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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3·4세 시즌2]④녹십자, 조카·삼촌 '동거' 결말은

  • 2018.10.10(수) 10:47

삼촌 허일섭 회장…조카 허은철·허용준 대표
공익법인이 균형추…녹십자엠에스 향방 주목

녹십자그룹은 주요 제약회사 가운데 보기 드물게 창업자 일가가 동반 경영에 나서고 있다. 지주회사 녹십자홀딩스 회장은 창업자 2세 허일섭(64) 회장과 조카 허용준 부사장이 공동 대표이사를 맡고 있으며, 핵심회사인 ㈜녹십자는 허 회장의 조카 허은철(46) 대표이사가 이끈다.

녹십자는 3세 승계 과정에서 한차례 내홍을 겪었고, 동종업체 일동제약을 공격하기도 했다. 그래서 삼촌과 조카가 공존하는 현재 구도가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더 관심이 간다. 결론을 점쳐볼 수 있는 몇 가지 징후는 있다.

 

 

# 1.5세에서 3세에 이르기까지

녹십자는 1세대 개성상인으로 불리는 고(故) 허채경 한일시멘트 창업자의 차남인 고(故) 허영섭 회장이 1967년 부친의 지원을 받아 만든 수도미생물약품판매로 출발했다. 

허채경 회장의 장남 허정섭 한일시멘트 명예회장도 초기 녹십자 감사와 이사로 활동한 이력이 있지만 1970년 중반 이후 경영진 명단에선 발견되지 않는다. 그는 대신 본업인 한일시멘트 경영에 주력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녹십자 창업 1.5세 격인 차남 허영섭 회장은 1980년 녹십자 대표이사를 거쳐 1992년 회장직에 올랐고, 2009년 타계 전까지 녹십자를 백신전문회사이자 제약업계 상위권에 올려놓았다. 허영섭 회장 타계 이후 동생이자 허채경 창업자의 5남 허일섭 회장이 경영권을 이어받았다.

3세들도 속속 경영에 참여했다.

가장 먼저 두각을 드러낸 건 허영섭 회장의 장남 허성수 부사장이었지만 2007년 돌연 물러났다. 허영섭 회장은 장남 몫의 유산을 남기지 않았고, 이를 두고 허 부사장은 어머니가 유언장을 조작했다는 소송을 내기도 했다. 지금은 녹십자 계열 주주명단에서 그의 존재감은 크지 않다.

허영섭 회장의 차남 허은철(46) 사장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허 사장은 1998년 입사해 연구개발기획실 전무, 기획조정실장을 거쳐 2015년 ㈜녹십자 공동대표이사로 취임했고 2016년부터 단독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공식적으로 녹십자그룹 3세 승계자는 허은철 사장이다.

허 사장의 두 살 터울 동생 허용준(44)은 지주회사인 녹십자홀딩스 경영관리실장을 거쳐 지난해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현재 녹십자홀딩스는 허용준 부사장과 삼촌 허일섭 회장이 공동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허일섭 회장의 장남 허진성(35)은 녹십자홀딩스 부장으로 재직 중이다.

 

 


# 아버지가 남겨준 공익법인의 존재감

녹십자그룹은 현재 창업에 주도적 역할을 한 허영섭 회장의 차남 허은철과 삼남 허용준이 주력회사와 지주회사의 대표이사 사장과 부사장을 그리고 삼촌 허일섭이 회장을 맡고 있는 구도다. 외형상 삼촌의 후견 아래 조카들이 '형제경영'에 나서고 있는 모습이다.

다만 지주회사 녹십자홀딩스의 지분 구성을 보면 구도가 조금 달라진다. 삼촌 허일섭 회장 일가의 지분율은 13.47%에 달하는 반면 조카 허은철·용준 형제는 5.19%에 불과해 격차가 적지 않다. 그렇다고 표면적인 지분율만 따져 경영권의 향방을 점치는 것도 섣부르다.

바로 공익법인의 존재감 때문이다. 녹십자는 어느 제약사보다 공익법인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목암생명과학연구소(9.79%)와 목암과학재단(4.38%), 미래나눔재단(2.10%) 등 3개 공익법인이 총 16.27%의 녹십자홀딩스 지분을 가지고 있어 공익법인이 지주회사의 사실상 최대주주다.

이들 공익법인은 모두 고(故) 허영섭 회장이 사재를 출연해 만들었다. 공익법인의 이름 앞에 붙는 '목암'도 그의 호다.

그러다 보니 공익법인은 허영섭 회장의 두 아들인 허은철·용준 형제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 두 사람은 3개 재단 모두 이사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허은철 사장은 경영수업 초반 목암생명과학연구소 기획관리실장을 지내기도 했다.

따라서 공익법인이 가진 지주회사 지분이 삼촌과 조카 사이에서 일종의 '균형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 삼촌·조카 경영의 결말은 녹십자엠에스?

녹십자그룹의 경영권 향방을 유추해볼 수 있는 또 다른 포인트는 녹십자엠에스다. 2003년 설립해 2014년 코스닥에 상장한 녹십자엠에스는 진단시약·혈액백 등을 만든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지난해 일감 몰아주기와 기회 유용에 해당하는 사례로 녹십자엠에스를 지목했다. 연구소는 2010년까지 녹십자엠에스의 매출 대부분이 녹십자로부터 나왔고, 주력인 진단시약·혈액백 사업이 녹십자의 사업목적과 유사하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이쯤되면 주주명부를 확인하지 않더라도 누가 이름을 올리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녹십자엠에스는 ㈜녹십자가 지분 42.1%를 가진 최대주주이지만 허일섭 회장도 17.19%를 가진 주요주주다. 허 회장의 자녀들도 주주명단에 있으며, 한일시멘트 가(家)의 다른 친인척도 포진해있다.

다만 허은철·용준 형제는 녹십자엠에스 상장 당시부터 지금까지 주주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허은철 사장이 이끄는 ㈜녹십자가 단일 최대주주이긴 하나 개인주주 면면을 보면 삼촌에게 무게중심이 쏠려있다.

지난 5일 종가 기준으로 ㈜녹십자가 보유한 녹십자엠에스의 지분(42.1%) 가치는 700억원, 허일섭 회장 일가가 보유한 녹십자홀딩스의 지분(13.47%) 가치는 1650억원 상당이다. 경영상 판단만 내려진다면 얼마든지 지분교환을 하고도 남는 구조다.

조카와 삼촌이 동거하고 있는 녹십자그룹이 몇 가지 단서가 암시하는 대로 조카는 전체 그룹을, 삼촌은 녹십자엠에스를 나눠 갖는 무난한 결말이 이어질지 아니면 '조카·삼촌의 난'과 함께 두 번째 내홍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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