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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규제&역설]②수요 누르기 vs 똘똘한 한채

  • 2019.11.27(수) 09:46

재건축‧다주택자 규제 정조준→똘똘한 한채 등장
양도세 중과에 퇴로 막힌 셈…매물 잠기며 호가 올라

#한 남자의 외투를 먼저 벗기는 자가 이기는 게임. 구름은 더 세게 바람을 불어댔고, 그럴수록 남자는 힘껏 옷깃을 여몄다. 반면 태양은 따뜻한 햇빛을 비췄고 남자는 더위를 느껴 외투를 벗었다.

강남 재건축과 다주택자를 향해 정부는 '거센 바람'을 불어대고 있다. 재건축 규제를 강화했고, 다주택자에게는 양도세 중과 시점(18년 4월) 이전 서둘러 집을 처분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다주택자의 상당수는 꿈쩍하지 않았다. 옷깃을 더 여몄다. 보유세 부담이 늘더라도 집값 상승을 기대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각종 재건축 규제는 주택정비사업을 통한 신규 주택공급을 줄였고,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는 시장에서 기존 주택 매물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이에 반해 시장에선 정부 예상과 달리 집을 사려는 수요자들은 넘쳐나 거래 없이도 가격은 오르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주택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이 무너졌고, 내 집 마련을 꿈꾸는 무주택 서민들의 불안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 재건축‧다주택 누르자 '똘똘한 한채' 등장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부터 서울 재건축 단지와 다주택자를 정조준했다. 재건축 단지는 투기 수요에 의한 잦은 손바뀜으로 시장이 왜곡되고, 그 중심에 살지도 않는 집을 여러 채 보유해 사고파는 다주택자가 있다고 봤다. 이는 집값을 불안하게 만드는 진원지로 이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정부 정책에 담겨있다.

첫 부동산 대책인 6.19대책(2017년)에서는 재건축조합원 주택공급 수를 줄였다.(3주택→2주택) 이후 8.2대책(2017년)에서는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를 다시 도입(2018년 1월부터 적용)하기로 해 재건축 사업성을 낮추고, 투기과열지구 등 규제지역을 확대해 조합원 지위 양도를 금지시켰다.

조합원 입장에서는 조합원 지위 양도가 막혀 수익을 실현할 방법이 사라졌다. 정부는 강남 재건축 시장에서 투기 수요를 뿌리 뽑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와 함께 다주택자에게는 당근과 채찍을 병행했다. 8.2대책에서는 양도세 중과 제도를 시행하기로 하면서도 4개월 후에는 임대등록 인센티브(2017년 12월) 방안을 발표했다. 갭투자(전세 안고 주택 매입) 등을 통해 집값 상승 시 차익을 실현하려는 수요를 막고, 민간임대시장에서 세입자를 보호하겠다는 것이 정책 취지다.

하지만 이 같은 규제 정책은 적용 시기가 엇갈리면서 오히려 강력한 역효과를 발휘했다. 8.2대책 발표 후 일시적으로 주춤하던 집값이 이내 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또 다시 진앙지는 정밀 타격했던 강남 재건축이었다. 재건축 조합원 양도 금지 등으로 거래할 수 있는 매물은 사라졌지만 이를 사려는 수요는 여전했다. 강남은 재건축‧재개발이 새 아파트를 공급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인 까닭에 재초환으로 사업 수익성이 낮아졌음에도 재건축을 사려는 수요자들은 갈수록 늘어만 갔다.

게다가 양도세 중과와 보유세 증가로 인해 다주택자들은 중과 시점 이전 강남 주요 아파트만 남기고 그 외 주택을 처분하는 등으로 강남 신축 아파트 등에 수요 쏠림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책 발표 후 8개월 가량의 유예기간을 둔 것이 재건축 규제와 맞물리면서 역효과를 낸 셈이다.

결과적으로 재건축과 다주택자를 겨냥한 규제 대책은 강남 재건축과 신축 주요 단지의 희소성을 부각시켰고, 돈 될 집으로 만들면서 이른바 '똘똘한 한채'를 등장시킨 배경이 됐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집주인들은 매물을 내놓지 않고 재건축을 통한 신규 주택 공급도 없는 상황에서 대출 규제 등 정부 정책은 수요자들의 구매 능력만 줄인 채 구매 욕구는 잡지 못했다"라며 "정책이 적용되는 시점에는 이미 집값이 오를대로 오른 상황에 직면하는 등 타이밍도 적절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 세금으로도 못 잡는 집값…'이상 현상' 지속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시행 이후 집값은 다소 잠잠해졌다. 하지만 예고됐던 종합부동산세 개정안(2018년 7월6일)이 고가주택 보유자의 종부세 부담은 예상보다 크지 않고, 3주택 이상 다주택자 부담만을 늘리는 것으로 드러나자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수요는 더욱 커졌다.

여기에 용산~여의도 통개발 이슈가 더해지면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로 조정기를 겪던 집값은 이내 다시 불타올랐다.

정부는 9.13 대책(2018년)을 통해 종부세 부과 신설 구간을 만들고(공시가격 3억~6억원) 세율도 높였다. 임대사업 혜택을 노리고 추가로 주택을 매입하려는 수요를 막기 위해 대출 규제와 함께 임대사업자에게 주어졌던 세제 혜택도 축소했다.

올 들어서는 보유세 부과 기준이 되는 부동산 공시가격 정상화를 실시했다. 특히 실거래가와 공시가격 차이가 큰 고가주택을 중심으로 현실화율을 높이면서 고가주택 공시가격이 예년보다 큰 폭으로 올랐다.

정부는 고가‧다주택자를 중심으로 세금 부담을 늘리면 이들이 보유 주택을 처분하기 위해 매물을 내놓고, 시장에서는 투기 수요가 사라져 집값이 안정되는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다주택자 입장에서는 종부세가 늘어나더라도 양도세 중과 부담이 큰 탓에 매물을 내놓기도 쉽지 않다. 집값이 지금처럼 오르는 이상 보유하는게 낫다는 인식도 짙다. 이로 인해 시장에서는 거래할 수 있는 매물은 부족한데 호가만 오르는 현상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19일 열린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에서 한 시민은 "양도세(거래세)를 낮추고 보유세를 높여 무주택자가 집 한 채를 가질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다주택자에게 퇴로를 열어줘 거래에 숨통을 트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종부세 고지서가 집주인들에게 고지되면서 세금부담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공시가격 인상에 더해 올해 공정시장가액비율(과세 표준을 정할 때 적용되는 공시가격 비율)도 작년보다 5%포인트 오른 85%를 적용한다. 앞으로 해마다 5%포인트씩 인상(2022년 100%)될 예정이어서 갈수록 세금부담은 커질 전망이다.

이 영향으로 다주택자나 은퇴 후 근로소득이 없는 일부 고가주택 보유자가 매물을 내놓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여전히 매물을 내놓는 선택을 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익명의 한 부동산 전문가는 "강남을 중심으로 규제만 집중하며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보유세 현실화 등 세금과 대출규제를 통한 수요 억제 처방이 부동산 대책의 대부분을 차지했다"며 "하지만 시장의 힘이 더 강한 까닭에 수요 억제책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고, 최근의 상황은 시장의 역습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고 꼬집었다.

김인만 소장은 "시장 상황에 따라 정부 정책이 너무 빈번하게 발표되면서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이로 인해 무주택자는 서둘러 집을 사려고 하는 반면 집주인들은 파는 것을 일단 보류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일관성 없는 정부 정책도 시장에서 공급이 줄어들게 만든 큰 원인"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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