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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정치인 원희룡'의 공시가격 손질법

  • 2022.11.25(금) 06:30

연구용역 뒤 연이어 두 차례 공청회 '이례적'
'2020년 회귀' 공약 지켰지만…현실화 땜질 접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해 12월 23일 '부동산 세제 정상화 공약'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중앙선대위 정책총괄본부장을 맡았던 그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을 대신 발표했다.

공약에는 공시가격을 2020년 수준으로 환원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산정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이 급등하면서 늘어난 국민들의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취지다. 마침 원 본부장은 국토부 장관에 올랐고, 지난 23일 이 공약을 그대로 지켰다. 정부는 내년 공시가격 현실화율(시세 대비 공시가격 비율)을 2020년 수준으로 되돌리겠다고 발표했다. ▶관련 기사: 공시가 현실화율 2020년 수준으로…재산세는 더 낮춘다(11월 23일)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사진=국토교통부 제공.

2020년을 콕 집어 공시가격을 되돌리겠다고 공약한 것에는 '정치적인 의미'가 있다. 지난 문재인 정부가 공시가격을 현실화하겠다며 로드맵을 만든 게 바로 2020년 11월이었다. 지난 정권에서 추진한 정책을 원점으로 되돌리겠다는 뜻이다. 실제 정부가 이번 방안을 내놓은 뒤 시장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의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이 사실상 폐기된 것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지난 정권에 '과오'가 있다면 새 정부가 바로잡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문재인 정부는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집값 급등 등 시장 혼란을 초래해 민심을 잃었다. 공시가격 현실화 정책 역시 현실화율 90%라는 높은 목표치와 너무 빠른 인상 속도가 문제가 될 거라는 지적이 많았다. 실제 세 부담이 급격하게 커졌고, 최근 들어서는 집값 하락으로 시세와 공시가가 역전되는 부작용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다만 이번 정책이 발표되기까지의 과정에는 찝찝한 구석이 있다. 국토부는 이번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일련의 절차를 밟아왔다. 지난 6월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연구용역을 맡긴 뒤 5개월 만인 지난 4일 그 결과를 놓고 공청회를 열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다.

애초 조세재정연구원의 제안은 내년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올해 수준으로 동결하는 방안이었다. 일단 1년을 유예하고, 최근 급변하는 부동산 시장 흐름을 지켜본 뒤 장기 계획을 세우자는 제안이다. 당시 공청회에 참석한 국토부 관계자 역시 "조세연이 제안한 1년 유예안에 대해 일정 부분 공감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통상 연구용역 결과를 놓고 공청회를 한 뒤에는 그 내용이 정책에 대부분 반영되곤 한다.

그러나 금세 상황이 변했다. 원희룡 장관이 네옴시티 수주 건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출장(4~9일)을 다녀온 다음 날인 지난 10일 국토부는 "공시가격 현실화 수정 계획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공청회에서 제시한 제안 외에 추가 보완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해 11월 중 발표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원 장관은 이후 지난 21일 세종청사에서 국토부 기자들과 만나 "지난번 조세재정연구원에서 제안한 정도로는 부족하다"며 "더 강화한 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2차 공청회를 열어 이번 방안이 제시됐고, 다음날 정책으로 발표했다. 공약 그대로의 내용이다. 결국 답은 정해져 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원 장관이 취임 후 지금까지 공시가격 현실화와 관련해 내놓은 것은 지난 정부가 추진한 흔적을 지운 게 전부인 셈이 됐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전문가들은 이번에 내놓은 공시가격 인하 방안은 시의적절했다는 평가가 많다. 조세저항이 불 보듯 뻔한 상황에서 당장 급한 불은 꺼야 했기에 '융통성' 있는 결정이 필요했다는 평가다.

다만 이번 방안이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점에도 한목소리를 모은다. 집값이 오르내릴 때마다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올렸다 내렸다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세와 괴리가 컸던 공시가격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많은 전문가들이 공감하는 만큼 장기적인 로드맵을 만드는 게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부동산 가격공시 제도는 그 차제로 객관성과 정확성을 목표로 두고 추진하고, 조세정책의 경우 조세평등주의와 세 부담의 적정성을 고려해 세액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공시제도와 조세정책을 분리해 운영하라는 의미다. 지난 정권에서 집값을 잡는 데 공시가격을 '수단'으로 활용해 무리하게 올렸던 게 문제였다고 지적한 원 장관의 언급과도 같은 맥락이다.

'부동산 가격공시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토부 장관은 부동산 공시가격이 적정 가격을 반영하고 부동산의 유형·지역 등에 따른 균형성을 확보하기 위해 시세 반영률의 목표치를 설정하고,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적정하고 합리적인 공시가격을 만드는 게 국토부 장관의 의무라는 의미다.

원 장관이 지금까지는 정치인으로서 공시가격을 손질하는 데 성공했다면, 앞으로는 국토부 장관으로서 제도의 취지에 맞는 공시가격을 만들어가는 데 힘을 써야 한다. 국토부는 내년 하반기 새로운 현실화 방안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지난 정부의 과오를 불식할 수 있는 합리적인 로드맵을 내놓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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