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통계]⑥ 설익은 지하경제 양성화

  • 2013.10.30(수) 13:48

올 들어 관세조사 급증…억울한 납세자 양산
불복 인용률 최고…관세청도 '무리한 과세' 인정

지난해 개봉한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최민식의 직업은 세관 공무원이다. 그는 1980년대 초반 부산항 일대에서 밀수에 개입하고, 업자로부터 뒷돈을 받아 챙기는 등 갖은 비리를 저질렀다. 

 

정의와는 거리가 멀었던 그의 행각은 당시 어두웠던 지하경제의 내면을 속속 파고들며 세력을 넓히는 원동력이 된다. 영화 속에서 그가 주고 받는 돈은 불법으로 조성된 자금이고, 과세당국에도 전혀 포착되지 않는다. 밀수와 관세포탈, 뇌물수수, 자금세탁 등 온갖 범법 행위가 다 나왔다.

 

2013년 현실에선 지하경제와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부족한 재원을 채우기 위해 지하경제 양성화를 지상과제로 삼고, 국세청과 관세청에게 미션을 전달했다. 과세당국은 음지에서 활동하는 탈세 세력을 잡아내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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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세 상당수는 '무리수'

 

과세당국이 지하경제를 얼마나 헤집고 있는지는 통계에 여실히 드러난다. 30일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9월까지의 관세조사는 338건으로 집계됐다. 3분기까지 이뤄진 조사 건수가 지난해 전체 조사 건수와 같았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연간 관세조사는 400건이 넘을 전망이다.

 

관세조사를 통한 추징 규모는 이미 지난해 풀타임 실적을 뛰어넘었다. 올해 9월 말까지 관세조사로 추징한 세금은 3019억원으로 지난해(1974억원)보다 1000억원 더 늘었다. 올해 지하경제 양성화를 위해 관세조사를 늘리고, 세금도 많이 뽑아냈다는 의미다.

 

관세청 입장에선 지하경제에서 벌어진 불법 행위만 도려내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애꿎은 기업과 개인사업자들도 많이 잡았고, 납세자들은 저마다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들이 관세청에 제기한 불복 금액도 지난해보다 크게 늘었다.

 

세금이 확정되기 전에 관세청에 직접 제기할 수 있는 과세전적부심 신청 규모는 올해 9월까지 1334억원에 달했다. 이미 지난해 전체 신청 규모(604억원)의 두 배를 넘어섰다. 이의신청은 지난해 185억원에서 올해 9월 현재 1385억원으로 7배 넘게 급증했고, 심사청구 금액도 같은 기간 12% 증가했다.

 

납세자들이 괜한 생떼를 부린 것도 아니다. 조세심판원에 제기된 관세불복 심판청구 가운데 납세자 주장이 받아들여진 비율(인용률)은 지난해 35%에서 올해 9월 현재 57%로 크게 상승했다. 관세청 조사공무원들이 눈앞의 세금을 충당하기 위해 법도 무시하고 과세한 경우가 많았다는 점을 보여준다.

 

◇ 관세청장의 고해성사

 

지난 28일 관세청 국정감사에서는 무리한 과세 행정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민주당 이낙연 의원은 "관세 불복이 늘어난 것은 지난해부터 세수 확보에 비상이 걸려서 관세청이 무리하게 징수한 결과"라며 "올해는 세수 전망이 나빠서 더욱 무리할 가능성이 있다"고 꼬집었다.

 

참여정부 시절 관세청장과 국세청장을 지낸 이용섭 의원(민주당)도 "불복 건수가 늘어난 것은 (당국이) 일단 과세해놓고 보자는 행정 편의주의와 국고주의에 기인한다"며 "막대한 행정비용과 납세비용이 발생할 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겪는 경제적, 심리적 고통도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과세의 정확성과 책임성을 높이기 위해 과세담당 공무원의 이름을 명기하는 '과세 실명제' 도입을 제안하기도 했다.

 

정부의 지하경제 양성화 정책이 일반 납세자들까지 힘들게 한다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백운찬 관세청장은 원론적인 변명보다는 솔직한 답변으로 대응해 눈길을 끌었다. 그동안 관세를 부과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잘못을 시원하게 인정하고, 점차 고쳐나가겠다는 자세를 보였다.

 

백 청장은 "일부는 지하경제 양성화 측면에서 과세상의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솔직히 말씀드린다"며 "과세전 적부심 등을 명확하게 해 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이어 "건전한 기업이나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않고, 음성적으로 탈루된 부분이나 새로운 탈세 분야를 집중적으로 발굴해 지하경제를 양성화시킬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과세실명제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그는 "과세실명제는 정확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측면에서 좋은 제도지만, 조사 심사 업무를 위축시키기 때문에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며 "장점과 단점을 모두 고려해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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