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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Story]삼성물산, 로이힐 1조 쇼크

  • 2016.02.02(화) 15:40

"장담하건대 손실이 1조원은 날 거다."

삼성물산이 샴페인을 터뜨렸던 날, 울분에 찬 저주의 목소리도 함께 터졌습니다. 지난 2013년 3월28일 삼성물산은 호주 로이힐홀딩스가 발주한 '로이힐(Roy Hill) 철광 철도시설 프로젝트'의 낙찰통지서(LOA)를 받았습니다. 수주금액은 58억5000만호주달러, 그때 환율로 6조5000억원에 달했죠.

당시 정연주 삼성물산 부회장은 "호주시장의 철저한 분석과 현지 시공업체, 컨설턴트 등과의 협력으로 경쟁력 있는 제안을 해 수주할 수 있었다"며 "네트워크, 글로벌 기술력과 수행능력을 바탕으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업을 두고 경쟁했던 업체들은 "삼성이 덤핑 입찰로 사업을 가로챘다. 저가수주의 부메랑에 스스로 당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그 저주는 현실이 됐습니다. 지난달 28일 2015년 실적을 발표한 삼성물산은 "로이힐에서 8500억원의 예상손실을 반영했다"고 털어놨죠.

도대체, 호주 로이힐을 둘러싸고 우리 건설업계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삼성물산의 자신감

로이힐 프로젝트는 국내 건설업계가 따낸 해외 자원 인프라 분야로는 사상 최대이며 해외 수주 단일 프로젝트로는 4번째 규모 사업입니다. 호주 서부 필바라 지역 매장량 24억톤 규모의 철광산에서 철광석을 처리하는 플랜트와 이를 운반하는 340㎞의 철도, 항만 등을 설계·구매·시공(EPC)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죠.

이 사업을 따내기 위해 삼성물산과 경쟁한 건설사는 포스코건설-STX중공업 컨소시엄이었습니다. 앞서 2010년 1월 포스코와 STX그룹은 로이힐홀딩스에 대한 투자를 결정하고 각각 1조5000억원, 1500억원을 투자해 지분을 확보했습니다. 포스코의 경우 철광석 확보를 위한 측면도 있었지만 건설 계열사의 사업물량을 따내려는 목적이 컸죠.

두 회사는 이후 약 2년동안 광산 인프라 공사 수주를 위한 준비를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일감은 후발 주자로 막판에 이 사업에 뛰어든 삼성물산이 따냈습니다. 삼성물산은 최종 입찰에서 63억호주달러를 써낸 포스코 컨소시엄보다 6억호주달러나 낮은 57억호주달러(이후 1억5000만호주달러 상향 조정)를 써냈습니다.

포스코와 STX는 분노를 터뜨렸죠. 뒤늦게 뛰어든 삼성이 무리한 저가 입찰로 오랜기간 공 들인 사업을 가로챘다는 것이었죠.

STX중공업은 청와대 등에 탄원서를 내 "삼성물산이 오직 자사의 이익만을 최우선으로 해 수주를 교란·방해하는 등 상도의를 저버렸다"며 "막대한 국부 유출을 초래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정동화 당시 포스코건설 부회장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청으로 들어오겠다며 협의하던 삼성물산이 우리를 제치고 발주처와 계약했다"며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STX는 삼성물산을 상대로 소송까지 준비했지만 포스코가 동의하지 않아 법정다툼까지 가진 않았습니다.

▲ 로이힐 프로젝트 개요(자료: 삼성물산)

◇ 정연주의 공격 본능

이 사업을 따낸 2013년, 삼성물산은 총 136억3576만달러의 해외 수주를 이뤄냈습니다. 그 해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해외 건설사상 단일 건설사가 1년간 따낸 수주금액중 가장 큰 규모입니다.

하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삼성물산은 해외건설 분야 수주행보가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았습니다. 그룹 공사와 주택사업 부문을 중심으로 보수적인 기조를 유지해 왔죠.

해외에서는 초고층 빌딩 분야에서는 비교적 강점을 가지고 있었지만 발주물량이 풍부한 플랜트·토목 분야에서는 존재감이 미미했습니다. 직전 10년간 해외수주 상위 5위 안에 든 것도 단 한 차례(2005년 5위)뿐이었습니다.

공격적인 행보는 정연주 부회장이 이 회사로 오면서 시작됐습니다. 정 부회장은 삼성의 플랜트 분야 계열사인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을 7년간 지내면서 연간 수주 1조원 규모의 회사를 10조원 규모로 키운 대표적인 '성장주도형 CEO'였죠.

2010년 3월 삼성물산으로 온 그는 곧바로 수주 확대에 '올인'했습니다. 임직원들에게는 '시장 조사'와 '경쟁사 분석'을 통한 수주 확대 주문이 떨어졌습니다. 수주 인센티브도 대폭 강화했죠. 삼성그룹도 이듬해 그를 부회장으로 승진시키며 힘을 보탰고요. 한 직원은 "어쨌든 사업만 따오면 된다는 자신감이 넘쳤던 때"라고 하더군요.


◇ 높이 날았으나…

건설업계에서는 삼성의 외형 키우기를 우려스럽게 봤습니다. 로이힐 사업에 관심을 보였던 한 건설사 관계자는 "(삼성이 써낸 금액은) 손실이 날 수밖에 없는 가격"이라며 저가 수주의 '업보(業報)'를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삼성물산은 "이익을 낼 수 있는 수준의 적정 가격"이라며 맞섰죠. 다른 건설사보다 충분히 경쟁력 있는 분야여서 그 금액으로도 충분히 사업이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초기엔 삼성물산 입장에서 이만한 '효자 사업'이 없었습니다.

로이힐 사업을 시작한 2013년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매출은 전년대비 50.3% 증가한 13조4413억원을 기록하며 업계 수위권으로 뛰어올랐습니다. 2014년에는 매출이 14조8740억원으로 한 해 사이 또 10.7% 늘어났고, 영업이익은 5690억원으로 전년대비 64.5% 증가했습니다.

이 같은 외형 성장을 바탕으로 삼성물산은 2014년 9년만에 국내 건설업계 시공능력평가 1위 자리에 올랐고 작년까지 2년간 이 자리를 지켰죠.

하지만 점차 로이힐 사업에서 우려했던 잡음이 나왔습니다. 2014년 현지 플랜트 하청업체인 포지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게 시작이었는데요. 전체 계약기간이 32개월로 빠듯한 상태에서 톱니바퀴 하나가 빠진 셈이니 공기 지연 우려가 터진 거죠. 포지는 약 8억2000달러의 플랜트 부문 하도급을 담당하던 회사였습니다.

이후로도 다양한 변수들이 현장을 어렵게 했습니다. 폭우와 가뭄뿐 아니라 하도급 업체와의 분쟁, 크레인 붕괴 사고 등으로 공사 진행이 차질을 빚으면서 비용도 증가했습니다. 작년 8월 한 호주 언론은 삼성물산이 추가로 지출한 금액이 벌써 10억호주달러(8400억원)에 달한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 로이힐 프로젝트 첫 선적(사진: 삼성물산)

◇ 날개 없는 추락

로이힐 프로젝트는 애초 작년 9월 말까지였던 공사기한이 작년 말까지로 한 차례 연장됐지만 아직까지 공사가 마무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11월부터는 공기가 하루 늦어지면 200만호주달러(약 16억원) 규모의 벌금(지체상금)을 무는 규정도 있다고 합니다.

로이힐은 지난달 14일 프로젝트 지연 등에 따른 손실을 이유로 한국수출입은행에 계약이행보증금 중 일부인 1820억원을 지급할 것을 요청하는 '본드콜'을 행사하기도 했는데요. 삼성물산은 이 보증금에 대해 가압류를 걸어둔 상태입니다. 현재 지체상금과 공기 연장 등에 대해 로이힐 측과 협상중이라고 합니다.

삼성물산은 로이힐에서 회사 실적에 반영한 예상손실 총 8500억원 가운데 작년 3분기와 4분기 이미 손실로 잡은 것이 1700억원, 앞으로 손실로 확정될 수 있는 잠재분이 6800억원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다만 기존 2013~2014년 발생한 이익을 감안하면 이 프로젝트의 총 손실은 4700억원이라고 합니다.

이 같은 삼성물산의 로이힐 프로젝트 손실금액을 현재 환율로 환산하면 5억5000만호주달러가 됩니다. 공교로운 것은 3년전 수주 당시 경쟁사보다 덜 적어낸 금액이 바로 6억호주달러였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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