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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 해외건설]③독(毒)이 된 자신감

  • 2018.03.07(수) 11:21

중동‧산업설비 지나친 비중이 문제
유가 변동성‧정세불안 영향에 노출

자신만만했던 것이 결국 독(毒)이 됐다.

2000년대 후반, 국내 건설사들은 과거 중동 모래바람을 일으켰던 지역으로 다시 진출했다. 고공 행진했던 국제유가를 바탕으로 이 지역 산유국들이 대규모 정유 및 석유화학 플랜트 등 산업설비 발주를 공격적으로 쏟아냈기 때문이다.

정유와 석유화학은 국내 중후장대 산업의 한 축을 맡고 있다. 그 기반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플랜트 공사를 수행한 건설사들의 역할도 크다. 이같은 경험을 토대로 국내 건설사들은 중동, 그 중에서도 석유화학 플랜트와 발전을 비롯한 산업설비 분야에서 눈부신 수주 성과를 얻었다.

하지만 위기는 여기서 발생했다. 주요 사업장은 정세불안과 유가 변동에 따른 발주처의 재무구조 악화에 취약했고, 이는 국내 건설사들이 떠안아야 할 위험요인이 됐다. 해외사업 성장의 발판이 됐던 특정 지역과 공종에 대한 지나친 의존도가 비수로 날아와 꽂힌 셈이다.


◇ 중동 산업설비 싹쓸이

7일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2008~2014년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 수주량(4236억1286만달러) 가운데 중동 지역에서의 수주가 2341억680만달러로 전체의 55.3%를 차지했다. 공종별로 보면 산업설비가 2937억6893만달러로 69.4%에 달한다. 산업설비는 원유 생산 및 정유시설, 가스시설과 석유화학공장과 발전소 등이다.

당시 국제유가가 상승기에 진입하면서 중동 산유국에서 산업설비 수요가 급증했고, 국내 건설사들이 먹잇감이 풍부했던 이 시장 수주에 주력한 결과다.

하지만 이는 일부 지역에서 특정 공종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큰 사업구조를 야기했다.

특히 중동 산유국의 기업들은 재무구조가 유가 변동성에 취약하다는 점이 아킬레스건이다. 2014년부터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해 국제유가가 큰 폭으로 급락한 뒤 지난해까지 저유가 기조가 이어졌고, 이는 국내 건설사들의 해외수주 감소 뿐 아니라 기존 사업장에 대해서도 공사대금을 제때 받지 못하거나 공사가 지연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여기에 해외시장에서 대규모 산업설비 시공 경험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동 산업설비 시장에 진출했던 국내 건설사 다수는 이 분야에 대한 시공 경험과 기술력 등을 갖고 있었지만 중동 현지 사업 환경 등에 대해서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세불안 지역인 중동은 물류길이 막히는 경우도 다반사다. 이렇게 되면 시공사가 공사 자재를 확보하는데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또 발주처의 설계변경 요구에 대해 국내 건설사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계약구조 등도 공기를 지연시키고 원가율을 높여 채산성을 악화시켰다.

김창현 나이스신용평가 연구원은 "2008년 이후 대형 건설사들의 해외 수주확대가 이뤄졌지만 이들 대부분은 대규모 공사를 수행한 경험이 부족했다"며 "이로 인해 해외 사업에 대한 예측능력과 예측범위 내에서 공사를 마무리하는 것에서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예상치 못한 돌발변수 등은 발주처 등과 협의해 보존을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런 부분도 부족하다"며 "경험이 없다보니 애초에 계약서에 반영됐어야 할 조건을 명확히 가져가지 못한 점도 원가관리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 끝나지 않은 위기

해외 부실사업 폭탄이 터지기 시작했던 2013년 이후 건설사들은 관련 손실을 최소화하는데 역량을 집중했다. 특히 재무구조상 대규모 손실 발생의 징후로 여겨지는 미청구공사 규모를 줄이는데 주력했다.

미청구공사는 시공사와 발주처 간 공사 진행 정도에 대한 의견 차이가 생길 때 발생하는 것으로, 시공사는 자체적으로 산정한 매출액과 발주처로부터 받은 금액 차이만큼 미청구공사로 자산화한다. 남은 기간 공사를 마무리해 대금을 받으면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부실 채권이 된다.

미청구 공사 규모는 줄었지만 해외사업 부실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질 수 있다는 게 불안요소다. 부실 이슈를 다시 촉발한 계기가 됐던 대우건설 모로코 사피 복합화력발전소가 대표적이다. 이 공사는 석탄화력발전 1‧2호기를 짓는 것으로 총 공사규모가 1조9819억원에 달한다.

대우건설은 지난 2016년말 사피 복합화력발전소 공사를 통해 3871억원 규모의 공사비를 수령하게 됐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해 3분기 말 기준 2905억원 규모의 미청구공사 금액이 발생하는 등 대표적인 부실 사업장으로 떠올랐던 이 공사에 대한 우려를 잠재우기 위한 목적이었다.

하지만 1년 뒤 사고가 터졌다. 올해 7월 준공을 목표로 했던 사피 발전소의 1호기 시운전중 고압급수기열기 튜브 손상으로 기자재를 다시 제작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 결국 원가 상승으로 인해 대우건설은 작년 4분기 1432억원의 적자를 떠안게 됐다.


이외에도 추가 손실이 날 가능성이 큰 사업장들이 각 건설사들마다 여럿 존재한다. 발주처의 예산 및 자금부족과 수행공정 지연, 강성노조 등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 IS 사태와 치안불안에 따른 인력동원 지연 등 원인은 제각각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지속적인 관리로 이전보다 해외 부실 사업장이 크게 줄어들었다"며 "하지만 예상치 못한 사고가 추가적인 변수 등이 발생해 생기는 손실은 대비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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