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12월26일, 기획재정부 재산세제과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세' 관련 질의회신문을 하나 공개했다. 특정 민원인의 세금 환급 질문에 대해 법적 해석을 기존과 다르게 내놓은 것인데, 실상 다수 다주택자가 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내용의 골자는 이렇다. '2009년 3월16일부터 2012년 12월31일' 중 주택을 취득한 '다주택자'가 '2018년 4월' 이후 주택을 양도(매각)했을 경우 최대 30%포인트 '중과세율'을 더해 냈다면 양도소득세 일부를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 관련기사 : [단독]8·2대책 '양도세 중과' 구멍 6년만에 드러났다(1월17일)
돌려주는 세금은 일반세율(6~42%) 부과분 외에 중과세분(20~30%포인트) 전부에 이자까지 붙여서다. 양도차익 규모에 따라 납세자는 수천만~수억원의 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관련기사 : [인사이드 스토리]'중과 폭탄' 양도세, 돌려받을 수 있다고?(1월18일)
이 같은 해석이 나온 이유는 법원 판결에서 '조세행정의 법적 구멍'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하반기 한 납세자가 국세청을 상대로 소득세법 부칙상 중과세 적용이 부당하다며 낸 행정소송에서 승소했다. 기재부는 사법부 판결을 반영해 법 해석을 뒤집었고, 국세청도 이를 받아들여 세금을 환급해 주기로 했다.
정부가 세금을 잘못 거둬갔다는 것을 사실상 인정한 셈이다. 다주택자 일부에게 한시적으로 부과하지 않기로 한 중과세를 물린 것을 이제라도 바로 잡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세무업계는 한때 관련 이슈로 떠들썩했다. 법원 판결이 근거가 됐지만 대법원(3심)이 아닌 고등법원(2심) 판결로 과세 행정을 뒤집는 경우는 드물다. 또 이를 토대로 불특정 다수의 납세자에게 대규모 경정청구를 허용하는 사례 역시 매우 희귀한 경우기 때문이다.
문제는 '경정청구'다. 세금을 환급받기 위해서는 중과세를 적용받은 다주택자 납세자가 직접 세금 환급을 청구해야 한다. 경정청구는 법정신고 기간에서 5년까지만 할 수 있다. 즉 주택을 양도한 후 확정신고일 기준 5년 내 청구해야 한다.
2018년 주택을 양도했다면 이듬해인 2019년 5월 말까지 확정신고를 해야 한다. 이날을 기점으로 5년, 즉 이들의 경정청구 기한은 이달 말 종료된다. 경정청구가 가능한 기간이 기재부의 예규 변경 후 6개월도 채 안되는 셈이다. 정당하게 돌려받아야 하는 돈이지만 하루라도 늦으면 과납한 세금을 돌려받을 수 없다.
국세기본법 제45조의2에서는 경정청구 기간이 지났어도 판결 등 '후발적 사유로 인해 경정청구'를 할 경우 국세환급 소멸시효를 결정일로부터 5년간 두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엔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기재부와 국세청의 설명이다. 환급 이유가 예규 즉 '법 해석 변경'이기 때문에 후발적 경정청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규 변경'으로 정부가 해야할 일은 끝난 걸까. 국민이 세금을 체납하면 3%의 가산금을 내야한다. 100만원을 넘기면 1개월이 지날 때마다 가산금을 더 붙여 낸다. 재산을 압류당할 수도 있다. 세금납부가 '국민의 의무'라서다. 하지만 '정부의 의무'는 찾아보기 어렵다. 잘못 거둬간 세금도 직접 일일이 돌려달라고 읍소해야 한다.
기재부는 법안 개정이 아닌 단순 '법 해석을 달리한 사안'이기 때문에 정부가 대대적으로 해당 내용을 알릴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세금을 잘못 거둬간 것은 인정했지만 돌려받는 책임은 다시 국민에게 떠넘긴 셈이다.
납세자가 '잘못 낸 것'이 아니라 정부가 '잘못 거둬간 것'이라 급박한 환급 시한을 더 납득하기 어렵다. 과세 행정의 오류 그 자체도 드문 사례지만 더욱 아쉬운 것은 스스로 세정의 결함을 쉬쉬하는 기획재정부, 세제실이다. 경정청구의 책임을 납세자에 떠넘겨 국가 세금제도의 신뢰성이 훼손된다면 더 큰 오점으로 남을 수 있다.
2019년이후 중과납부자도 정부가 알려야
이 같은 문제의 근본 원인은 정권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바뀐 부동산 정책을 꼽을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시장은 침체했다. 시장을 살리는 임무를 맡은 이명박 정부는 소득세법에 '다주택자 중과세율을 한시적으로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부칙'을 만들었다. 부동산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서였다.
바통을 이어받은 박근혜 정부 역시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위해 부동산 규제를 대거 풀었다. 효과는 문재인 정부 때 나타났다. 풀어진 다수 정책과 저금리 효과로 부동산 경기가 오르면서 시장이 과열됐다. 앞선 정부 때 밀어 넣은 땔감들에 그제야 불이 붙었다.
부동산 투기과열 방지가 최대 과제가 된 문재인 정부는 중과세율을 되살리고 각종 규제를 다시 꺼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정책을 믿고 집을 산 국민 가운데 일부는 이때 '중과세 폭탄'을 맞아야 했다. 정권이 바뀌며 법이 바뀌었지만, 부칙은 남아 있었다. 이 부칙이 최근 법원 판결, 예규 변경의 단초가 돼 다행히(?)도 이들을 구제한 셈이다.
하지만 완벽한 구제는 아니다. '셀프(self) 구제'라서다. 환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르면 돌려받을 수도 없다. 애초에 일반세율로 신고했던 납세자가 국세청으로부터 중과세율만큼 더 내라는 요구를 받았는데도 그렇다.
잘못된 신뢰 관계에서의 해법은 잘못을 인정하고, 알리고, 바로잡는 데서 시작한다. 국가와 국민 간의 신뢰 회복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단순 '예규' 변경 사안이라고 해도, 또다시 '법적 구멍'으로 누군가는 억울할 수 있다. 이 '구멍'의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