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현대산업개발이 '통 큰 결단'을 내렸다.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의 붕괴한 건물을 포함한 전체 건물을 전면 철거하고 재시공하기로 했다. 소요 비용만 3700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기업 입장에선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것이지만 사고 이후 HDC현대산업개발이 존폐위기에 놓일 만큼 무너진 신뢰 회복을 위해선 최선의 선택이란 평가가 나온다.
사고 발생 4개월만에..."전면철거!"
정몽규 HDC 회장은 4일 오전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입주예정자의 요구에 따라 광주 화정동 아이파크 8개 동 모두를 철거하고 새로 짓겠다"고 밝혔다.
화정 아이파크는 1, 2단지로 나뉘어 있으며 당초 총 8개 동 847가구(아파트 705가구, 오피스텔 142실)가 올해 11월30일 입주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지난 1월11일 신축 중이던 201동의 외벽이 붕괴하면서 부상자 1명, 사망자 6명이 발생해 공사 중단 상태다.
현산은 사고가 발생한지 엿새 만에 기자간담회를 열고 정몽규 HDC그룹 회장의 현산 회장 사퇴를 알리고 건축물 안전보증 기한 확대 등을 추진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관련기사:아파트처럼 '와르르' 무너진 HDC현산 '정몽규의 꿈'(1월17일)
당초 현산의 시나리오는 세 가지였다. △사고가 난 201동만 △2단지만 △1~2단지 모두 철거 및 재시공하는 안이다. 현산은 이들 시나리오의 평균값을 매긴 손실 추정액 1754억원을 지난해 4분기 실적에 미리 반영했다.
이날 발표한 '전면 철거 및 재시공' 안은 시나리오 중에서도 '끝판왕'격이다.▷관련기사:
정몽규 "광주 화정 아이파크 8개동 모두 철거, 새로 짓겠다"(5월4일)
철거와 재시공에 따른 건축비와 입주 지연에 따른 주민 보상비까지 추가로 투입될 비용만 3700억원 가량으로 추산했다. 사고 발생 4개월이 지나서도 '아이파크 보이콧' 등 여파가 지속되자 고객 신뢰 회복을 위한 결단을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정 회장은 "지난 4개월 동안 입주예정자와 보상 여부를 놓고 얘기해왔는데 무너진 동(201동) 뿐만 아니라 나머지 계약자들도 안전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며 "그걸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은 완전히 철거하고 새로 짓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800여명에 달하는 계약자와의 합의가 무한정 지연될 가능성이 있고 회사의 불확실성도 커지기 때문에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며 "그것이 저희가 가장 빨리 고객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결단에 따라 입주 예정자뿐만 아니라 시장의 신뢰 회복도 기대되고 있다. 입주 예정자들은 그동안 꾸준히 '전면 철거 및 재시공'을 요구해 왔던 만큼 이날 현산의 결단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화정 아이파크 사태에 대해 "가해 기업은 망해야 한다"고 일침을 놨던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도 이날 현산의 발표 직후 자신의 SNS에 "현산의 고뇌에 찬 결단이 우리나라의 안전문화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입주까지 70개월?…리스크 어쩌나
그러나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수두룩하다.
현산 측은 화정아이파크 전면 철거 후 준공까지 무려 70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했다. 통상 정비사업 시 철거 후 준공까지 3년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두 배 정도의 시간이다.
현산이 화정아이파크에 대해 잡아 놓은 추가 투입 비용 3700억원에 주민 보상비까지 포함돼 있긴 하지만, 앞으로 6년 가까이 입주가 지연되는 데 따른 피해액 보상 과정에서 관련 비용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상가 상인들도 입주 지연에 따른 영업 손실에 대해 보상을 추가로 요구할 수 있다.
'영업 정지' 공포도 여전하다. 현산은 지난해 6월에도 광주 학동에서 붕괴사고를 일으켜 영업정지 8개월, 과태료 4억원대를 부과받았다. 법원이 영업정지 8개월에 대한 집행정지(효력 정지)를 결정해 한숨 돌린 상태지만 서울시의 항고나 본안소송 등이 남아 있다.
여기에 화정아이파크 관련 처분도 앞두고 있다. 국토부가 지난 3월 현산에 대한 '등록말소 또는 영업정지 1년'을 관할관청인 서울시에 요청, 서울시가 관련 징계 절차에 착수한 상태다. 두 번이나 인명 피해가 있는 중대 사고를 낸 만큼 '등록말소' 가능성도 나온다.
사고에 따른 비용 부담이 증가하면서 실적 부진 장기화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지난해 4분기 화정아이파크 비용을 반영한 현산은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이 330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3.6% 급감했다. 올해 1분기에는 비용 반영이 없었음에도 영업이익이 681억원으로 전년 동기 보다 42.5% 감소했다.
현산 관계자는 "(공사 중이던 건물을 전면 철거하고 재시공하는 건) 전대미문의 사건이라 준공까지의 소요 기간은 개략적으로 예상해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뢰회복을 위해 뼈를 깎는 고통으로 큰 결단을 내린 것이고 향후 절차는 이제 시작"이라며 "화정아이파크에 대해 추진 중이던 정밀 안전진단을 중단하고 철거를 할 지, 재시공 과정에서 공법 등을 개선할지 등 여러모로 실무적으로 협의하고 풀어나가야 할 부분이 많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