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서장으로 근무하다가 불과 며칠 사이 관내 세무사로 명함을 바꿔 개업 소연을 여는 관행은 해마다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김기정 성동세무서장과 이만수 금천세무서장, 강성준 분당세무서장, 김호연 동안양세무서장, 허남식 남대구세무서장 등이 명예퇴직 후 자신이 몸담았던 세무서 인근에 세무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세무서장뿐만 아니라 5급 이하 퇴직 공무원들까지 합치면 관내에서 활동하는 국세청 출신 세무 인력들이 수두룩하다. 올해 말에도 정년에 임박한 세무서장들이 변함없이 명퇴를 준비하면서 사무실 자리를 알아보는 중이다.
그들은 국세공무원으로서 세금을 걷기 위해 치열하게 연구하고 조사해왔기 때문에, 적법한 절차에 따라 세금을 아낄 수 있는 절세 노하우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국가에서 내준 세무사 자격증까지 보유한 터라 공직자윤리법에도 저촉받지 않고 '세금밥'을 계속 먹을 수 있다.

◇ 생계형 세무사 피해 우려
지난 달 새누리당 서병수 의원이 제출한 세무사법 개정안은 국세공무원들의 밥그릇을 위협하고 있다. 퇴직 후 세무사로 활동하더라도 1년간은 근무지에서 세무대리를 못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서 의원은 지난 3월 김덕중 국세청장 인사청문회 당시 연이은 국세청 출신 세무대리인의 비리에 대해 엄격한 관리를 주문했고, 이후 퇴직 공무원들의 전관예우 문제를 차단하기 위해 법안으로 구체화시켰다.
그러나 국세청을 중심으로 법 개정안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비리를 방지하는 공익적 취지는 이해하지만, 헌법상 기본권인 직업 선택의 자유와 평등의 원칙, 과잉금지의 원칙 등을 위배할 소지가 있다는 주장이다.
국세청이 2011년 공무원행동강령에 '퇴직공무원을 위한 현직 공무원의 고문계약 등 알선행위 금지' 조항을 신설하는 등 자체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기 때문에 굳이 법까지 만드는 것은 과잉 규제라는 시각도 있다. 세무사뿐만 아니라 공인회계사와 변리사, 법무사, 관세사 등 다른 전문직 자격증 소지 퇴직공무원에 대해서도 공통적으로 업무취급 제한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는 '물귀신' 의견까지 나온다.
국세청 관계자는 "일부 퇴직 공무원의 비리를 잡기 위해 대다수 생계형 세무사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며 "세무사의 기장료나 수임료는 변호사의 수임료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똑같은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반박했다.
◇ 본청·지방청 출신은 어떻게
법안 자체의 미비점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퇴직 전 근무지가 일선 세무서가 아니라 국세청 본청이나 지방국세청이라면 업무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진다는 문제가 발생한다.
국세청 정원의 93%를 차지하는 6급 이하 직원들을 수임제한 규정에서 제외할지 여부도 검토 대상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관계자는 "세무대리 제한 범위와 세무서별 편차, 공무원의 직급 등에 대해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 의원 측은 변호사법에서 규정한 범위에 준해서 시행령으로 위임하도록 논의하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변호사법에는 퇴직 전 1년 이내에 근무한 법원, 검찰청,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처리한 사건을 1년간 수임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업무 범위는 법원의 경우 대법원이나 고등법원, 지방법원까지 별다른 예외를 두지 않고 있다.
세무사법 개정안은 현재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에 배정됐으며, 연말 국회에서 예산 부수법안인 주요 세법 개정안들을 처리한 후 내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심사에 착수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