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업계가 정부의 입만 바라보고 있다. 집값 상승을 부추길까봐 이중 삼중으로 걸어잠궜던 재건축·재개발 규제를 윤석열 정부에서 풀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특히 윤 정부가 270만 가구 공급 계획(8·16대책)의 20%에 달하는 52만 가구를 정비사업으로 공급하겠다고 한 만큼 규제 완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시장에선 '정비사업 3대 대못'으로 꼽히는 분양가상한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재건축 안전진단 등의 대폭 완화가 기대되고 있으나 집값 상승 재점화 우려에 여전히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재초환 등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은 '거대 야당'의 협조를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도 쉽지 않아 보인다.
3대 대못, 뽑긴 뽑는데..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윤 정부 첫 공급대책인 8·16대책을 통해 향후 5년간 총 270만 가구의 공급 계획 중 이중 52만 가구(19.3%)는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으로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정비사업은 도심 주택 공급을 위한 핵심적인 수단이지만 그동안 무분별한 재건축·재개발 방지, 집값 상승 우려 등을 이유로 각종 규제에 막혀 있었다.
이에 정부는 '정비사업 3대 대못'으로 꼽히는 분양가상한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재건축 안전진단 등의 규제를 완화하기로 하고 지난 6월21일 상한제 개편부터 나섰다.
상한제는 인거비, 자잿값 등이 크게 오른 상황에서 분양가를 적정 수준으로 올리지 못하면서 주택 공급이 지연되자 적정 수준으로 책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는 최근 집값이 폭등하면서 부담금이 커지자 정비사업 추진을 미루는 경향이 생겼고, 재건축 안전진단은 사업 초기 단계인 만큼 규제를 완화해 추진력을 실어줘야 한다는 업계의 목소리가 잇따랐다.
새 정부는 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자 국정 과제였던 상한제부터 손질했다.
국토부의 '분양가 제도 운용 합리화 방안'에 따르면 앞으로 상한제 적용 대상인 정비사업장의 분양가 산정 시 세입자 주거 이전비와 영업 손실 보상비, 명도 소송비, 기존 거주자 이주를 위한 금융비(이자), 총회 운영비 등도 일반 분양가에 반영된다.
이어 지난달엔 새 정부의 첫 공급 대책인 8·16대책을 통해 재건축 부담금 합리적 감면, 재건축 안전진단 제도개선 착수도 예고했다. 이는 각각 9월과 연말께 세부 내용을 발표하기로 한 상태다.
재건축부담금은 부과기준 현실화, 장기보유자 부담금 감면 등이 검토되고 있다.
시장에선 개발이익 환수 면제 기준 현행 3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상향, 장기 보유 1세대1주택자 보유 기간에 따라 부담금 감면, 1세대1주택 고령자 상속·증여·양도 등 해당 주택 처분 시까지 부담금 납부 유예 등이 이뤄질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재건축 안전진단은 구조안전성 배점을 기존 50%에서 30~40% 수준으로 하향하고, 지자체 요청 시에만 적정성 검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못 푼다 vs 안 푼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생각보다 규제 완화 속도가 느리고 그 폭이 작아 실제 주택 사업을 하는데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상한제의 경우 개편된 제도를 반영해도 정비사업 분양가는 1.5~4.0% 상승에 그칠 것으로 국토부는 내다봤다. 인건비, 자재비 상승 폭이 두드러진 상황인 만큼 이 정도 인상으론 주택 사업자의 사업을 유도하기 어려울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재초환이나 재건축 안전진단 또한 '폐지' 수준이 아니고선 공급으로 이어지긴 힘들 거란 분석이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시장 분위기가 너무 침체된 상황이라 웬만한 규제 완화로는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인 경우 '거대 야당'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그는 "재건축 안전진단의 경우 시장에선 구조안전성 배점을 박근혜 정부 때인 20%까지 낮추길 바라는데 그 정도까지 완화해줄 것 같지 않다"며 "재초환은 국회 문턱을 넘어야(재초환법 개정) 손질이 가능하기 때문에 야당의 협조가 필요한데 그게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가 시장의 기대만큼 규제를 완화하지 않는 건 단연 '집값' 때문이다. 최근 들어 집값이 전국적으로 조정세를 보이고 있긴 하지만 규제를 풀면 다시 과열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한국부동산원의 8월 5주차(29일 기준) 주간 아파트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0.13% 하락, 2019년 1월28일(-0.14%) 조사 이후 가장 낙폭이 컸다. 강남권에서도 전반적인 낙폭이 나타나며 '완전한 하락세'란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최근 '거래 절벽'으로 표본수가 적어 해당 통계만 보고 시장을 판단하긴 섣부르다는 시선도 나온다. 실제로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372건으로 최근 1년간 최저치를 기록했다.
일부 단지에선 여전히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기도 하다. 강남구 압구정 현대8차의 전용면적 107㎡는 지난 7월 39억원(5층)에 거래돼 지난 4월 신고가인 38억7000만원(7층)을 갈아치웠다. 청담동 최고급 빌라 마크노빌 전용 270㎡도 지난 7월 43억원으로 지난해 11월 신고가(39억)를 경신했다.
전문가들은 이같은 우려에 정부의 정비사업 규제 완화가 신속하게 이뤄지긴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윤수민 위원은 "자칫 들쑤시면 역풍을 맞는다는 생각에 (규제 완화를) 쉽사리 건들지 못하는 모습"이라며 "MB 때도 집권 1~2년차엔 공급대책만 내놓고 공급이 본격화한 3~4년차에 다 풀었던 것처럼 총선과 공급 가시화 등이 맞물린 2024년께 규제를 크게 풀지 않을까 싶다"고 전망했다.
김인만 경제부동산연구소장도 "현 시점에선 가격 고점 인식, 금리 상승, 집값 하향 전망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정비사업 규제를 푼다고 해도 매수자들이 크게 움직일 것 같지 않다"며 "규제 지역을 전부 해제하는 식의 큰 폭의 규제 완화가 아닌 이상은 별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럼에도 집값 과열 우려 등으로 정부가 신중하게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며 "가격이 급락하거나 외환위기 등의 큰 변수가 오지 않는 이상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할 정도의 규제 완화를 점진적으로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