. 가마타 사장은 애초 '본인은 아직 내세울 만한 성과가 없다'며 인터뷰를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러나 꼭 한번 인터뷰해보고 싶은 인물이었기에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거듭 설득에 나섰다. 가마쿠라투자신탁의 투자철학을 취재해 소개함으로써 앞으로 한국에서도 '착한 투자'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되길 바란다는 취지를 설명했다.

 

며칠 뒤 "그렇다면 대화를 나눠보자"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상론에 가까운 투자철학을 가진 그는 놀랍게도 펀드를 운용해 돈을 벌고 투자자들에게 이익을 나눠주고 있다. 착한 투자도 돈이 된다는 걸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 반성과 다짐…그들은 그랬다

 

다시 취재의 출발점인 '물컵 갑질'과 '방관자'로 돌아가 본다.

 

기업 스스로의 환골탈태도 필요하지만 변화를 채찍질할 기관투자자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것은 사실 10여년전 영국이 먼저 깨달았다.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을 되짚어보는 과정에서 기관투자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한 것이다.

 

회사 이사진이 무리한 경영을 일삼아도 기관투자자들마저 그들의 잘못된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것이 위기를 부추겼다는 반성. 그 반성이 바로 영국 스튜어드십코드의 출발점이었다.

 

더 이상 방관자를 방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시작한 스튜어드십코드는 2014년 일본에 상륙했다. 일본판 스튜어드십코드 제정을 실질적으로 이끈 간사쿠 히로유키 도쿄대 교수는 "일본재흥전략이 코드 도입의 직접적인 계기"라고 밝혔다.

일본재흥전략(JAPAN is BACK)은 아베 정권 출범 후 일본 경제 재건을 목적으로 수립된 경제정책이다.
 
종합하면 영국 스튜어드십코드가 금융위기를 '반성'하는 것에서 출발했고 일본은 경제부활이라는 '다짐'에서 시작했다. '그들은 왜 그랬을까'에 대한 답이다.

우리나라는 국민연금이 가입하면서 이제서야 비로소 스튜어드십코드 시대가 본격 열렸다. 그런데 과연 무엇을 위한 스튜어드십코드일까. 이왕 늦은 김에 반성과 다짐 모두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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