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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재정산 파장] ①발단 : 거위털을 뽑다

  • 2015.01.23(금) 14:57

20년째 소득세 감세 기조..IMF때도 공제 확대
박근혜 정부 증세로 전환..직장인 불만 고조

연말정산 문제로 요즘처럼 시끄러운 적은 없었다. 정부와 정치권은 묵묵히 세금을 내던 근로자들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렸다. 국민 1/3의 집단 조세저항으로 불거지면서 정치권은 오히려 위기 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미 엎질러진 연말정산 세금 폭탄은 소급 적용이라는 단기 처방으로 봉합했지만, 무상 복지와 기업 감세에 대한 논란으로 불똥이 튀면서 정부와 정치권을 다시 뜨겁게 달구고 있다. 수십년간 근로자의 시름을 달래주던 연말정산이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발단과 그동안의 진행 상황, 그리고 이번 파장이 어디까지 확산될 지 등을 차근차근 짚어본다. [편집자]

▲ 삽화: 김용민 기자/kym5380@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고생한 봉급생활자의 세부담을 대폭 경감하겠습니다. 근로소득공제와 각종 특별공제 한도를 인상하고, 신용카드 공제를 신설하면 봉급생활자 1인당 20만원꼴로 소득세가 줄게 됩니다."-1999년 6월18일 당정협의

 

"조세지원의 형평성을 제고하기 위해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겠습니다. 근로소득공제율을 인하하고, 각종 특별공제를 세액공제 방식으로 바꾸면 전체 근로자의 상위 28% 수준에서 소득세가 늘게 됩니다."-2013년 8월5일 당정협의

 

위에서 보듯 근로자의 연말정산을 대하는 정부의 시각은 10여년 만에 180도 바뀌었다. 김영삼 정부에서부터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까지 수많은 세금 제도가 나타나고, 사라졌지만 근로자의 세부담 만큼은 한결같이 '완화' 기조를 유지해왔다. 박근혜 정부 이전까지 '기조'에 있어서 만큼은 일관성이 있었다.   

 

그 당시 나타났던 변화들을 보자. 각 정부는 임기 중 한번씩 소득세율 인하를 단행했고, 소득공제 혜택도 아낌없이 늘려왔다. 근로자들은 '유리 지갑'이라는 불만 속에서도 조금씩 늘어나는 연말정산 환급액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카드사와 보험사, 학교 등에서 관련 자료를 받아서 서류의  좁은 칸을 빼곡히 매우느라 늘 번거로왔던 연말정산 절차도 국세청의 간소화 서비스로 점차 편해지고 있었다.

 

근로자들 연말정산과 관련된 재앙의 조짐은 2013년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경기 불황으로 세수 여건은 최악이었고, '증세없는 복지'를 최대 공약으로 내걸었던 박근혜 정부는 막대한 재원이 필요했다. 국민들과 약속을 했으니 표나게 세금을 올릴 수는 없는 일. 하지만 세금을 더 걷지 않고 복지재원을 조달할 뾰족한 방법도 없긴 마찬가지였다. 박근혜 정부가 처음부터 맞닥뜨려야 했던 딜레마였다. 결국 정권과 과세당국은 문민정부 이후 20여년간 건드리지 않았던 근로자의 호주머니로 눈길을 돌렸다. 유리지갑으로 불리는 샐러리맨들 월급을 상대로 정부는 고통없이 거위털을 뽑겠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이같은 태도가 왜 원성의 시발점이 됐는지, 과거 정부의 사례를 통해서 보자. 아예 안줬으면 모를까 줬다가 뺏으면 더 화가 나는 게 인지상정이다. 박근혜 정부는 이 대목에서 납세자에 대한 정치적, 정무적 고려가 매우 부족했다.   

 

◇ "연말정산으로 피로 회복"

 

직장에 갓 취업한 신입사원은 연봉도 적은데다 연말정산에서 공제받을 항목이 많지 않다. 연차가 쌓일수록 점점 연봉도 오르고, 부양가족도 생기면 들어가는 비용도 많아지기 때문에 연말정산 공제로 많은 혜택을 보게 된다. 연말정산으로 환급받을 금액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삶의 무게가 고단했다는 의미인데, 정부가 그런 비용을 보상해주는 것이다. 역대 정부들이 세금 정책을 짤 때 가장 우선 순위에 둔 것도 근로자의 시름을 덜어주기 위한 방안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은 김대중 정부는 1999년 연말정산부터 풍성한 공제 정책을 실시했다. 근로소득공제와 교육비, 의료비, 보험료 공제 범위와 공제 폭을 크게 늘렸고, 신용카드 소득공제까지 도입했다. 이때부터 세법이 다소 복잡해지면서 '누더기'처럼 변했다는 비판도 있지만, 근로자 입장에선 연말정산을 통해 두둑한 '13월의 보너스'를 챙길 수 있었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2003년 연말정산도 근로소득공제율이 오르고, 의료비와 교육비, 보험료, 주택담보대출 이자 소득공제 한도가 늘었다. 당시 정부는 종합부동산세 도입으로 비판이 많았지만, 의료비나 교육비, 표준공제 등 근로자들의 공제 규정은 꾸준히 확대했다. 저출산 대책도 소득공제 방식으로 등장했다. 자녀 수에 따라 소득공제를 더 주는 다자녀 추가공제도 2007년 도입됐고, 이듬해에는 자녀를 낳으면 200만원씩 공제해주는 출산공제가 생겼다.

 

사상 최대의 감세정책이 시행된 2009년에는 기본공제 금액이 1인당 100만원에서 150만원으로 인상되고, 부양가족에 대한 교육비와 의료비 공제 범위와 한도가 확대됐다. 이명박 정부의 '야심작'인 소득세율 인하와 시너지를 발휘하며 직장인의 세부담을 상당히 끌어 내렸다. 정부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후에도 다자녀 추가공제를 확대하는 등 근로자의 연말정산 혜택을 거침없이 늘려왔다. 그런데 과거 정부에서 보여온 이같은 일련의 흐름들이 박근혜 정부에서 물꼬가 막히는가 했더니 민심을 거슬러 역류하기 시작했다.

 

◇ "거위털을 뽑다가 난리"

 

2013년 '증세 없는 복지'를 선언하며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지하경제 양성화와 비과세·감면 정비로 충분히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내용은 그게 아니었다. 근로자의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고, 신용카드 공제도 폐지하는 세법개정안이 나왔다. 근로자의 세부담을 늘리는 쪽으로 'U턴'한 것이다.

 

당시 조원동 경제수석은 "거위가 고통을 느끼치 않도록 깃털을 살짝 빼내는 것이 세법개정안의 정신"이라는 발언을 통해 1600만 근로자의 '공공의 적'이 됐다. 근로자의 거센 반발이 이어지자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원점 재검토" 지시를 내렸고, 기획재정부는 사상 초유의 세법개정안 리콜이라는 굴욕을 당했다.

 

원래 세액공제 전환으로 총급여 3450만원 초과 근로자의 세부담이 늘어날 예정이었지만, 리콜을 통해 총급여 기준이 5500만원으로 조정됐다. 그해 말 국회를 통과한 법안은 2014년 소득분부터 적용됐고, 2015년 초 연말정산에서 효력을 발휘했다.

 

그러나 총급여가 5500만원 이하인 근로자들도 세부담 급증 사례가 속출했고, 정부의 거위털 뽑기 작업은 조세 저항만 불러 일으켰다. 정부는 조세형평성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밝혔지만, 수십년째 소득세 감면에 익숙한 근로자들에게 '증세'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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