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있는 아들이 나가라고 해서 왔어요. HDC현대산업개발이 (입주 지연에 대해) 보상해준다는 발표만 철석같이 믿었는데……."
26일 오후 서울 용산역 광장에서 열린 HDC현대산업개발 보상책 반대 집회에 참석한 A씨(60대)는 이렇게 말했다. A씨는 집회에 참석하고자 이른 아침 광주에서 출발했다. 집회를 주최한 '화정 아이파크 예비 입주자 협의회'는 이날 총 11대의 버스를 빌렸다.
이날 집회는 대략 계산해보니 약 300~400명(주최측 추산 600명)이 참석했다. 부모님과 함께 온 미취학 아동부터 80대 어르신까지 다양했다. 유모차도 드문드문 눈에 띄었다. 오후 1시에 시작한 집회는 예정 시간인 오후 3시를 훌쩍 넘긴 3시 40분경까지 이어졌다.
입주예정자들 "실질적 보상안 제시해야"
HDC현산이 지난 11일 발표한 '주거지원 종합대책안'이 이번 집회의 도화선이 됐다. 참석자들은 "HDC현대산업개발이 입주예정자들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제시한 입주 지연 보상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외쳤다.
HDC현산이 마련한 대책안은 총 2630억원 규모다. 중도금 대위변제 금액 1630억원과 주거지원비 1000억원 등이다. 입주예정자는 전용 84㎡ 기준 1억1000만원의 주거지원비와 1800만원의 지체상금을 받게 된다. 지체상금은 HDC현산 추산대로 입주가 6년 지연됐을 경우를 기준으로 계산했다.
참석자들은 이 같은 보상안에 합의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억1000만원으로는 마땅한 전셋집을 구할 수 없고 지체상금도 실제 피해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실제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인근 화정동 유니버시아드 힐스테이트 전용 84㎡ 전셋값은 3억원에 이른다.
이승엽 화정 아이파크 입주자 협의회 대표는 "가족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보금자리를 꿈꿔왔기 때문에 붕괴사고 이후에도 버텨왔는데 HDC현산은 지체상금을 적게 주려고 꼼수를 부리고 있다"며 "1800만원을 받고서는 아이파크에 입주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허울뿐인 주거지원대책을 중단하고 실질적인 주거지원안을 만들길 촉구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다음 주부터 서울시와 청와대 등에 HDC현산 건설업 사업자 등록말소를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DSR 회복 위해 중도금 대위변제 등…이미 협의"
이날 집회를 지켜보던 HDC현산 측은 입주예정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최선의 보상안을 마련했다고 해명했다. 주거지원비를 이용하지 않는 계약자들에 대해선 지원금의 7%를 분양가에서 할인하고, 지체상금 요율도 계약서에 따라 적용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계약고객들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회복시켜 추가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중도금 대위변제를 추진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중도금 이자도 HDC현산이 직접 상환했다. 사실상 중도금을 환급했다는 것이다. 계약서 상에서는 '기납부금액에 대해 6.48%를 지체보상금으로 지급한다'고 쓰여 있다.
HDC현산 관계자는 "계약자들이 입주 전까지 대출을 받는 데 문제가 없도록 중도금 전부를 대위변제했다"며 "지체보상금은 계약자들이 납부한 10%의 계약금에 연 6.48%, 지연 기간 6년을 계산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용 84㎡ 기준 지체상금은 1800만원이고, 주거지원비를 받지 않는 경우 3900만원의 이자 비용을 분양가에서 할인하는 등 총 혜택은 가구당 5700만원에 이른다"며 "대위변제한 중도금의 경우에도 4회차 이자만 가구당 800만원"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보상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주민들과 충분히 협의했다고 강조했다. 입주예정자들의 요구가 가장 많았던 DSR 회복을 중점으로 방안을 고안했으며, 현재 사전의향서 접수를 받고 있다.
엄정숙 법도 종합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중도금은 이미 변제된 후 소멸했으므로 기납부금액으로 볼 수 없다"며 "계약서에 따른 보상책임으로 문제의 소지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집회를 시작으로 HDC현산과 입주예정자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례가 없는 사고였던 만큼 마땅한 보상 기준이 없는 탓에 양측의 협의가 중요하다는 시각이다. 아직 화정 아이파크는 안전 사고 우려 등으로 철거를 시작하지도 못했다.
HDC현산 관계자는 "철거작업 전 안정화 작업을 진행 중인데, 주변 민원 등이 있어서 공법을 계속해서 바꾸고 있다"며 "입주예정자들에게 오해가 없도록 계속해서 대화를 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