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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워치]'저격수에서 표적된' 김헌동, 험로는 지금부터

  • 2021.11.16(화) 12:39

검증대 오른 '반값 아파트' 벌써 '주민반발'
분양원가 공개, '스피드 주택공급' 엇박우려
자질논란 해소·재무구조 개선 등 과제 산적

'부동산 저격수'에서 '표적'으로 위치가 180도 바뀐 김헌동 SH공사 신임 사장.

20여년간 시민운동가로 활동하며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강하게 질타했던 그가 첫 번째로 오를 검증대 역시 '주택 정책'이 될 전망이다. 김헌동 사장은 주택정책의 공공성을 강조하며 '반값 아파트' 등을 통해 서울 집값을 잡겠다는 방침이지만 벌써부터 험로가 예상되고 있다. 

여건상 실현 가능성이 낮고 자칫 공급 위축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는 '스피드 주택공급'을 추구하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정책과도 엇박자를 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김 사장이 내세우는 SH공사의 주거복지 기능을 견지하기 위해선 재무구조 개선이 시급하고, 원활한 정책 추진을 위해선 여당이 대부분을 차지한 서울시의회와의 관계 회복도 선결 과제다.

'반값 아파트' 잘 될까…서울시와 엇박자 우려도

김헌동 SH공사 사장의 첫 검증대는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던 '반값 아파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 15일 취임사에서 "토지는 공공이 보유하고 건물만 분양하는 주택 정책 추진을 통해 초기 분양 대금 부담을 덜고 합리적인 가격에 주택을 공급, 주택가격 안정화에 앞장서겠다"며 '토지임대부 주택' 공급 확대를 재차 강조했다. 

토지임대부 주택은 토지는 공공이 소유하고 건물만 분양하는 방식이라 분양가가 저렴하다는 게 특징이다. 김 사장은 이 방식으로 강남에 5억원대, 그 외 지역엔 3억원대 아파트를 공급해 시장 안정화를 도모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토지임대부 주택은 택지 확보가 우선돼야 하는데 김 사장이 지목한 '반값 아파트' 후보지 지역 주민들이 벌써부터 크게 반발하고 있다. 그가 꼽은 후보지는 은평구 녹번동 서울혁신파크, 강남구 대치동 세텍(SETEC) 부지, 수서동 공영주차장 부지, 옛 성동구치소 부지 등이다. 

은평구, 강남구 등은 구청장이 나서 선을 그었고 송파구 가락동 옛 성동구치소 부지는 주민들이 단체행동을 준비하며 원안대로 개발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관련기사: "옛 성동구치소, 공공분양 반대"…인근 주민들 뭉친다 (9월28일)

'임대' 개념인 만큼 시장 수요를 분산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토지임대부주택은 이전에도 여러 번 공급됐지만 토지는 공공이 갖고 정작 소유하는 건물은 감가상각 되는 구조적 한계 때문에 주목받지 못했다"며 "주택 수요자들은 기본적으로 집을 소유하길 원하고 임대주택보다는 넓고 쾌적한 주거공간을 바라고 있는데, 토지임대부주택은 이같은 시장의 흐름과 방향이 반영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김 사장이 제시한 주택정책이 오히려 주택공급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되고 있다. 김 사장은 '집값 안정 3종 세트'로 반값 아파트에 이어 분양원가 공개, 분양가상한제를 앞세웠다. 이들 모두 분양가를 낮춰 무주택 서민들의 내 집 마련 기회를 확대해준다는 취지이지만 시공사 및 조합 등 사업주체의 주택 사업 유인이 적다는 게 문제점으로 꼽힌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은 "분양가는 아파트 입지, 단지 규모 등 개별 단지의 특징이 반영된 가격이라 분양원가가 일률적인 지표가 되기 어렵고 가격 안정에 미치는 영향도 적을 것"이라며 "김 사장이 제시한 부동산 정책 모두 건설사 등 주택사업자 입장에선 부담으로 작용해 공급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렇게 되면 오세훈 서울시장의 '스피드 주택공급' 정책과도 상충할 수 있다. 오세훈 시장은 인위적인 억제 정책을 풀어 2030년까지 서울 내 80만 가구를 공급하겠다는 목표로 주택공급에 속도를 내고 있다. 김 사장의 '반시장정책'이 공급 확대에 걸림돌로 작용한다면 향후 원활한 공조가 힘들어질 수 있다. 

저격수에서 표적되자…'숙제 한무더기' 

'저격수' 시절 겨눈 화살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숙제다.

김 사장이 소속돼 있던 경실련은 지난 2019년 SH공사를 상대로 분양원가 정보공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SH공사가 지난해 일부 승소했고 SH공사가 즉각 항소해 2심이 아직 진행중이다. 일각에서는 SH공사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진행한 인물이 해당 기관의 사장으로 임명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같은 이유로 서울시의회도 '부적격 의견'을 낸 바 있다. 앞서 김 사장은 SH공사 사장 2차 공모 면접심사 과정에서 SH공사 임원추천위원회 위원들로부터 낮은 평가를 받아 최종 후보에 오르지 못했다. 그러나 임명권자인 오 시장이 당시 최종 후보 2명에 대한 인선을 진행하지 않고 3차 공모를 실시함에 따라 김 사장이 최종 후보에 올랐고, 시의회 부적격 의견에도 오 시장은 임명을 강행했다. 

더군다나 시의회 의원 대부분이 여당 출신으로 향후 시의회의 신뢰 및 관계 회복도 김 사장의 숙제로 남아 있다. 

두성규 선임연구위원은 "김 사장이 경실련에서 활동하면서 (분양원가 공개 소송 등) 짊어진 짐들이 많다"며 "공격만 하다가 방패의 입장에 서게 되면서 자가당착적인 문제를 풀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혜안을 발휘해서 구체적으로 실행하기엔 내년 대선, 지자체장 선거 등의 변수가 많기 때문에 그 전까지 제대로 된 청사진을 내놓는게 중요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SH공사의 '주거복지' 기능을 견지하는 것도 주요 과제로 꼽힌다.

서진형 회장은 "공급 확대가 중요한 현 시장 상황에서 서울시는 민간개발, SH공사는 주거복지에 초점을 맞춰서 투트랙 전략으로 가는 게 이상적인 방향"이라고 봤다. 이를 위해선 공사의 재무구조 개선도 시급하다.

SH공사 홈페이지에 2014년부터 공개돼 있는 손익보고서를 살펴보면 SH공사의 매출은 지난 2014년만 해도 4조3651억원에 달했으나 그 뒤로는 2억원 전후에 머물러 있다. 서울시내 대규모 택지가 사실상 고갈되고 수익성 높은 분양사업이 줄어드는 대신 임대주택 공급 비중이 높아지면서 연간 실적이 '전성기 시절'에 한참 못미치고 있다. 

실제로 분양이익은 점점 줄어드는 반면 임대적자는 늘어나고 있다. 한국감사원이 지난해 6월22일부터 7월17일까지 정기감사를 실시한 결과 SH공사의 분양이익은 2018년 5878억원에서 2020년 9656억원까지 늘었다가 차츰 줄어들어 2023년엔 6604억원에 그칠 전망이다. 임대적자는 2018년 3605억원에서 2023년 5551억원으로 꾸준히 늘어날 것이라고 봤다.

주거복지 개선 등에 대한 목소리가 점차 커지는 상황에서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실탄 확보, 재무 안정을 다지는 것도 김헌동 사장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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