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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국민연금 CIO, 파도와 바람 무엇을 볼 것인가

  • 2018.09.11(화) 18:23

국민연금, 미래세대와 공존할 지속가능한 투자처 찾아야
CIO 전문성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건 가치 담을 투자철학

하마평의 어원은 뒷담화다.

 

상전들이 말에서 내려(下馬) 입궐하면 남아서 기다리던 마부들이 자신들의 상전에 대한 이런저런 뒷얘기를 주고받던 것이다. 기무사가 '세평'이란 이름으로 군 지휘관들의 성향과 추문을 담아 작성한 문건도, 정부부처 등 유력기관의 인사철이면 인터넷을 통해 유포되는 정보지도 일종의 하마평이다.

전세계에서 세번째로 많은 자금을 보유한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을 책임지는 자리. 그래서 어떤 이들에게는 인사·승진이 달렸고 국민연금과 거래하길 원하는 금융회사들에겐 몇 년간 장사가 걸린 이 자리를 놓고도 하마평이 무성하다. 대체로 하마평이란 견제와 욕망, 이권을 적절히 뒤섞어놓아 '누군가는 앞서고 누군가는 뒤쳐진다'는 점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는 말들의 향연이다. 그러나 미래 지향적인 대안을 담을 그릇은 되지 못한다.

그동안 숱하게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을 둘러싼 하마평에 단골로 등장한 항목은 투자전문성이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당연히 기금운용의 수장이라면 전문성은 기본으로 갖춰야하지만 어디까지를 '전문적'이라고 봐야할 지는 모호하다.

예컨대 누군가 오랜 기간 주식 운용에 일가견이 있더라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자리에 적합한 전문성을 온전히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 제아무리 큰 민간금융회사라도 굴리는 자금이 국민연금과 비교가 되지 않을뿐더러 연금은 주식이나 채권·대체투자 어느 한 분야에 집중하는 전문투자자가 아니라 광범위한 자산을 대규모로 투자하는 유니버설 오너(Universal owner)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들어왔다가 나간 자리, 때론 정치·경제 권력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불명예스럽게 물러나기도 한 자리. 역대 기금운용본부장들은 과연 전문성이 부족해서 지금 같은 불신을 만들었는지 되짚어야한다.

국민연금과 같은 공적연금은 미래세대를 위해 최소한 두 가지 의무를 짊어지고 있다. 하나는 자산을 잘 굴려서 더 안정적으로 더 오래 연금을 받도록 힘쓰는 것, 다른 하나는 미래세대와 공존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투자처를 찾는 것이다. 특히 두 번째의 의무는 지금 전 세계 공적연기금의 흐름이며 멀리 찾지 않아도 가까운 일본 연금이 걸어가고 있는 길이다.

2015년 일본 공적연금(GPIF)의 최고투자책임자(CIO)로 선임된 미즈노 히로미치는 취임 후 기금운용 방식을 개혁하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를 늘렸다. ESG는 어려운 용어가 아니다. 영업이익 잘 내는 석탄발전회사에 투자하면 꽤 쏠쏠한 단기수익률을 올릴지 몰라도 대기오염을 미래세대에 물려주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점을 알고 있는 것이다.

미즈노 히로미치는 최근 여성친화적인 기업에도 투자금을 대폭 배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여성을 차별하지 않는 기업에 투자한다고 당장 드라마틱한 수익률을 돌려받는단 보장은 없다. 그러나 세상의 절반인 여성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는 것은 미래세대와 미래사회가 더 다양한 기회를 누리는 토대가 된다는 점을 보수적인 일본 사회에 전파하고 있다.

그는 본인에게 주어진 자리가 그저 전문성이나 오너에 대한 충성심만 있으면 되는 민간 자산운용회사 CEO가 아닌, 미래가치를 담는 철학이 필요한 위치란 점을 분명하게 인지하며 실천해 나가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란 자리도 당장 자신의 임기동안 괄목할 단기 성장을 거둬 성과급을 두둑이 챙기거나 연임을 보장받아야할 자리가 아니다.

"난 사람의 얼굴을 보았을 뿐 시대의 모습을 보지 못했소. 시시각각 변하는 파도만 본 격이지. 바람을 보아야 하는데. 파도를 일으키는 건 바람이거늘" (영화 관상 中)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을 둘러싼 숱한 하마평, 그 이전에 국민연금 수익률을 평가해온 사회적 잣대는 파도만 바라보는 수준이었다. 파도는 계속 밀려오는데 그 원인을 모르면 당장 한 고비는 얼추 넘길 수 있어도 배는 가야할 길을 잃는다.

 

다른 연기금들은 당장 눈앞의 파도를 바라봤던 과거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파도를 일으키기도 하고 잔잔하게 만들기도 하는 바람에 더 주목한다. 우리도 조금씩은 달라져야한다. 

국민연금의 새 기금운용본부장은 최근 떨어진 단기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자신의 임기 내에 당장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처를 찾아 헤매는 것(파도)이 아닌 미래세대와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치를 담는 그릇(바람)을 고민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한 그릇이라면 정치·경제권력 앞에 무기력했던 국민연금을 다시 세우고 기금운용본부에 포진한 각 분야 투자전문가들을 아우를 포용력도 가지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기금운용본부장은 그들과 호흡하며 본인이 해야 할 일을 뚜렷하게 알고 실천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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