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내 집 사는 데 투자하는 대신 자기 돈(자기자본)으로 소액 투자할 수 있는 리츠(부동산투자신탁회사, REITs, Real Estate Investment Trusts)를 이용하라.'
정부가 '리츠' 투자 문을 넓힌다.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부동산 관련 사업에 투자하고 여기서 발생한 수익을 배당하는 리츠에 일반인 대상 공개모집 상품을 늘리겠다는 생각이다. 또 주식처럼 수월하게 유통될 수 있도록 상장도 쉽게 만든다는 목표다.
부동산 과열을 잡겠다는 정부가 리츠는 왜 키운다는 걸까? 여기엔 은행 창구에서 빚으로 나온 시중자금이 부동산 실물투자로 몰려들면서 가계부채를 키웠다는 진단이 자리잡고 있다.
반면 리츠 같은 부동산 간접투자는 일반적으로 자기가 가진 자금 만큼 투자해 재무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 다만 빚을 내 투자하는 '레버리지'방식에 비해 매력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 "공모 늘리고, 상장 쉽게 한다"
정부가 지난 24일 가계부채대책에 넣어놓은 '리츠 활성화 방안'은 안정적 배당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부동산간접투자 상품으로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세부 내용들은 올해 말부터 관련 법령 개정을 시작해 내년 2월까지 각각 순차적으로 시행된다.
정부는 우선 사모(私募)리츠를 공모(公募)로 전환 유도하기 위해 공모 의무가 면제되는 연기금 투자비율을 50%로 높이기로 했다. 기본적으로 리츠는 영업인가를 받거나 등록한 뒤 2년내 주식 30%이상을 개인투자자 대상으로 공모해야 한다.
현재는 연기금이 30%이상 투자하면 공모 의무가 면제되는데, 이 기준을 50%로 높인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연기금 투자를 30% 이상(50% 미만) 받더라도 일반 공모를 해야 한다.
또 기업구조조정(CR)리츠에서 공모의무가 면제되는 채무상환비율은 현재 50%에서 70%로 상향된다. 공모의무 면제기간도 지금까지는 제한이 없었지만 앞으로는 7년마다 재심사해 공모의무를 부여할지 검토키로 했다.
리츠 상장도 쉽게 규정을 고친다. 리스크가 낮고 비교적 운용이 안정적인 비개발·위탁관리형 리츠는 상장 심사시 예비심사를 없애, 심사기간을 현재 4~5개월에서 2~3개월로 줄일 계획이다.
리츠를 묶어 관리하는 '모(母)리츠' 상장 기준도 완화한다. 현재 리츠는 총자산중 부동산 비중이 70% 이상이어야 상장할 수 있다. 모리츠가 자(子)리츠 지분을 소유할 땐 총자산의 20%만 부동산으로 간주하도록 돼있다.
사실상 모리츠의 상장이 어려운 구조다. 이를 개선해 부동산개발투자 비중이 30% 이하인 비개발·위탁관리형 모리츠라면 간주부동산 인정 한도를 없앤다는 게 국토부 계획이다.
아울러 부동산 펀드도 국민주택채권 매입의무를 면제해 공모유인을 높이기로 했다. 현재는 임대주택사업을 하는 공모형 부동산 펀드만 국민주택채권 매입을 하지 않아도 된다.
◇ 리츠업계 '반색' 못하는 이유는
우리나라 실물자산 보유비중은 62.8%로 미국(30.1%), 일본(37.4%), 영국(47.2%) 등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주요국의 평균 실물자산 보유비중(42.7%)과의 차이를 감안하면 부동산 직접투자 방식의 실물자산 선호가 우리나라 가계부채 10%, 약 139조원의 증가요인이 됐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반면 리츠는 부동산에 투자 수요를 충족시키면서도 대출에 의지하지 않는다. 비교적 소액의 자기자본을 갖고 펀드처럼 간접투자로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이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대출은 어렵게 됐지만 리츠라는 부동산 대체투자처가 은퇴계층 노후 설계의 대안이 될 수 있도록 하자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작년말 기준 국내 시장에서 리츠는 총 169개가 운용되고 있으며 총 자산규모는 25조1000억원이다. 5년 전인 2011년말 69개, 8조2000억원과 비교하면 각각 2.4배, 3.1배로 성장한 규모다. 수익률도 작년 연 6%, 배당이 어려운 임대주택을 제외하곤 연 9.8%로 높다. 작년 은행 1년만기 정기예금 금리는 1.5% 수준이었다.
하지만 전체 중 169개 리츠중 상장된 리츠는 4개에 불과하다. 그런 만큼 리츠에 개인 투자를 유도하려면 우량한 공모·상장 리츠를 육성해야 한다는 게 민관 공통의 문제의식이다. 그러나 이번에 정부가 제시한 방안만으로도 리츠 활성화를 유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여전하다.
공모의무를 확대하는 것에 대해선 '규정만 강화할 뿐, 리츠 자산관리업체(AMC)가 공모에 나설 유인 자체를 확대하진 못한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한 리츠업계 관계자는 "공모 의무만 강화하고 공모에 따른 인센티브가 없다는 게 문제"라며 "오히려 연기금 등 기관 투자자 유치비용이 커져 리츠 수익률은 낮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업계는 구체적 후속 활성화 조치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리츠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리츠 시장 확대는 일반인이 얼마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느냐에 성패가 달렸다"며 "실질적인 상장 규정 완화와 함께 세부담 경감을 통해 수익 확보 여력을 키우고, 판매처 확대 등으로 개인투자자들과 접점을 넓히는 보완책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 부채 보유가구 실물자산 및 순자산추이(자료:가계금융복지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