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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 국감 극장]③ 탈세와의 전쟁

  • 2014.10.10(금) 15:05

대부업자 수백억 탈세 신고..'수상한 뒷 거래' 의혹
뇌물수수 국세공무원 매년 증가..모범납세자도 '뒤통수'

 

# 악당이 너무 많다

 

불법 사채업자가 채무자들의 돈을 뜯어낸다. 두려움에 떨던 채무자가 용기를 내어 당국에 신고하지만, 국세청은 묵묵부답이다. 조사에 나서야 할 국세공무원에게 이미 거액의 뒷돈이 건네졌기 때문이다.

 

영화에나 등장하는 일이 현실로 벌어진 것일까. 김관영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10일 수원 중부지방국세청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미등록 대부업자와 국세청의 뇌물이 오갔다는 제보 내용을 공개했다.

 

제보자는 지난해 10월 국세청의 '대부업자 탈세신고센터'에 미등록 대부업자의 탈세 정보를 접수했는데, 이후 국세청이 조사에 나서지도 않고 포상금도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알고 보니 미등록 대부업체 사장이 전직 세무공무원을 통해 2억원을 전달했고, 이 돈이 현직 공무원의 주머니에도 들어갔다는 것이다.

 

김 의원은 "지난 5년간 대부업자 탈세신고센터에 접수된 1127건 가운데 1034건만 처리됐다"며 "약 100건의 신고가 미처리되기까지 전현직 공무원들의 검은 돈거래가 있을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 대부업자 탈세신고센터 제보 내용(김관영 의원실 제공)
 

# 뇌물 마이 묵었다

 

국세공무원이 뇌물을 받지 않는 날은 정녕 오지 않을까. 매년 비리 사건이 터지거나, 국세청장이 바뀔 때마다 다짐하던 청렴 서약은 물거품이었다. 겉으론 청렴한 얼굴로 납세자를 대하지만, 뒤에선 어김없이 돈을 챙기는 관행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는 모양이다.

 

금품을 받는 국세공무원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김현미 의원(새정치민주연합)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금품수수로 징계받은 국세청 직원은 31명으로 이미 지난해(52명)의 절반을 넘어섰다. 2012년(33명)에 비해서는 두 배에 가까운 증가 추세를 보였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국세청이 직원들의 뇌물 수수에도 '솜방망이' 처벌로 일관한다는 점이 연이어 지적되고 있다. 실제로 국세청이 적발하지 못한 비리까지 감안한다면 국세공무원의 뇌물수수 관행은 '빙산의 일각'일 수도 있다.

 

▲ 김현미 의원(새정치민주연합) / 이명근 기자 qwe123@

 

# 여기가 탈세의 왕국?

 

탈세를 일삼는 사람은 왜 이렇게도 많을까. 고소득 자영업자나 부동산 부자처럼 돈 좀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탈세의 중심에서 있었고, 국세청이 인증한 모범납세자까지 합류하며 폭넓은 스펙트럼을 형성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세무조사를 받은 고소득 자영업자 721명의 소득적출률은 47%였다. 100만원을 받으면 47만원을 세무서에 신고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2010년부터 2012년까지 부동산을 팔았다고 신고한 235만건 중에는 48%(113만건)가 불성실 신고 혐의로 적발됐다. 부동산 거래의 절반 정도는 금액을 축소하는 등 탈세를 저지른 셈이다.

 

모범납세자에게 뒤통수를 맞는 사례도 발생했다. 국세청은 매년 500여명의 모범납세자를 선정해 3년간의 세무조사 유예 혜택을 제공하는데, 이것이 오히려 탈세의 창구가 된 것이다. 2009년 22명에 이어 2010년에는 27명의 모범납세자가 세무조사를 받고 각각 900억원이 넘는 세금을 추징 당했다. 이 중 2009년 모범납세자로 선정됐다가 25억원의 탈세를 저지른 영화배우 송혜교 씨(사진)는 논란이 확산되자 기자회견을 열어 공식 사과하기도 했다. 

 

▲ 영화배우 송혜교

 

# 비겁한 변명입니다

 

세금을 내지 않고 버티는 이들도 상당수였다. 박덕흠 의원(새누리당)에 따르면 지난 6월말 현재 국세를 체납한 인원은 73만명, 이늘이 안 낸 세금은 7조3000억원에 달했다. 체납자 1명이 1000만원씩 세금을 밀린 셈이다.

 

일단 체납하면 국세청에서 찾아와 세금 납부를 독촉하고 명단도 공개하는 등 귀찮게할 법도 한데, 오히려 외제차까지 몰고 다니면서 여유를 즐겼다. 지난해 말 국세청이 공개한 고액·상습 체납 법인 상위 100곳 중 9곳이 벤츠나 BMW, 아우디, 렉서스 등 10대의 고급 외제차를 보유하고 있다.

 

국민적 공분을 사는 '얌체' 체납자 문제는 당사자들에게 1차 책임도 있지만, 국세청이 세원 관리를 느슨하게 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 의원은 "체납액이 많은 법인이 외제차를 소유하는 사실을 국민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국세청의 적극적인 세금 집행을 주문했다. 임환수 국세청장은 "자동차와 관련한 자료는 국토해양부와 공유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 박덕흠 의원(새누리당) / 이명근 기자 qwe123@

 

# 에필로그

 

해마다 반복되는 국세청 국감 아이템이 올해는 '혹시나' 다를까 기대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역시나' 바뀐 게 없었다. ☞관련기사: '국감 시즌' 개막..단골손님은 바뀐게 없네

 

국세청의 고질적인 전관예우 관행에서 시작해 뇌물받는 공무원과 '제 식구 감싸기' 징계, 세무조사 불공정 논란, 체납자 관리 부실 등 뻔한 이슈들이 올해도 국감장을 장식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새로운 '저격수'로 떠오른 박범계 의원(새정치민주연합)은 트위터에 "국감에 화끈한 한방이 없다"며 "의원들의 칼날이 무뎌진 것도 사실"이라고 개탄했다.

 

여야의 정쟁이 길어지면서 준비기간이 짧았던 국회의원과 보좌진의 창의성이 떨어진 탓도 있지만, 국세청도 그동안 수없이 들어온 지적들을 개선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내년에 개봉할 [국세청 국감 극장] 후속편이 과연 올해보다 알찬 내용으로 채워질지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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