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조' 용산개발 무산..누구 책임인가

  • 2013.04.09(화) 00:00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개발사업이라 불리던 총 사업비 31조원 규모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이 끝내 파국을 맞았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삼성물산·국민연금·푸르덴셜 등 유수의 기업과 기관이 참여한 이 사업은 이제 ‘단군 이래 최대의 헛삽질’이라는 비아냥까지 듣고 있다.
 

사업이 망가진 데는 외부적으로 경기침체에 따른 부동산 시장 악화가 원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참여 기관과 그 수장들, 그리고 정책 입안자들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막대한 자금을 어떻게 조달할지 따져보지 않은 채 제 욕심만 채우려던 대주주들의 행태와 갈등도 사업을 이 지경까지 끌고온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7년 동안 용산을 둘러싸고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코레일의 사업 청산 결정으로 국제업무지구 개발계획이 무산된 용산 일대 전경(사진: 용산역세권개발)

 

◇ 코레일 欲心과 오 시장의 대권 野心


6조원에 달하는 코레일의 부채를 한방에 털어내자는 게 첫 시작이었다. 2006년 참여정부 시절 코레일은 만성 적자에 허덕이고 있었다. 매년 1조원 가까운 적자를 보는 기본적인 경영난에다 고속철도 부채 4조5000억원 등 2005년말 기준 5조8000억원의 부채 해결이 최대 현안이었다.
 

해법으로 나온 것이 보유 자산을 매각하는 것이었다. 서울 시내 노른자위 땅인 용산역 남쪽 철도기지창 부지는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굵직한 물건이었다. 초대형 빌딩과 고가 아파트를 지을 수 있도록 허가만 나면 빚을 일거에 갚을 수 있겠다는 계산에 코레일도, 정부도 군침을 흘렸다. 코레일이 가진 땅에 정부가 건설허가만 내주면 되니 가장 확실하고도 손쉬운 방법이었다.


당시 이철 코레일 사장은 이 부지를 매각하는 방식을 고민했다. 복합단지로 개발이 허용되면서 받을 수 있는 땅값은 5조원으로 추산됐다. 하지만 사업 허가권을 가진 서울시는 다른 생각이었다. 대권 후보로 거론되던 오세훈 당시 시장은 재임기간 동안 전임 이명박 시장의 청계천 복구에 견줄 만한 성과를 내놓아야 했다. 서울을 한강 중심의 수변도시로 만든다는 ‘한강 르네상스’가 그것이었고, 그 중심에 용산 프로젝트가 놓였다. 이 사업을 2200여가구의 주택이 들어서있는 이촌2동(서부이촌동)까지 통째로 개발하자는 게 서울시의 요구였다.

 

당시는 자고나면 집값이 뛰던 시절이었다. 대형 개발사업에서 돈 냄새를 맡은 건설사들과 부동산 투자로 한몫 잡아보려던 금융사들이 줄줄이 달려들었다. 2007년 삼성물산과 국민연금이 손잡은 컨소시엄이 코레일에 8조원대의 땅값을 제시하며 이 프로젝트의 사업자로 선정됐다. 규모가 커지고 한강변까지 외연을 넓히면서 철도기지창 땅값도 순식간에 3조원 이상 뛴 것이다.
 

이철 전 사장도 당초 땅값만 챙기려던 계획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개발이익까지 욕심을 냈다. 코레일은 결국 용산 개발에 지분 참여를 하기로 결정한다.코레일이 용산역세권 개발사업에 빠져든 결정적 계기다.

 

사업규모는 31조원.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이라는 수식어는 이때부터 나왔다. ‘드림 허브(Dream Hub)’로 이름 붙여진 용산국제업무지구 사업은 ‘세계도시의 꿈이 만나는 곳’이라는 주제로 금융·정보기술(IT)·관광을 3대 축으로 한 복합단지를 밑그림으로 그렸다.

 

◇ 금융위기 터지자 빛바랜 청사진


판이 꼬이기 시작한 건 2008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다. 경기 악화로 사업성에 대한 부정적 판단이 이어지며 돈줄은 점점 쪼그라들어갔고 사업 추진은 더뎌졌다. 개발에 포함된 서부이촌동도 발목을 잡았다. 보상 과정에서 사업자와 주민 입장이 서로 얽히면서 사업을 지지부진하게 했다.
 

코레일의 지분 참여도 사업을 애매하게 만든 원인이 됐다. 땅주인인 동시에 투자자인 탓에 이해관계가 꼬였다. 사업성이 악화되자 2010년 사업 컨소시엄 대표사인 삼성물산은 자산관리위탁회사(AMC)의 주도권을 포기했다. 이후 코레일은 AMC의 주도권을 전략적 투자자였던 롯데관광개발에 넘겨줬다.

 

그러나 1년이 지나자 돈줄이 급해진 코레일은 결국 앞서 삼성이 요구했던 전환사채(CB) 발행을 통한 유상증자, 토지대금 유예, 랜드마크 빌딩 매입 등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하지만 삼성을 대신할 건설투자자는 찾지 못한 채였다.


2012년 2월 감사원 출신의 정창영 코레일 사장이 취임하면서부터 코레일의 입장이 ‘신중 모드’로 급변했다. 다시 보니 사업성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정창영 사장은 취임 초 용산개발사업 자금난 사태를 분석한 후 현재 사업구도에서 수익을 내기가 어렵다고 결론을 내렸다. 적극적인 사업추진 의지를 보였던 경찰청장 출신의 전임 허준영 사장 때와는 다른 스탠스였다.
 

사업 최대주주이자 토지주인 코레일은 이때부터 용산사업 주도권을 놓고 시행사인 드림허브 프로젝트금융투자(PFV)의 민간 출자사들과 부딪혔다. 정창영 사장은 사업성 악화에 따른 미분양이 우려된다는 이유를 내세워 통합개발을 단계적 개발로 전환하자고 했고, 사업 규모도 축소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코레일은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 출자사들 '막장 치킨게임'

 

작년말부터는 코레일과 민간출자사의 사이의 갈등이 극심해졌다. 추가 투자 문제에서 직접적인 충돌이 일어났다. 코레일은 드림허브 이사회에 수권자본금(주식회사를 설립할 때 이사회에서 증자할 수 있는 최대 자본금) 증액안을 올렸지만 롯데관광개발 등은 이를 거부했다. 추가 출자할 자금력도 약했지만 사업 지분이 줄면 사업 주도권도 뺐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롯데관광개발은 2011년 삼성물산을 대신해 사업 주관사 지위를 맡은 민간 출자사의 대표였지만 자본력이 부족하고 개발사업 경험도 적었다. 이 회사는 자본금 55억원 규모의 중소 관광기업으로 동화면세점 등 9개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그러나 막판 자금난 속에서 최대주주인 코레일과 한 치의 양보 없이 대립했다.


지난 2월 코레일은 다시 삼성에 손을 벌렸다. 코레일이 땅값으로 받을 돈 2조6000억원을 드림허브 자본금으로 내놓을 테니 삼성도 랜드마크 빌딩을 짓고 받을 시공비 1조4000억원을 드림허브에 출자해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수차례 갈등을 겪으며 주도권마저 빼앗긴 사업에 삼성이 뛰어들 리 만무했다.
 

결국 올해 3월 토지대금을 담보로 끌어다 쓴 빚인 ABS(자산유동화증권)·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의 이자 만기가 잇달아 돌아오면서 사업은 부도의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코레일은 코너에 몰린 롯데관광개발로부터 용산역세권개발의 경영권도 넘겨받았다. 그러나 드림허브는 지난 3월12일 ABCP 이자 52억원의 만기를 맞추지 못하며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지게 됐다.

 
세권개발을 이끈 박해춘 회장의 책임도 적지 않다. 용산사업이 시름시름 앓던 2010년 가을, 외자 유치를 위한 ‘소방수’로 영입됐지만 2년 반의 재임기간 동안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 회장은 취임할 때만 해도 중동계 오일머니 등 외자를 유치하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외국계 사모펀드로부터 전환사채(CB) 발행에 115억원을 투자받은 게 전부다. 그러면서 3년의 임기 동안 총 19억8000만원의 연봉을 받은 것도 빈축을 사고 있다. 거액을 받으면서 출자사 간 소통조차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사업 청산 후폭풍도 '매머드급'
 
코레일은 지난 8일 이사회를 열어 사업청산을 결정했다. 코레일은 사업 시행사인 드림허브에서 받았던 땅값 2조4000억원 가운데 5400억원을 돌려주며 청산 절차를 시작할 계획이다. 이달 말 드림허브 측에 사업협약 해지를 통보하고 6월과 9월 나머지 땅값을 차례로 갚아 토지소유권을 되찾을 계획이다. 
 
후폭풍은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사업을 청산하면 당장 지금까지 사업에 들인 돈을 누가 물어내야 하는가를 두고 대규모 소송전이 일어날 것이다. 지금까지 투자자금은 드림허브 자본금 1조원과 1차 CB 1500억원, 코레일에게 지급한 토지대금을 담보로 조달한 ABS·ABCP 2조4167억원, 코레일의 랜드마크빌딩 계약금 4161억원 등 모두 4조원을 넘는다.
 
이 가운데 코레일에게 지급된 토지대금 3조여원을 제외한 1조원 가량이 허공으로 날아가는 돈이다. 구체적으로는 토지매입 관련 세금과 부대비용 3037억원, 대출 등 금융 비용 3409억원, 기본설계비 1060억원, 자산관리위탁회사인 용산역세권개발의 5년 간 경비 1195억원 등 모두 9737억원으로 추산된다.
 
더 복잡한 것은 서부이촌동 문제다. 사업이 추후 다시 추진되더라도 이 지역 개발은 이미 물건너갔다는 게 중론이다. 2007년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돼 6년간 재산권 행사에 제한을 받았던 이 지역 주민들은 용산사업 최대 주주인 코레일에 책임을 묻겠다며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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