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와 공매'
이미지만 떠올리면 어쩐지 위압감이 느껴집니다. 어느 드라마에 보듯 곳곳에 '빨간 딱지'가 붙어 있는 집을 강제로 빼앗는 상상이 들기도 하고요. 하지만 경매와 공매는 채권자 입장에선 돈을 되찾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기도 합니다.
경매와 공매는 받지 못한 돈을 담보 처분으로 보장받게 하는 제도입니다. 부동산 시장에선 돌려받지 못한 전세보증금을 경매를 통해 되찾기도 하고, 공매로 나온 미분양 아파트를 저렴하게 사서 내 집 마련을 하기도 하는데요. 과연 나도 할 수 있을까요?
'경매' 확 늘어난 이유
최근 부동산 시장에 경매와 공매 매물이 눈에 띄게 늘고 있습니다. 집값 상승기 때는 집이 '없어서 못 샀다'면 침체기인 지금은 전세보증금 미반환, 미분양 등에 따라 강제로 시장에 나온 주택들이 많아진 건데요.
특히 지난 2022년 말부터 '빌라왕' 등 대규모 전세사기 사태가 잇따라 발생하고, 무리해서 집을 사는 '영끌족'들이 늘어나면서 경매를 속속 일으켰습니다. 실제로 법원의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2023년 전국 경매(임의·강제) 개시결정 건수는 7만9607건으로 전년(6만422건) 대비 31.8% 늘었죠.
경매는 법원에서 채무자의 부동산을 압류해서 경매로 내놓고, 낙찰받은 돈으로 채권자의 빚을 갚는 강제 집행입니다. 담보로 제공받은 부동산에 근저당권 등을 실행하는 '임의 경매', 개인이 법원의 판결(허가)을 통해 진행하는 '강제 경매'로 나뉘어요.
임의 경매는 통상 채권자가 금융 기관인 경우로, 상환 시점이 3개월 이상 연체되면 금융기관이 별도의 재판 없이 경매 신청을 할 수 있는데요. '영끌 주택' 사례가 그렇습니다. 대출을 과하게 받아 집을 샀다가 2022년 이후 고금리 등의 영향으로 집값이 떨어지자 원리금을 갚지 못해 경매로 나온 집이죠.
강제 경매는 재판을 통해 판결을 받아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채권자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 판결을 얻은 뒤 해당 주택을 경매 신청하면 법원은 채무자의 부동산을 압류해 경매에 들어갑니다. 이는 전세보증금을 받지 못한 임차인들이 이용하는 방법이기도 한데요.
본인이 '셀프 낙찰' 받아 주택을 매수하거나, 낙찰자에게 보증금을 돌려받는 거죠. 다만 돌려받아야 할 전세금보다 낙찰대금이 적은 경우도 있는데요. 주택임대차보호법에 제3조의5에 따라 해당 주택이 팔려도 선순위 임차인의 보증금이 전액 변제되지 않으면 임차권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낙찰자에게 요구할 수 있습니다.
엄정숙 부동산 전문 변호사(법도 종합법률사무소)는 "낙찰대금으로 전세금이 완전히 변제되지 않고 일부 금액이 남아 있다면 임차인은 나머지 금액을 받을 때까지 해당 주택에서 계속 머무를 수 있다"며 "만약 낙찰자가 잔액을 주지 않는다면 낙찰자를 상대로 전세금 반환 소송도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경매 절차는 △강제경매 신청 △강제경매 개시의 결정 △배당요구의 종기 결정 및 공고 △매각 준비 △매각 실시 △매각결정 절차 △매각 대금 납부 △배당절차 △소유권이전등기와 인도 등의 순입니다. ▷관련 기사:[똑똑한 전세살이]⑪살던 집, 셀프 낙찰 방법(2023년4월11일)
단독 입찰이면 최저 매각 가격을 제시하면 되고요. 경쟁 입찰이면 가장 높은 입찰가를 제시한 사람이 해당 부동산을 낙찰받을 수 있습니다. 첫 입찰가는 법원에서 감정 평가해서 결정되고요. 입찰일과 시간이 정해지면 직접 법원에 가서 입찰하면 됩니다.
입찰 보증금은 10%, 유찰 시엔 이전 회차의 20~30% 정도 입찰 가격이 낮아지는데요. 가령 2억원짜리 주택이 한 차례 유찰되면 1억6000만원(20% 감액), 두 차례 유찰되면 1억2800만원(20% 감액)이 되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유찰을 기다렸다가 매수하기도 합니다. 낙찰 후 경락잔금(90%)은 45일 이내 일시불로 내야 하고요.
공매로 '내 집 마련' 해볼까
'공매'(공개 매각) 역시 증가 추세입니다. 법원의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공매공고등기 신청건수는 1만1362건으로 전년(1만538건) 대비 7.8% 증가했습니다.
공매는 금융기관이나 기업이 가진 비업무용 재산과 국세·지방세의 체납으로 인한 압류 재산을 처분하는 제도입니다. 경매가 법원에서 진행한다면 공매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시행하고, 입찰도 온라인(온비드)으로 진행할 수 있어 비교적 간편합니다.
최근엔 대규모 미분양이 난 아파트들이 공매로 속속 나오고 있어 무주택 수요자 또는 투자자들이 눈여겨보는 분위기입니다. 금리 인상,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미분양이 장기화되자 금융 비용 등을 갚지 못하고 공매에 들어간 아파트를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기 때문이죠.
다만 미분양 적체가 심한 곳은 공매 관심도도 떨어지는데요. 대표적인 곳이 '미분양 무덤'으로 꼽히는 대구에 위치한 '빌리브 헤리티지' 단지입니다. 대구 수성구에 위치한 이 아파트는 지상 최고 29층, 2개 동, 146가구 규모로 조성됐는데요.
초호화 아파트 콘셉트로 2022년 11월 야심 차게 후분양을 진행했지만 25가구(분양률 17.1%)만 계약하면서 미분양 늪에 빠졌습니다. 총 121가구(전체의 82.9%)가 주인을 찾지 못해 할인 분양까지 진행했지만 지난해 8월 완공 후에도 미분양 상태인 '악성 미분양' 단지가 됐는데요.
결국 지난해 11월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만기를 연장하지 못하면서 대주단 주관사인 메리츠증권이 교보자산신탁에 공매를 요청했고요. 지난달 30일 첫 공매가 진행됐지만 최저입찰가격(전용 151㎡ 16억9500만원)이 높아 전량 유찰된 상태입니다.
대구는 전국 17개 시·도 중 미분양 물량 최다 지역이라 진입이 조심스러운 분위기인데요.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말 기준 대구 미분양 주택은 1만245가구로 수도권 전체 미분양(1만31가구)보다 많고요. 악성 미분양은 1044가구로 1년 새 4배 수준으로 치솟았거든요.
다만 공매는 입찰 주기가 일주일(경매는 1개월)이라 유찰이 되면 될수록 빠르게 가격이 낮아지는 게 특징이죠. 유찰 시 입찰가 저감률은 통상 10% 수준입니다. 몇 차례 유찰이 돼서 가격이 떨어지면 매수 대기자 또는 투자자들도 따라붙을 수 있죠.
인터넷 입찰이 가능한 만큼 직장인 등 따로 시간을 내기 어려운 이들도 입찰에 참여하기 쉽고요. 이에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내 집 마련을 하고 싶다면 경매와 공매 시장 동향을 눈여겨보다가 적당한 매물에 입찰해 보는 것도 하나의 전략으로 꼽힙니다.
윤수민 NH농협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미분양 아파트 공매의 경우 일종의 할인분양이라고 보면 되기 때문에 몇 차례 유찰되면 투자 수요가 유입되기 마련"이라며 "통상 일대 전세 시세 정도까지 가격이 떨어지면 입찰자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그는 "경매는 임차권 등 권리 분석을 꼼꼼히 해야 향후 자금 계획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며 "이왕이면 임차인이 없고 비어있는 집을 낙찰받는 게 좋고, 이런 권리 분석에 자신 없다면 미분양 아파트 공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내 집 마련 방법"이라고 조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